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남산강학원 동고동락)

‘말귀 밝은’ 사람과 네 가지 말

공손추가 말했다.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맹자, 말씀하시다.

“치우친 말에서 숨기려는 마음을 읽고, 궤변에서 함정에 빠진 마음을 읽으며, 사악한 논설에서 이치에서 벗어난 마음을 읽고, 도망가는 말에서 궁박한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것이다. 곧 마음에서 생겨 난 말이 정치를 타락시키고, 정치에서 나온 말이 백성을 해친다. 성인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옳다고 하시리라.”

「공손추」 (상), 『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배병삼 옮기고 풀어 씀, 사계절, 299~300쪽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은 뭘 잘하세요? 스승 맹자가 대답하신다. 나? 나는 ‘말을 알고(知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지. 공자가 스스로 호학자(好學者), 즉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맹자는 스스로 말에 관해 잘 알고 호연한 기상을 갖춘 사람이라고 여겼다. 맹자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으며 또 어떤 사람이고자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맹자가 논쟁에 강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말을 안다고 표현했을까? 말에 대해 뭘 알았다는 것일까? 말을 안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뜻이었을까?

‘치우친 말’은 ‘피사(詖辭)’다. ‘피(詖)’는 ‘치우치다, 기울다’는 뜻이다. 치우치고 기울어진 말 피사는 편벽되고 독단적인 말이다. 극진보와 극보수의 편파적인 말, 인터넷을 달구는 혐오와 덕질의 말들이 여기에 속할까? 그런데 맹자는 치우친 말에서 뭔가를 숨기려는 마음을 읽었다. 치우친 말은 어떤 마음을 가리고(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왜곡된 렌즈를 끼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렌즈를 통해 보는 한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가리게 된다. 좋은 점은 가려지고 안 좋은 점만 눈에 띈다든지, 남들이 좋은 점이라고 하는 것도 안 좋게 보인다. 하여 피사는 공정하지 못하다.

‘궤변’은 ‘음사(淫辭)’다. ‘음(淫)’은 ‘음란하다, 지나치다, 미혹하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탐닉, 중독 등 자기 즐거움의 언어가 음사 아닐까?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일부 가요나 힙합의 가사, 쇼핑이나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의 말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샤넬백으로 재테크하는 것을 샤테크라고 한다는데… 지금 사두면 이익이야, 내년에 값이 두세 배로 뛸 거야 같은 말들. 자기 쾌락과 즐거움에 빠져 있는 말들이 모두 이쪽 동네 가족이다. 일단 모이면 화제가 각자 중독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즐거움을 획득, 유지, 추구하려는 말들로 구성된다. 주색에 빠져서 하는 말들을 떠올리면 음사는 쉽게 이해된다. 게임에 중독된 은둔형 외톨이들은 온라인 세계에 빠져 그 안에서 모든 사회생활을 대신한다. 점점 자신의 정체성은 지운 채 제2, 제3의 캐릭터로 말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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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논설’은 ‘사사(邪辭)’다. ‘사(邪)’는 ‘사악하다, 사사롭다’는 뜻이다. 사사는 이치에서 벗어난 말이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강조했던(하지 말라고!) ‘위민(爲民)’의 언표들이 대표적인 사사다. 다 너를 위해서야, 라고 하면서 실은 자신의 사익을 챙기는 말들. 자기합리화와 기만의 말이 이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사는 파괴의 언어다. 사람들 간의 관계를 깨고 도리를 꺾기 때문이다. 피사가 뭔가에 치우쳐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사사는 좀 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인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기어이 관철시키려는 의지 같은?

‘도망가는 말’은 ‘둔사(遁辭)’다. ‘둔(遁)’은 ‘도망가다, 피하다’의 뜻이다. 둔사는 정면 대응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말, 변명하는 말이다. 둔사는 궁지에 몰렸거나 벽에 부딪혔을 때 나온다. 자신의 잘못을 상대에게 투사하여 원한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거나 붙잡히고 싶지 않아서 도망가는데 오히려 그 말을 통해 콤플렉스와 자의식이 드러난다.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약자의 언어가 둔사 아닐까? 아니 기본적으로 피사, 음사, 사사, 둔사 네 가지 모두 약자의 언어다. 무언가 치우쳐 있거나 의도하거나 고집하거나 등등…

이렇게 맹자는 소인들의 말을 네 가지로 범주화시켰다. 어쩌면 이 외에도 더 많은 말들의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여기서의 핵심은 말과 마음의 연관성을 찾았다는 데에 있다. 맹자는 말이 곧 마음이라는 것을 꿰뚫었다.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과 상태에서 나온 말인지 척 알았다는 것! ‘말귀 밝은’ 맹자씨^^

말이 마음을 드러내는 통로라면 네 가지의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연결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에 가려져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치우친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피사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仁)과 연결. 뭔가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 절제의 마음이 없다는 의미에서 사양지심(辭讓之心)이 부족하다. 음사는 예(禮)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사사는 이치에서 떨어져 있다. 자기합리화와 기만의 언어가 행해지는 장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작동해야 되는 지(知)의 영역이다. 둔사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때 나오는 말이라는 측면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의(義)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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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마음

