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사람이 무심코 드러내는 표정이나 몸짓 하나 짤막한 말 한 마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자기 앞에 닥치는 일들을 어떤 태도로 헤쳐 나왔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까지도. 만에 하나 그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재앙의 조짐이었다면 거기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과 갑작스레 마주쳤을 때 무심코 나오는 말과 행동에는 그 사람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함축되어 있다.

 

성가신 일 VS 흥미 있는 일

장 타루는 열심히 담배를 빨아대면서 층계 위의 자기 발 앞에서 뻗어가고 있는 쥐 한 마리의 마지막 경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의사를 바라보더니 인사를 건네면서 쥐들이 이런 식으로 출현하는 것은 기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죠.” 하고 리유가 말했다. “하지만 끝내 성가신 일이 되고 말 겁니다.” “어느 의미에서는요, 선생님. 오직 어느 의미에서만 그렇다 이겁니다. 우리가 전에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이죠. 그렇지만 나는 흥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럼요, 단연 흥미 있는 일이지요.” (카뮈, 『페스트』, 책세상, 2017, 28쪽)

‘성가신 일’과 ‘흥미 있는 일’, 이 짤막한 서로 다른 반응에는 도시 곳곳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태도, 그리고 장차 전개될 사태에 대한 두 사람의 대처법과 관련된 정보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 (…) 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 하루 종일, 의사는 페스트 생각을 할 때마다 매번 일어나는 가벼운 현기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 그 다음날은 다만 환자 가족들을 붙들고 담판을 하고 또 환자 자신들과 옥신각신하면서 시내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고 다 지나가버렸다.(87-91쪽)

환자들을 살리는 것이 본분인 리유에게 그 병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쥐들에게서 사람에게로 옮겨온 뒤, 전염병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당국에서는 부랴부랴 창문을 밀폐시키고 접근 금지를 알리는 선을 둘러친 두 개의 병동을 마련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음압병동인 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흘 만에 꽉 차버렸다. 몇몇 학교를 접수해서 보조 병원으로 개조를 했지만 급증하는 환자의 수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리유는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니며 백방으로 애를 써보지만 도무지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고름을 잔뜩 품고 있는 멍울들을 수술하면서 백신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길이 없었다.

민심의 동요가 두려워 병명을 밝히기를 꺼리던 당국에서, 어쩔 수 없이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나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사망자 수가 평균 500명에 육박하고 그가 새롭게 맡은 임시병원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났다. 가장 힘든 일은 왕진이었다. “페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리유의 전화 한 통에 곧바로 앰뷸런스가 달려오고, 완치되거나 죽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 가족들은 눈물로 매달렸다. 아내를 결핵 요양원에 보낸 그로서는 누구보다 동정심을 느꼈지만 도리가 없었다. 자신을 구세주처럼 믿고 따르던 환자들과 가족들의 얼굴에 불신과 원망의 빛이 역력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이 끝없는 싸움에 리유는 기진맥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혈청의 효력도 처음 것보다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형태의 페스트가 발견되었다. 주로 임파선에 멍울로 나타나던 선(線)페스트에서 폐(肺)페스트로 발전한 것이다. 페스트 균이 폐로 들어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의사 생활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성가신’ 놈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대부분의 병은 알약 몇 개에 주사만 있으면 좋아졌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리유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살리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 믿고 있는 리유로서는 몸이 으스러져라 뛰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점차 동정이 무용하다는 것,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동정은 피차를 피곤하게 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닫혀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전염병은 수그러들 줄을 몰랐고, 리유를 포함한 의사들은 여전히 이 병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리유가 병에 대해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에 현기증을 느끼며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타루는 수첩 하나를 들고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고 있었다.

그가 적고 있는 수첩들 역시 그 견디기 어려운 시기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별 의미도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에만 관심을 갖기로 작정한 듯한 아주 유별난 연대기라고 할 수 있겠다.(42쪽)

