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팬데믹의 늪

전에는 생이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고통 속에는 이제 방금 꺼져버린, 어떤 섬광 같은 것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 평온하고도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게다가 또 어찌나 따분해 하는 눈길인지 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대합실만 같았다. (카뮈, 『페스트』, 책세상, 2017,247쪽)

시가 봉쇄되고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면서 사람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했던 건 생이별이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라도 남아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서 다시 만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때로는 예전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페스트를 잊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력마저 감퇴해, 함께 했던 순간의 디테일도, 나중에는 얼굴마저도 희미해져버렸다. 더 이상 페스트 이전을 추억할 수도, 페스트 이후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페스트 초기에는 남들에게는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너무도 많이 하고 살았다는 데 놀랐었다. 그러던 사람들이 이제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 밖의 것에는 무관심해졌다.

간혹 남아 있던 미련이 반짝하고 고개를 들 때도 있었고, 갑자기 질투심이 솟아올라 가슴을 쥐어뜯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다시 페스트 속으로 틀어박혀 버렸다. 그래서일까. 얼핏 보기에는 페스트로부터 벗어난 듯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해봤자 헛수고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 페스트에 온통 자신을 맡겨버린 채 생의 의지를 끌어낼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의 무표정이었다. 어디 페스트가 끝난다는 소식이 없나 라디오나 신문을 기웃거리지만 그마저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일 뿐이었다. 흡사 거대한 대합실에서, 설렘도 목적지도 없이, 막연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누군가가 이 재앙을 물리쳐주기를, 재앙이 스스로 사라져주기를, 마냥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해봤자 헛수고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 페스트에 온통 자신을 맡겨버린 채 생의 의지를 끌어낼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의 무표정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보다는 나은 처지라고 해야 할까? 물리적인 환경으로 보자면 페스트가 창궐하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인터넷이라는 무한대의 연결망이 있고, 화상통화도 가능하고 비대면으로 강의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있고 회의나 토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니터 속 격자에 갇힌 얼굴들에서 느껴지는 갑갑함, 대화 끝에 후렴처럼 붙는 “코로나가 끝나야 얼굴이라도 볼 텐데”, “코로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라는 말들 속에 담긴 불안함과 무기력의 목소리들. 끝없이 미루어지는 스케줄, 아예 취소되거나 불가능해진 계획들, 점점 좁아지는 활동 반경, 단조로운 나머지 따분해지는 일상. 꺾이지 않는 코로나의 기세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은 오랑 시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웃 일본에서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이 증가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자살 상담과 자살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서 갈등이 증가한 게 그 원인으로 꼽혔다. 외부활동과 다른 인간관계가 막힌 상황에서는 집조차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집을 나서자니 딱히 갈 곳도 없고, 무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우리 몸을 움직일 수도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열정도 의지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 잠시 잠깐 반짝이는 미래를 계획해 보지만 바로 안전문자가 울린다. 코로나는 우리를 잠시도 잊는 법이 없다. 팬데믹의 늪이 생각보다 깊고 오래간다.

