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약자가 살아가는 법 - 3)

근영(남산강학원)

# 부정하고 파괴하다. 짜릿함을 위하여.

그런데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정말로 문제가 있는 쪽은 데카당스들이 아니라, 사회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실제로 세상이 망조가 들었고, 해서 그런 시대에서는 삶이라는 게 그다지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 문제의 근원이 데카당스들의 병약함이라는 진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맞는 말이다. 데카당스들의 비판이 마냥 헛소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새롭게 열린 근대라는 사회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었다. 우리의 니체씨 또한 이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니체는 본격적으로 자기 시대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사실 니체가 데카당스들에게 눈길이 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들이 낸 비판의 목소리엔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싸움을 나 홀로 외로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인가.

하지만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데카당스, 그들은 정말이지 ‘비슷’했다. 그러니까 니체와는 완전히 달랐다는 거다. 그들이 내세우는 말들은 그저 명분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 그들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비슷하지만, 그 속내는 완전히 다른 가짜. 한 마디로, 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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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무엇을 보고 데카당스의 본질이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비판한 것일까. 간단하다. 누군가를 좀 더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가 자신이 내세운 말 다음에 무엇을 하는지 보면 된다. 예컨대 데카당스들은 사회를 비판하고 전통과 도덕을 부정한 그 다음에 어떤 스텝을 밟았는가.

한 생각이 가진 의미는 그 뒤에 따라나오는 행동에 의해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는 이를 종종 착각한다. 앞서 떠오른 생각이 진짜고, 그다음에 오는 것은 부차적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출발이 된 그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다음에 이어지는 행동인 경우가 훨씬 많다. 생각해보라. 배고프다고 말은 하는데 밥은 안먹는다? 그럼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거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하지 않는다? 그럼 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내가 뱉은 말의 진의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행동이다.

데카당스들은 말한다. 사회가 썩었다고, 사는 것이 가치없다고. 그런데 그런 비판과 부정 뒤에 그들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돕도록 돕는 것? 가치 없어진 삶에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것? 아니다. 그들은 빠져들 뿐이다. 향락에. 그저 즐기고 즐기는 게 전부인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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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탐닉해 들어간 관능적인 미라는 것도 그렇다. 거기서 그들이 노린 것은 감각적 자극의 극대화. 이를 위해 그들은 금기를 넘는다. 무언가를 자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금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흔히 야하다고 얘기되는 것들은, 야해서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금지되었기에 야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금기의 정도가 곧 짜릿함의 정도. 해서 이로부터 병리적이고 범죄적인 쾌락이, 퇴폐적 취향이 생겨나게 된다.

데카당스들이 도덕을 부정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도덕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도덕 그 자체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적 가치들이 삶을 얼마나 비루하게 만드는지, 하여 삶을 고귀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가치의 도덕들이 필요한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바란 것은 하나. 짜릿함! 그들의 비판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었고, 부정이 주는 자극적 쾌락을 향유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하여 데카당스들은 창조를 모른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금기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 그들은 기를 쓰고 그 장벽을 파괴한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혹여 누군가 ‘그 다음에는’이라고 물으면, 그들은 답할 것이다. 파괴할 때의 그 열정과는 사뭇 다른, 시들하고 시큰둥해진 목소리로, ‘인생이란 헛되도다!’ 그렇게 그들은 파괴와 파괴를 이어갈 뿐이다. 더 큰 자극을 찾아, “점점 더 강한 양념을 원하는 그의 취향”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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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파괴와 파괴를 이어갈 뿐이다. 더 큰 자극을 찾아, “점점 더 강한 양념을 원하는 그의 취향”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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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7 months ago

“한 생각이 가진 의미는 그 뒤에 따라 나오는 행동에 의해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조금 찔렸어요ㅎㅎ

종종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 또는 떠올랐던 생각과 반대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사는 것 같아요. 뱉은 말과 행위를 일치하도록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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