리유가 걱정 가득한 눈길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페스트의 중심에서 싸우고 있었다면, 타루는 관심 가득한 눈길로 페스트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주변부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쥐들이 죽어가는 바람에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춘 뒤에 본 그 키 작은 노인의 변화라든가, 호텔 야근 담당자의 걱정 섞인 예측, 오통 판사네 가족의 호텔 레스토랑 나들이와 식탁에서 죽은 쥐 이야기를 꺼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는 판사의 어린 아들 이야기라든가, 죽은 쥐들에 대한 정부 당국의 대처를 공격해대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우고 있는 신문 등등. 거기다가 페스트의 전반적인 진행 상황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초기에 열 명 남짓한 환자로 시작한 열병은 날씨가 더워지자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낳기에 이르렀다. 미증유의 재앙 앞에서 도시 전체가 절망에 빠졌을 때도 타루의 수첩은 관찰일기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 동안 관찰하던 인물들의 미세한 변화들을 빠짐없이 적었고, 새롭게 관심을 끄는 사람이 눈에 띄면 언제든지 찾아가 이야기를 듣곤 했다. 리유의 왕진에 동행했다가 만난 해수병을 앓는 노인에게서 들은 그의 인생스토리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해 놓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페스트에 휩쓸린 오랑의 하루를 관찰하여 페스트와 더위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생활 면면을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리유와 타루가 자신의 임무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동안, 페스트 역시도 제 갈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급기야 6월말이 되자 사망자는 매주 700명에 가까워지고 시민들 사이에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관찰과 기록으로 일관해오던 타루가 리유에게 민간 봉사대 조직을 제안하고 나섰다. 페스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데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보건대를 중심으로 다시 활동을 이어갔다.

끝없는 무력감 VS 탐구의 생동감

8월 중순에 이르자 더위가 극에 달했고, 그에 따라 열병도 더욱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착각했고, 저마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리유에게 페스트는 초기에 느꼈던 무시무시한 이미지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갔고, 고통의 비장함도 사라져버렸다. 그와 함께 자신의 치료 행위도 환자들의 죽음까지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냉정하게 진행되는 하나의 행정 사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9월에 이어 10월까지 늦더위가 계속됐고, 안개와 비, 억수 같은 소나기가 퍼부어서 페스트균의 확산을 더욱 부추겼다. 사람들은 스스로는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페스트에 무릎을 꿇거나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처음 페스트가 닥쳤을 때와 조금치의 변화도 없이 여전히 제자리걸음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리유와 그의 친구들은, (…) 더 이상 피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 리유는 자기 친구들과 자신의 태도에서 이상야릇한 무관심이 커가는 걸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서 여태껏 페스트에 관한 모든 뉴스에 대해서 그렇게도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256쪽)

극도의 피로감이 강단 있고 다부진 리유를 흔들어 놓았다. 거기다가 동료들 역시 페스트가 물러가고 있는지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이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그들의 초췌한 얼굴은 리유의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급기야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를 느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사태 속에서 자신은 더 이상 병을 고칠 수도, 죽음을 막을 수도, 지연시킬 수도 없었다.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을 살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들과 일시적으로 떼어 놓거나 영원히 격리시키기 위해 종일토록 뛰어다니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끝없는 무력감과 패배감이 엄습해왔다.

피곤하기라도 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더 이상 어떤 연민도 동정도 느낄 수 없도록 해 주었다. 결국 아내와 생이별 상태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전염병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자신 역시 일반 시민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동정 받아 마땅한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한편 타루는 그나마 잘 견디고 있는 편이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팬데믹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인간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페스트 이전에도 사람들은 죽었다. 다만 직간접적으로 사람들을 죽게 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럴 때에만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타루가 페스트와 맞서 싸우는 이유다.

나는 어느 경우에는 희생자들 편에 서서 그 피해를 되도록 줄이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희생자들 가운데서 나는 적어도 어떻게 하면 제 3의 카테고리, 즉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할 수는 있습니다.”(340)

한편 타루는 그나마 잘 견디고 있는 편이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팬데믹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무작위로 펼쳐지는 재앙의 현장은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힘써야 하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화에 도달하는 길을 찾는 타루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탐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든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다는 이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날 저녁에는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피곤했어도 그 이튿날이 되면 새 기운이 생겼다.”(262) 그에게는 가장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의 이런 태도가 코타르로 하여금 자신을 밀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내려놓고 그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타루는 코타르가 고백한 이야기와 거기에 붙인 자신의 해석을 가지고 ‘코타르와 페스트의 관계’라는 제목의 일람표를 만들고 있었다. 페스트가 기승을 부릴수록 얼굴빛이 환해지고 유쾌해지는 코타르는 타루에게는 멀리해야 할 전과자가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가 더 깊이 이해해야 할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코타르를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딴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자 그의 행동이나 말이 대부분 이해가 되었다. 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체포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지만, 가까워지면 혹시라도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어 밀고를 할까봐 선뜻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순간만이라도 사람들의 체온을 찐하게 느낄 수 있는, 왁자지껄한 술집이나 카페, 식당으로 자꾸만 발길이 가는 것이었다. 이렇듯 코타르를 조금씩 이해할수록 타루의 마음도 편안해졌고 그만큼의 기쁨이 뒤따랐다. 그것이 지친 타루에게 아침이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주곤 했다.