말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는 것, 우리에겐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명절을 앞두고 음식을 준비하는 날, 시어머니께서는 점심때가 되면 뭘 먹을까 물어보신다. 너희들이 정해라, 난 다 좋다, 라고 하시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맨 앞에 말씀하신 것에 어머니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김밥 맛있게 하는 집이 생겼는데 먹어볼래? 밥도 있고 국도 있으니 김치 꺼내서 차려 먹자. 아님 중국음식 시킬까…?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 올해는 김밥이다.^^

아버지의 농담도 새겨들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씀을 슬쩍 농담의 형식을 빌어 말씀하신다. 정작 흘려들을 농담에 마음이 꽁해지기도 한다. 농담과 진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섬세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잘 듣는다는 게 뭘까? 요즘 내 생활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세미나. 세미나 시간에는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이나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말을 하다 보면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뒤엉키기 일쑤다. 버벅거리고, 맥락은 건너뛰고… 그럴 때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라며 세미나를 이끄는 선생님이나 같이 공부하는 동학이 나서준다. 맥락을 이어주고 텍스트의 문제의식과 나의 질문을 연결시켜준다. 파편처럼 공중에 흩어져 있던 말들이, 레고 조각처럼 바닥에 쏟아져 있던 말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지금까지는 잘 알아듣는다는 것을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나 언어 센스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번에 맹자를 공부하고 보니 잘 ‘듣는’ 것은 ‘말을 통해 마음을 읽는’ 삶의 기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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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공부하고 보니 잘 ‘듣는’ 것은 ‘말을 통해 마음을 읽는’ 삶의 기예였다.

말을 통해 마음을 꿰뚫는 상황의 하이라이트는 에세이 발표 때 나온다. 텍스트가 던져주는 질문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통찰하든지 혹은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써온다. 학우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발표하면 서로 코멘트 해주는 시간이 이어진다. 글의 구성, 내용에 대한 지적도 나오지만 놀라운 건 마음을 꿰뚫어 보는 코멘트다. 말의 기세와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삶의 태도, 잘 몰라서 못하겠다 혹은 내가 감히 어떻게…라는 언표 뒤에 숨어있는 안 하고 싶다는 의지는 금세 발각된다. 열심히 정리했는데 마음을 담지 않았다는 코멘트에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어떤 코멘트에는 주위 사람은 다 알겠는데 장작 본인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말-글-마음의 묘한 관계.

맹자 논쟁의 단골 손님이 있다. 고자(告子)다. 그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공손추」상, 3:2)’라고 했다. 남의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마음으로 이해해보려고 애쓰지 말라는 뜻이다. 맹자는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말에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끝까지 추적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을 통해서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면 관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몰라서 관계와 사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말을 통로 삼아 마음에 접근해보기. 왜 저런 말을 할까? 맹자가 알려준 방법을 하나의 무기처럼 몸에 장착해서 마음 읽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런 말은 사사일까 음사일까? 아니 피사 같아… 그러면 어디에 치우쳤는지 그래서 뭘 놓치고 있는지, 공정하지 못한지…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말들이 지나가는 사이에서 마음이 보일 것이다. 왜 저런 말을 할까? 이렇게 말을 추적하다 마음이 읽히면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을까? 이 무기를 좀 더 날카롭게 벼려 상대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분석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이건 맹자의 로얄티다. 말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성인도 인정해 주실 거라고 자부했던 ‘말’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맹자의 분석. 뤼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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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성인도 인정해 주실 거라고 자부했던 ‘말’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맹자의 분석. 뤼스펙!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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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저
호저
15 days ago

‘말을 안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제롬샘과 맹자글 얘기나누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요새 공부방에 신출귀몰하며 글쓰고 계신 제롬샘!!ㅎㅎ)
‘말을 통로 삼아 마음에 접근해보기.’
상대의 마음과 더 깊이 만나보는 시도.. 저도 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저의 말부터 돌아봐야겠어용..ㅎ
제로미샘 홧팅!

자연자연
자연자연
12 days ago

맹자 에세이를 쓰다가, ‘하필왈맹자’를 곁눈질 하러 들어왔어요!^^
지언의 네 가지와 ‘사단’을 연결시키시다니! 와웅! 멋진 해석입니당!
에세이 현장에서의 ‘지언’도 너무 재미나네요~
들키고 싶지 않아도 슝슝 드러나는 우리의 마음자리들…ㅎㅎㅎ

소민
소민
12 days ago

샘~ 에세이를 예로 들어주시니 이해가 한방에 되었어요!ㅎㅎ 정말 저희가 하루에도 수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는데 정작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전하지..?라고 고민하고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종종 “나는 그렇게 말한 의도가 아니었어…!” 라고 우기고 듣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안느껴진다며 맞받아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다음 글도 기대되어요~*

이유진
이유진
7 days ago

문영샘 이번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살았는데 내 말에서 귀 밝은 분들은 다 알았겠군요. 뜨끔~^^
마음과 말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셔서 깨달음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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