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남산강학원 동고동락)

‘사사(邪辭)’하는 신하

연나라 백성이 제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말했다. “내가 맹자에게 몹시도 부끄럽구나.”

진가가 말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왕은 스스로 주공과 비교할 때 누가 더 인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선왕이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진가가 말했다. “주공이 관숙으로 하여금 은나라 유민들을 감독하라 했는데, 관숙은 외려 은나라 사람들과 모반하였습니다. 주공이 그럴 줄 알고 시켰다면 이는 불인한  처사요, 모르고 시켰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인과 지혜는 주공도 다 갖추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왕이시겠습니까? 제가 맹자를 만나서 해결하겠습니다.”

「공손추」 (하), 『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배병삼 옮기고 풀어 씀, 사계절, 437쪽

맹자가 제나라에 머문 지 5년째 되던 해, 연왕 쾌(噲)는 세력과 민심을 모두 얻은 대부 자지(子之)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났다.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장악한 자지는 기대와는 달리 연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실패했고, 연왕 쾌의 태자 평(平)은 자지에 대한 반격을 준비했다. 이래저래 백성들의 삶은 곤욕스럽기만 한 시절!

제선왕은 연나라의 정국 소용돌이에 개입하고자 했다. 비정상인 정권을 바로잡고 왕실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연을 공격하고 점령했다. 하지만 제나라 군대는 살인과 약탈 등의 만행을 일삼았고, 이에 주변국들의 비난과 연나라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거세졌다. 맹자는 약탈한 보물의 반환과 철군을 요청했지만, 제선왕은 시간을 끌며 맹자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결과는? 급기야 연나라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더 이상 연나라에 주둔할 명분도 사라졌다. 맹자 볼 낯이 없어진 제선왕은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부끄럽다.

이때 신하 진가(陳賈)가 나선다. 진가는 성인 주공(周公)의 일화를 끌어들여 제선왕을 쉴드(!)쳤다. 주공은 형 무왕(武王)을 도와 주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으로, 형 무왕이 일찍 죽자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주나라를 지켰다. 한편 주공은 형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은나라 유민을 감독하게 했는데, 관숙은 몇 년 후 은나라 유민들을 이끌고 조카 성왕의 자리를 노리며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주공에 의해 진압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반란 가능한 인물이란 걸 파악하지 못한 주공에게 책임이 있을까? 주공은 훗날 형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도 형을 보냈을까? 만약 알고 보냈다면 이는 인(仁)하지 못한 처사요 몰랐다면 지혜(智)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인 주공도 완벽하지 못한데 제선왕의 잘못쯤이야 문제될 게 없다는 것!

진가의 말은 전형적인 ‘사사(邪辭)’다. 주공 고사를 사사롭게 해석함으로써 이치를 어그러뜨리고 있다. 주공은 군자의 마음으로 형을 대했던 거지,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미리 방비하지 못한 것은 주공의 잘못이지만 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아무리 성인이라도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다. 진가는 상심한 왕을 위로하고 그의 처지를 주공 고사에 빗대 변호하려 했지만 오히려 제선왕을 더 못난 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고 변명까지 하는 용렬한 왕으로 말이다. 더욱 궁지로 몬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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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제선왕을 더 못난 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고 변명까지 하는 용렬한 왕으로 말이다.

성인의 성인됨은 모든 걸 미리 알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음에 있지 않다. 성인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군자로서 대한다. 직책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할 자로서. 때로는 상대가 신뢰를 저버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기미를 미리 알아채고 방비하는 것도 성인이지만, 잘못을 안 다음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성인됨은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주공은 자신의 잘못을 일식이나 월식처럼 명명백백 드러내고 고쳤다.