죽음 VS 평화

리유와 타루를 비롯한 보건대 구성원들은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급기야 자신들이 정해 놓은 위생 규칙을 소홀히 하고, 자신들 몸에 하기로 되어 있는 수많은 방역 규칙을 깜빡하고 잊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예방 조치 없이 폐-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을 진료하러 가는 일도 발생했다. 가는 도중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해도 다시 되돌아가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일이 너무도 피곤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런 무성의가 그들 자신을, 그들에게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타루 역시 너무 피로한 나머지 마지막 혈청 주사를 빼먹었고,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잊어버렸다. 페스트가 퇴각을 시작할 무렵 타루는 페스트에 걸리고 만다.

타루는 요지부동인 채 투쟁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고통의 엄습에 몸부림으로 대응하지 않고, 다만 그 육중한 몸과 철저한 침묵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그런 방식으로 이제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여유가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셈이었다.(379)

타루는 그 빨간머리 사형수를 본 그 순간, 사형수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본 그때부터, 자신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잊지 않고 살아왔다. 누군가를 죽게 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그 생각으로 페스트의 현장에서 끝까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 순간도 해이해져서는 안 되었다.

타루는 지금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제 생애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삶을 통틀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어떤 경로로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는 사건, 그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없고 자신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몸부림이나 비명 따위로 그 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한 호흡이 멈출 때까지 그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평소에 바라던 떳떳한 죽음이었다. 그 순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자, 그 길을 마지막 한 순간까지 가고 있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충만함을 느꼈고, 이윽고 ‘툭’ 하고 긴장의 끈, 생명의 끈이 끊어졌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절대 그것에 익숙해질 수 없었고, 친구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리유. 그는 타루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타루가 죽은 뒤 페스트는 완전히 물러갔다. 축제 인파로 가득찬 거리를 걸으며 리유는 타루를 생각했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얻었을까. 리유는 타루가 평화를 다시 찾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비록 그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가 죽은 다음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리유에게는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해주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죽음을 목격하는 게 너무도 고통스럽다. 모든 죽음이 마찬가지다. 아내의 죽음이 타루의 죽음보다 더 슬프지도, 이름 모를 환자의 죽음이 덜 슬프지도 않다. 그러니 오직 치료할 뿐이다. 그것이 이후에 자신에게 또 환자에게 어떤 시간들을 펼쳐 줄지는 그때 생각할 일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있는 힘을 다해 죽음과 싸워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믿는 리유에게 비록 끝없는 패배라 할지라도 그것이 죽음과 싸우는 일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타루는 말한다. 죽음 그 자체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한 그 싸움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하다고. 결국에는 끝없는 패배가 될 뿐이라고. 그래서 그에게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마음의 평화였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이해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며 갈 곳 몰라 하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 대상과 공감할 수 있고, 공감의 크기만큼 그와 연결될 수 있다. 결국 타루는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다.

리유에게 죽음이 있는 곳은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하는 전장이라면, 타루에게는 세상 모든 곳이 탐구의 현장이었다. 죽은 쥐를 보면서 내뱉은 짤막한 한 마디, ‘성가신 일’과 ‘흥미 있는 일’이 그 차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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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승현
10 months ago

눈 중의 눈은 부처님 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니깐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제 머릿속에 부처님 눈보다 매력적인 혹은 그 이상의 눈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바로 타루의 눈.
그 눈을 갖기위해 패스트를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

재훈
재훈
10 months ago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공포의 상황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하게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지켜 볼 수밖에 없어! 가 아닌 새로운 방향의 설정.

정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라는 질문 던지기. 그 공포의 상황조차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현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담한 배짱과 냉철하고도 뜨거운 시선.

아! 복희쌤. 쌤글을 읽다보니 저도 『페스트』를 통해 타루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도 타루처럼 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동체 생활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건들을 ‘성가신 일’이 아닌 ‘흥미 있는 일’로 바라보고 항상 배움을 생성해가는 공부를 하고 싶거든요!

Last edited 10 months ago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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