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사방이 막힌 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묻다. -1)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3. 成熟의 바로미터=性,熟?

나는 연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조금씩 달라지는 연애의 양태가 내 성장의 바로미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중요하다던 연애에서 내가 뭘 하고 있었나, 쓰다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전편 참고) 하지만 글을 안 썼으면 나는 이런 내가 아주 성숙해졌다고 착각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다. 나는 알게 모르게 ‘성이 익숙’해지는 게 ‘성숙’(性,熟?!)해지는 것이라 믿었다. 섹시함이 무르익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알 거 다 아는, ‘성에 능숙한 멋진 30대~’ 같은 것. 이게 내가 생각했던 완성형의 인간, ‘어른’이다. 그래서 나름 ‘성에 익숙’해져 가며, 나는 어쩐지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오직 성을 중심에 두는 ‘성애’를 하는 동안, 나의 연애 방식에 의심을 품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어려서 원하던 걸 잘 취하게 되는 게 정말 크는 건가? 가질 수 없으면 때를 쓰던 아기에서, 좀 더 치밀해져서 그걸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 그게 성숙하는 건가? 그건 그냥 영리한 아기다. 性,熟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 왔다. 하지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고 싶다. 영리한 아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떻게 인간적 성만을 탐닉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랑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번 스테이지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면밀히 보는 것.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왜 이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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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테이지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면밀히 보는 것.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왜 이러고 있지?

4. 얼마나 같을 수 있을까

우선 몸 상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전의 뜨거운 연애들을 살펴보면,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내 몸은 매일 바싹바싹 말랐을 것이 분명하다. 허나 뜨거움 다음 상태가 더 중요하다. 섹스뿐만이 아니라 커피도 내게 이런 상태를 가져다주는데, 오르가즘 직후 온몸이 진동하는 듯한 느낌 후 맥이 다 빠져버린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도 내 몸 가까이에 이 상태가 잠재되어있는 느낌이 종종 든다.

왜 그럴까? 나는 언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언제 성욕이 일어나지? ‘불안할 때’다. 어떤 일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 망상에 사로잡혀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을 때, 혼자서는 ‘휴식 모드’로 들어갈 수 없을 때. 그럴 때 일을 치르고(커피를 마신다는 것이다) 한숨을 돌리곤 했다. 불안은 내가 뭔가 바라는 것이 너무너무 확실할 때, 지금보다 나은 상태를 간절히 원하고 그 느낌이 나를 압박할 때, 다르게 말하면 현실에서 강력하게 도피하고 싶을 때 올라온다. 내가 바라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겠기에, 몸과 정신이 긴장되고 조급하고 불안해지는 것. 그래서 몸이 긴장되고, 극을 치는 방식으로 그 긴장을 해소시켜주는 성(이든 커피든)이 땡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는 것을 너무 바라는 것’을 내려놓으려는 노력은 내게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성애에서 벗어난 연애!’라든가 ‘인간적 성에서 벗어나자!’로 쉽게 확 틀어지진 않았다. 성에 탐닉하게 되는 신체상태도 있지만 둘째로 그것을 계속 강화하고 놓지 못하게 하는 언어적 배치가 있었다. 성이 도대체 연애의 중심이 아닐 수 있냐는, 이걸 어디까지 버릴 수 있냐는 거다. 특히 동성애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정신승리 아니야? 남성+여성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인간적 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결핍되어있는 이 사랑. 이건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앞서 말했듯이 ‘무엇이 우리를 연인이라 말할 수 있게 할까?’ 등의 생각들이 자꾸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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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연인이라 말할 수 있게 할까?’ 등의 생각들이 자꾸 들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이런 것이다. 사랑과 연애엔 ‘인간적 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관계는 완성을 향해 간다. 연인에서 결혼을 하여 부부로, 출산을 하여 부모로. 나는 그런 과정들이 관계를 단단하게 묶어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애 때문에 산다’ 등), 그 과정에서 각각의 남녀는 변이를 겪으며, 점점 더 완성형의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그게(임신과 출산 또는 결혼) 되지 않으니 관계를 더 진전시킬 수 없는 게 아닐까, 본질적으로 잘못된 만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5. n개의 사랑 이야기들