진가는 주공 고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왔다. 제선왕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사건의 본의를 꾸몄다.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은 아니더라도 아마도 이 사건이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사사가 어떻게 관계를 깨는 파괴의 언어로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

‘둔사(遁辭)’의 제선왕, 그리고 나는 어떤 말을 하는가

평소 쑥스럽거나 어떻게 대응해야 될 지 모를 때 딴소리를 하게 된다. 맹자에 따른다면 이런 게 ‘둔사(遁辭)’다. 딴소리를 한다는 것은 슬쩍 발을 빼는 모양새다. 변명도 이에 해당한다. 둘 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맹자』 안에서 제선왕은 종종 둔사를 많이 한다. 곤란해지면 대답을 안 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리거나(王笑而不言), 음악을 매개로 왕도정치를 말하려는 맹자에게 문득 표정을 바꾸며(王變乎色) 자신은 아악(클래식)이 아닌 세속의 음악(대중음악)을 좋아한다고 뻗대거나 논점을 흐리려 했다. 왕도정치도 좋아하지만 또한 힘자랑, 재물, 여색도 좋아하기 때문에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슬쩍 도망가려고도 했다.

 

“왕의 신하 중에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부탁했던 자신의 처자식이 추위에 얼고 굶주려 있다면, 그런 친구와는 어쩌시겠습니까?” “절교하지요.”

“포도대장이 휘하 군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어쩌시겠습니까?” “파면이죠.”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하면 (그런 왕은) 어쩌시겠습니까?”……말문이 막힌  제선왕은 좌우를 둘러보며 딴청을 피운다(王顧左右而言他).

「양혜왕」 (하)

그저 재미있는 장면으로만 읽었던 대목도 ‘말’이라는 주제로 다시 보니 새롭게 읽힌다. 왕 앞에서 저돌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 맹자와 그 앞에서 매번 말문이 막히는 제선왕. 한편으론 그런 맹자를 품는 제선왕의 도량과 비판에 열려있는 옛 왕들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선왕의 이런 ‘둔사’하는 습관이 ‘사사’하는 신하를 옆에 두게 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사건을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늘 이렇게 살짝 비껴가려는 제선왕의 언행이 사악한 논설을 하는 신하를 가까이에 두는 결과를 낳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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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선왕이 사과할 때 사과하고, 결정을 물려야 할 때 물리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 바로잡았으면 진가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가 있었겠는가. 진가의 사사에는 제선왕의 둔사가 맞물려 있었다. 작금의 사태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았던 제선왕이지만 진가의 사사로 도망가려 했다. 그 순간 필요했던 건 시비지심, 즉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이다.

‘말귀 밝은’ 맹자에게는 이들의 마음이 읽혔다. 진문공과 제환공의 행적을 궁금해 하는 질문 속에 숨어있는 패도에 대한 야망, 관중과 안자의 치적을 기약하고 싶은 제자의 좀체 바뀌지 않는 상식, ‘위하여’의 말 뒤에 숨어있는 사욕. 또한 ‘불능(不能)’에서 ‘불위(不爲)’를 읽어냈다. ‘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말의 다름 아니라는 지적은 생각할수록 통렬하다.

애초에 ‘지언(知言)’은 ‘부동심(不動心)’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냐는 제자 공손추에게 맹자는 ‘용기’로 답한다. 이 때의 용기는 신체단련으로 기를 수 있는 용사의 담력이나 정신수양을 넘어서는 삶의 태도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평소 말하는 습관이 내 주위의 관계를 결정한다니! 나의 언어습관을 돌아보니 나 역시 ‘둔사‘를 많이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맹자를 만나고 보니 이는 사건을 정면 대응할 용기, 위험을 직면할 용기의 부족에서 나온 언어습관이었다. 더 이상 성격이니 스타일이니 하는 말 뒤로 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말을 할 용기, 잃을 걸 감수하고 말해야 될 때 필요한 용기,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할 용기, 알면 달라질 용기…한 번 용기를 내면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지지 않을까? 볼수록 대단한 맹자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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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승현
1 day ago

용사의 담력이나 정신수양을 넘는 용기. 하… 어휘 하나 늘리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샘 🙂

소민
소민
13 hours ago

왕에게 서슴없이 말하는 맹자! 평소에 철저하게 자신을 수양하고 어떤 것이 성인의 행동인지 끊임없이 탐구해야 저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맹자,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쫌 많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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