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문리스(남산강학원)

<상의 사당에 부치는 글(象祠記)>

영취산과 박남산이 어우러진 곳에
상(象)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사당 아래에는 묘족들이 모여 사는데
상을 신으로 여기고 섬긴다.
선위사(宣慰使) 안귀영(安貴榮)이
그 사당 건물을 새롭게 해달라는
묘족인들의 요청에 인연하여
나에게 사당의 기문을 요청해왔다.
내가 물었다.
“헐어버릴 겁니까?
아니면 새롭게 고칠 겁니까?”
선위사 안군이 대답하여 말하길, “새롭게 고치겠습니다.”
“그것을 새로 짓는다니
왜 때문에?”선위사 안군이 대답했다. “이 사당의 시원성(상징성)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 사당의 기원 등에 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있는 토착 오랑캐 종족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증조부 고조부 아니 그 이상까지 거슬러올라가도
모두 받들어 높이고 제사지내며 공경하며 
상을 높이면서 감히 제사를 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상이 부임했던 유비(有鼻) 땅의 사당은
일찌감치 당나라 사람들에 의해 헐렸습니다.
상이 남긴 도리라는 게
자식으로서는 불효하고
아우로서는 오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여 당(唐)에서는 그것을 배척한 것인데
이곳에는 오히려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유비 지방에서는 헐어버렸는데
오히려 이땅에서는 융성하게 대우받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
군자가 사람을 사랑함은
그 집에 잠시 깃든 까마귀에조차 미치는 법인데
하물며 성인(순)이 아우를 대하는 경우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당은 순임금을 위한 것이지
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상의 죽음은
순임금께서  방패와 깃일산(干羽)으로 유묘(有苗)를 바르게 한 이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대에 걸(桀)왕 같은 오만불손한 인생들이 적었기 때문이겠습니까?
상의 사당만 유독 세대를 거듭해 이어지는,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순임금의 지극한 덕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데까지 들어갔음을 보게 되고
그 은택이 멀리 그리고 오래토록 흘러 흘러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이 어질지 않다는 말은
대체로 그 처음 시기에 관해서일 뿐입니다.
끝까지 순에게 교화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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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어질지 않다는 말은 대체로 그 처음 시기에 관해서일 뿐입니다. 끝까지 순에게 교화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상서>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효로써 어우러져
차츰 차츰 나아가게 하여
간사한 곳에 이르지 않게 한다’고.
‘고수 또한 믿고 따랐다(瞽亦允若)’는 말은
고수가 이미 감화하여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상은 오히려 공손하지 못하여서
관계를 풀고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옳은 길[선]로 다스려 나아가니
나쁜[악] 것에 이르지 않고
간사함에 나아가지 않으니
틀림없이 선에 진입한 것입니다.
진실로 상은 이미 순에게 감화되었던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자(순)께서 관리를 보내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으니
상이 덧붙여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라고.
이것은 대개 순이 상의 마음속 깊은 곳과
생각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아끼어서
어려움을 도와 두루두루 잘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공의 성인됨이
관숙과 채숙의 반란을 면하지 못했던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상이 이미 순에게 감화되었고,
그런 까닭에 어질고 능력있는 이들을 임명하여 그 지위를 안정시켰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백성들에게 은택을 베풀어서
죽은 후에도 백성들이 그를 마음에 품게되었습니다.
모든 제후들의 경대부들이
천자로부터 그 명을 받는 것은
대개 주나라의 임관 제도인데
이는 거의 순임금이 상을 책봉했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며
천하에 교화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당나라 사람들이 그 사당을 허물어버린 것은
상의 초반 모습에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묘족 사람들이 상을 높이 받드는 것은
상의 최종 교화된 모습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나는 이제 세상에 드러내어
사람이 선하지 못하여
비록 상과 같은 형편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나아가 군자의 수양된 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비록 상과 같은 불인(不仁)함일지라도
오히려 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상의 사당에 부치는 글(象祠記) / 왕수인(王守仁) / 문리스 옮김)

象祠記

靈、博之山,有象祠焉。其下諸苗夷之居者,鹹神而祠之。宣慰安君,因諸苗夷之請,新其祠屋,而請記於予。予曰:“毀之乎,其新之也?”曰:“新之。”“新之也,何居乎?”曰:“斯祠之肇也,蓋莫知其原。然吾諸蠻夷之居是者,自吾父、吾祖溯曾高而上,皆尊奉而禋祀焉,舉而不敢廢也。”予曰:“胡然乎?有鼻之祀,唐之人蓋嘗毀之。象之道,以爲子則不孝,以爲弟則傲。斥於唐,而猶存於今;壞於有鼻,而猶盛於茲土也,胡然乎?”
我知之矣:君子之愛若人也,推及於其屋之烏,而況於聖人之弟乎哉?然則祀者爲舜,非爲象也。意象之死,其在幹羽既格之後乎?不然,古之驁桀者豈少哉?而象之祠獨延於世,吾於是蓋有以見舜德之至,入人之深,而流澤之遠且久也。
象之不仁,蓋其始焉耳,又烏知其終之不見化於舜也?《書》不云乎:“克諧以孝,烝烝乂,不格奸。” 瞽瞍亦允若,則已化而爲慈父。象猶不弟,不可以爲諧。進治於善,則不至於惡;不抵於奸,則必入於善。信乎,象蓋已化於舜矣!《孟子》曰:“天子使吏治其國,象不得以有爲也。”斯蓋舜愛象之深而慮之詳,所以扶持輔導之者之周也。不然,周公之聖,而管、蔡不免焉。斯可以見象之既化於舜,故能任賢使能而安於其位,澤加於其民,既死而人懷之也。諸侯之卿,命於天子,蓋《周官》之制,其殆仿於舜之封象歟?
吾於是蓋有以信人性之善,天下無不可化之人也。然則唐人之毀之也,據象之始也;今之諸夷之奉之也,承象之終也。斯義也,吾將以表於世,使知人之不善,雖若象焉,猶可以改;而君子之修德,及其至也,雖若象之不仁,而猶可以化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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