글의 시작에 쓴 것과 같은(앞의 글 참고), ‘누가 뭘 알고, 생각하면서 연애하나~’라는 식의 말로 덮으려 했지만, 한동안은 이 연애에 대해 뭐라 정리할 수 없어 그토록 혼란스러웠다. 혹자는 동성애자를 ‘오직 성욕밖에 없는’ 관계라고 말하는데, 그런 자의식도 올라왔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스스로도 그렇게 보는 게 무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에 탐닉하던 길을 정말 틀어야겠다는 방향설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찾아왔다. 인간적 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결핍일 수밖에 없는 이 관계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유가 바뀌었다. 어찌 됐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 연애라는 장을 ‘인간적 성을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무수한 짝짓기가 가능한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뭘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할까? 들뢰즈·과타리는 ‘생산’이 아닌 ‘생성’을 말한다. 인간들은 생산을 좋아한다. 언제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생산은 셀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건, 돈부터 시작해서 아기를 낳는 것, 어떤 관계가 부부나 커플이라 불리며 셀 수 있게 되는 것도 ‘생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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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은 셀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건, 돈부터 시작해서 아기를 낳는 것, 어떤 관계가 부부나 커플이라 불리며 셀 수 있게 되는 것도 ‘생산’이다.

반면 생성은 ‘무엇을 만들어낼까’가 아니라 ‘무엇이 될까’에 가깝다. 생성에서도 무언가가 만들어지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헤아릴 수도 없는 것들, 타자들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삶의 방식 같은 것이다. 기운을 주고받는 것, 서로를 통해 생각과 삶의 길을 바꿔나가는 것. 이 친구의 속도, 곤경에 대처하는 방식, 나름의 지혜들을 배우는 것 등. 이런 결합을 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 제각각 다른 수많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다른 길을 내어갈 수 있다. 그에 비해 남자와 여자로서 결합하여 점점 그 ‘완성형’에 가까워가는 모습은 얼마나 경직되어 보이는가?

‘연애=성적 결합’으로만 생각할 때는 세상 모든 연애가 다 똑같을 것 같았다. 헌데 사실 모두가 ‘생성’하고 기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지껏 그런 것을 잘 보지 못해왔는데, 지금 만나는 이 친구는 나에게 이 n개의 이야기들의 흐름에 한 발 껴볼 기회를 열어주었다. 기존에 내가 붙잡고 있던 이성애자-여자라는 이름표에 맞추는 것 말고, 또 그 뒤에 숨어 폭력적인 나를 정당화하는 것도 말고, 요래조래 삶의 방식을 찾아보는 것. 그렇게 세상과 다른 식의 관계를, 살아가는 다른 기준을 만드는 법을 시도하고 익혀보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6. 번뇌에서 출구 찾기

이것이 ‘햐~ 상쾌해~’같은 느낌으로 오진 않는다. 온갖 감정과 번뇌들이 함께한다. 내 안의 본질주의(?)가 눈을 뜰 때면 ‘정상적’ 연애였으면 조금 쉬웠을까?(‘음과 음(陰)’이라서 싸움이 더 고된 걸까?) 혹 우리가 서로에게 붙들려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도 든다. 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 같다. 뭐 정말 이런 방식의 연애가 ‘덜 쉽고’, ‘덜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희미한 기억의 힘을 빌리자면, 어떤 연애에서든 이정도 강도의 번뇌들은 있었던 것 같다. 내용만 달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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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미한 기억의 힘을 빌리자면, 어떤 연애에서든 이정도 강도의 번뇌들은 있었던 것 같다. 내용만 달랐을 뿐.

이제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번뇌들이 있기에, 그걸 긍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길을 가고 있다’는, ‘걸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성애에서 벗어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같은 말들이 튀어나오니까. 아직 뭘 ‘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는 예리한 눈으로 이 연애의 장을, 여기서 생겨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노려보려고 한다. 또 어떤 문이 열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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