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상 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것에서부터 생각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까지 습관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된다. 우리는 습관으로 살아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계획된 학습에 의한 것이든, 전통에 의한 것이든 ‘습관’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게 된다. 잘 계획된 학습과 좋은 전통을 통해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 건강의 좋고 나쁨,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 내 일이 잘되고 못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 또한 습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습관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나쁜 습관은 삶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삶에서 습관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습관을 바꾸면 삶도 달라진다. 모두가 좋은 습관은 갖고 싶어하고, 나쁜 습관은 버렸으면 한다. 하지만 갖고 싶은 습관은 잘 형성되지 않고, 바꾸고 싶은 습관은 잘 떠나지 않는다. 갖고 싶은 습관은 너무 멀리 있고, 버리고 싶은 습관은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이 답답함! 이 답답함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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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습관은 너무 멀리 있고, 버리고 싶은 습관은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이 답답함! 이 답답함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을까?

삶을 정체시키는 습관들

나는 지속적인 습관을 싫어한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로부터 지속적인 습관이 필연적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면, 그것이 내게는 폭군이 가까이 다가와, 내 생활의 공기가 압박을 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관직, 같은 사람과 계속 함께 있어야 하는 것, 고정된 주거, 지속적으로 동일한 건강 상태 등이 그런 것들이다. (니체, 즐거운 학문, 단기적 습관, 책세상,  273)

우리가 좋은 습관을 가지려 애쓰는 이유는 그것이 성장하는 삶, 발전하는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성공적인 삶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 시대 성공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고,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고, 아니면 무슨 사(士)자가 들어가는 일을 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고, 많은 친구와 탄탄한 인맥이 있고, 가족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할 안정된 주거공간이 있고, 각종 지표를 통과한 수치들로 채워진 건강 상태를 가지는 것 등이다. 그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삶 또한 성공적이라 만족하고 때론 자랑하며 살아간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여가를 즐기는 모든 것은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 중산층들이 자식 교육에 쏟아붓는 열정과 문화적 경제적 투자, 그 결과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 이후 살아가는 태도가 이러한 패턴을 잘 증명하고 있다. 계층을 달리하더라도 이들의 마음만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에 결국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는 지속적인 습관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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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이 길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속적인 습관을 갖지 못했고, 그 결과 성공적인 삶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부에서, 일에서, 사랑에서, 관계에서, 그 의욕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습관은 있다. 이들은 ‘아무 습관 없이, 즉흥적인 삶’을 살아간다. 니체는 이 습관 또한 경계한다. 아무 습관 없이 살아가는 삶은 스스로를 “시베리아 유형流刑”(니체, 『위의 책』, 273)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무겁고 자신을 고갈시키는 삶이다.

‘지속적인 습관’과 ‘아무 습관 없는 삶’,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삶은 정체되어있는 것이고, 자신의 에너지를 오늘에 집중하기보다는 과거와 미래에 종속시킨다. 그러니 이들에게 오늘이란 늘 힘들고 지루하고 무거운 짐이다.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유예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아무런 목적없이 언제나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오늘의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마음을 다해 오늘의 일상을 가꾸어가는 일에는 늘 소홀하다. 대신 이들은 과거를 원망하거나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 혹은 비관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오늘은 있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빨리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니면 지루하고 따분함을 그저 견디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바로 니체가 싫어한 습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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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양분이 되는 단기적 습관

그렇다면 생生철학자 니체가 사랑한 습관은 어떤 것인가. 니체는 자신의 삶을 생생生生하게 만들어가는 습관으로 ‘단기적 습관’을 말한다.

나는 단기적 습관을 사랑하며, 이것들이 수많은 사물과 상태를 그 달콤함과 쓰라림의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알게 만들어주는 더없이 귀중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 이제 그것은 내게 밤낮으로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그것의 주변과 내게 깊은 만족감을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비교하거나 경멸하거나 미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 그것의 시효가 끝나는 날이 와서 그 좋은 일이 내게서 떠나갈 것이다. 내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평화롭게, 그것이 내게 만족한 만큼 나도 그것에 만족한 상태로 서로에게 감사를 느끼며 작별의 손을 내밀 것이다. 그러면 벌써 새로운 것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또한불요불굴의 어리석음과 현명함으로 이루어진나의 믿음은 또다시 이 새로운 것이 옳은 것, 궁극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니체, 위의 책, 272-273)