희망과 불안감

11월이 되면서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갑자기 물러나고 오랑 시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화장터의 불꽃은 신나게 타올랐다. 끊임없이 상승곡선을 그리던 페스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면서 좀체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폐장성 페스트가 만연했고, 환자들은 피를 토하며 더 빨리 죽어갔다. 현청을 제외한 공공장소는 모두 격리수용소로 바뀌었다. 기온이 내려가면 전염병이 수그러들 거라는 예측마저 빗나가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팬데믹의 늪에서 무기력해져가던 오랑 시민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 끝이 나기는 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의사회에서는 병이 더 이상 상승세를 보이지 않는 건 좋은 징조라며 낙관했다. 게다가 새로 만든 혈청이 효과를 나타낸 몇 건의 사례도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희망 섞인 전망을 하던 의사회장이 돌연 페스트로 사망하자 당국에서도 당황했고 다시 비관론으로 돌아섰다. 불안해진 시민들은 더 이상 교회에 자신들을 맡길 수가 없었다. 마스코트나 메달, 부적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옛날의 예언들에서 희망을 얻고자 애를 썼다. 인쇄업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옛날의 마술사나 가톨릭 성인들의 여러 가지 예언서들을 대량으로 찍어서 유통시켰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와 성 오딜이었다. 이들의 예언은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어 얼마든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페스트의 종식을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을 통해 멋진 미래를 약속받는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2020년, 세계의 코로나 상황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상승세를 눌러오던 우리나라 역시도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면서 확진자가 연일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병상 부족에 대비해서 야외에 컨테이너 1인 병상을 마련하고 있는 사진이며, 60대 확진자가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중 사망했다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이럴 때 아프거나 코로나에 걸리면 큰일이구나’ 하는 위기감이 순간적으로 스쳐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 모임도 취소하고 심지어는 부모님 제사에도 불참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에 내일(12월 23일)부터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가려는 걸까? 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마스크를 구입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방 속에 잠자고 있는 손소독제를 다시 챙기면서 백신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최근 들어 뉴스는 온통 백신 이야기로 가득하다. 지금 상황으로는 백신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오랑 시민들이 새로운 혈청에, 온갖 주술과 예언에 희망을 걸었듯이. 그러나 우리의 바람대로 백신이 코로나를 멈춰 세운다면 정말로 기쁘겠지만, 만에 하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그로 인한 혼란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희망이란 결과가 어느 정도 의심되는 불확실한 기쁨이니까.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속에 숨겨진, 불학실성에서 야기되는 불안이 우리들의 일상을 다시 뒤흔들어놓을 위험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들은 백신에 희망을 걸며 기쁨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불안보다는 기쁨의 크기가 커지기를 기대하면서.

흥분과 초조함 그리고…

갑작스러운 병세의 후퇴가 예기치 않았던 일이기는 했지만, 우리 시민들은 선뜻 기뻐하지 않았다. (…) 과거 생활의 편의가 대번에 회복될 수는 없으며, (…) 식량 보급만은 좀 개선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가장 심각한 고민은 덜 수 있으리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미온적인 고찰 밑바닥에는 동시에 무절제한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이 꿈틀대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심한 나머지 (…) 아무래도 해방은 오늘 내일에 올 것은 아니라고 자신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357-358쪽)

어느 날부터 페스트의 통계 수치가 급속하게 하강하기 시작한다. 오랑 시민들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예측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던 수개월의 경험이 서두르다가는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조심성을 길러주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억눌러놓았던 욕망의 아우성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바라던 해방의 날이 코앞인데 격리소에서 탈주하는 소동이 일어나고, 페스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심각한 회의에 빠지는가 하면, 여전히 페스트를 기준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오랜 시간 절망과 생이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런 해방 소식이 오히려 불안과 초조를 부추겼다. 운 나쁘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그 오랜 고생이 아무 보람 없이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때문에 갑작스런 공포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불쑥 나타난 한 가닥 희망은 근 일 년 가까이 꾸준히 참고 기다리면서 공포나 절망 속에서도 다독여 왔던 마음을 하루아침에 뒤흔들어 놓았다.

생이별을 끝내는 그날, 기차역에서는 흥분과 함께 그 속에 감추어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쳤다.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렇게도 빨리 앞당기고 싶었던 그 순간을 조금 더 천천히 맞이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현듯 올라왔다. 기쁨의 시간이 기다림의 시간보다 길어야 했던 것이다. 기자 랑베르는 파리에서 오고 있는 아내를 기다리며 그 동안 추상이 되어버렸던 사랑과 애정이 실제 모습을 드러낼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초조함 속에는 약간의 설렘과 함께 어떤 자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페스트 초기, 오랑을 탈출해서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던 자기 자신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 그런 생각에 더 머물 새도 없이 그 여자는 벌써 그의 품 안에 뛰어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파묻힌 그 얼굴이 과연 “자기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얼굴인지 아니면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얼굴인지를 확인해 볼 수 없다는 데 적이 안심하고 있었다.” 당장에는 그도 자기 주위의 사람들처럼 페스트가 오든지 가든지 사람의 마음은 조금도 변할 것이 없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생이별을 끝내는 그날, 기차역에서는 흥분과 함께 그 속에 감추어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쳤다.

아직 코로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상황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오랑 시민들의 모습에 비춰본다면, 우리들 마음 역시 그 동안 억눌러 놓은 그만큼의 세기와 크기로 요동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에 잡혀 있던 저마다의 욕망들이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지 그것이 궁금하고 또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내 마음은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 있을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코로나로부터 해방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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