누군가 나에게 왜 니체를 읽느냐고 묻는다면 읽어주고 싶은 글의 한 부분이다. 그만큼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 글이다. 나는 이 글을 수없이 읽었고, 언젠가 니체 세미나를 홍보하는 문구로 활용하기도 했으며, 때때로 암송을 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나 또한 ‘지속적인 습관’을 위해 살아왔다. 아니, 이 습관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이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니체는 일찍이 지속적 습관으로 향하는 현대인들의 생활패턴과 문명이 가지는 문제를 간파했고, 이를 사유했으며, ‘단기적 습관’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길이 ‘위대한 건강의 길’이자 ‘위대한 긍정의 길’임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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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 글이다.

나는 니체를 읽고 쓰는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습관’이라는 강요된 길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세상의 일(직업)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그만두게 되었다. 일종의 지속적인 습관에서 강제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니체를 만나기 전에 나는 솔직히 ‘내가 왜 이 지속적 습관을 갖는 길에서 밀려나야하지’라는 생각을 했고, 때론 원망과 분노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니체를 읽고 쓰면서 나에게 역겨움을 일으켰던 많은 사건들은 하나씩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공부도, 일도, 만나던 사람들도, 내가 살던 지역도, 심지어 나의 취미 활동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이었다면 원망과 자책의 마음에 머물러 있었겠지만, 지금 나는 그렇게 머물러 있지 않다. ‘뜻밖에 맺어진’ 새로운 인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원망을 오래할 시간은 없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공부를 하기에 바빴고,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 속에서 나의 일상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활기차게 굴러갔다.

요즘 나는 누구를 만나든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일이 많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고 식사하는 시간도 과거보다 오히려 많아지고 있다. 물론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하는 공부가 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자 에너지원이다. 계속 관직(?)에 있었다면 경험할 수 없는 내 삶의 풍경이다. 특히 예전에도 공부의 세계에 있었지만, 그땐 솔직히 공부할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 관심의 폭이 좁으니 이걸 왜 공부하지, 이미 다 아는 것 아닌가, 이걸 봐서 뭐하나 등의 생각이 들어 공부가 자꾸 시시해졌다. 그만큼 내 사유는 좁고 굳어져 있었다. 그만큼 내 삶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패턴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그렇게 공부할 것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했던 것을 또 해도 새롭다. 이것이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라고 이곳 감이당에서는 말한다. 그만큼 나의 사유가 말랑말랑해지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사유를 상투적이고 딱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각자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습관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습관을 맞이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은 오늘에 집중하는 힘이고, 순간에 집중하는 힘이다. 니체는 말한다. 모든 습관은 시효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떠나보내면 새로운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것도 평화롭게, 늘 옳은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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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의 사유가 말랑말랑해지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에 집중하는 힘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있고, 이때마다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것이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다. 니체의 말처럼 ‘평화롭게’, 그리고 ‘옮은 상태로’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현재를 맞이하기가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친구들의 삶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일부는 여전히 지속적인 습관에 붙들려 있으며, 일부는 아직도 아무런 습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늘 ‘오늘 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지속적인 습관이라 할 만한 대부분을 갖추었는데 갑자기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찾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이 되거나, 지속적인 습관을 갖지 못해 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들이 참 많이 보인다. 공부를 하는 이곳 감이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와 관련하여 또 지속적인 습관을 갖길 바란다. 그러다 이것에 실패하면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간다. 니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부는 했지만 각자의 ‘오늘’에 집중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이들 모두에게 새로운 습관이 필요하다. 하여,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습관은 흐른다!’ 이 금언은 지속적인 습관을 가진 사람들, 혹은 아무런 습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게 중요하다. 심지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중년이든 청년이든 노년이든 유년이든, 세상이 제시한 습관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공부를 하든 말든, 습관이 자신의 삶을 정체시키고 위축시키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습관은 흐른다. 흐르는 습관만이 삶에 활기를 준다. 삶에 활기를 주는 습관이 오늘을 사유하는 힘을 키운다. 오늘에 집중하는 일상만이 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사물과 상태를 삶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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