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重風 巽   ䷸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손괘는 조금 형통할 수 있으니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고,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초육효, 나아갔다가 물러나니, 무인의 올바름이 이롭다.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구이효, 겸손하여 침상 아래에 있으니, 박수와 무당을 많이 쓰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九三 頻巽 吝.

구삼효, 이랬다저랬다 하는 공손함이니, 부끄럽다.

六四 悔亡 田獲三品.

육사효,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 나가서 세 등급의 짐승을 잡는 것이다.

九五 貞 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구오효,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다. 후회가 없어져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처음은 없지만 끝맺음이 있다. 변혁에 앞서 3일, 변혁 이후 3일을 신중히 하면 길하리라.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 凶.

상구효, 자신을 낮추어 침상 아래에 있으니 노잣돈과 도끼를 잃는다. 올바름의 측면에서 보면 흉하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도반들이 모여 ‘내년 공부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를 두고 주역점을 쳤다. 그때 얻은 괘가 중풍손괘의 구삼효였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공손함이니 부끄럽다는 것(頻巽 吝)’이었다. ‘공부에 대한 공손함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공손하다고 생각하는데…’, ‘공부에 대해 공손함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걸까’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잊어버리고 지냈다. 이번에 중풍손괘를 살펴보다가 작년 일이 생각났고, 공손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삼효는 하체에 머물러 할 일이 있음에도,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있는 자가 공손함의 시대에 처하다보니 갈팡질팡하게 되고, 실수가 많아 부끄러워지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손함에 대해 갖고 있는 보통의 상식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어떤 성취를 얻었다고 해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공손함이라고 하면 겸손함, 배려, 낮은 자세, 순종, 예의 등의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렇기에 공손하다는 것은 공부 좀 오래 했다고 오만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늘 낮은 자세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손괘에서 말하는 공손함은 좀 달랐다. 주로 지나친 공손함이 흉하다 말하고, 오히려 적극성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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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손함이라고 하면 겸손함, 배려, 낮은 자세, 순종, 예의 등의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우선, 내가 보였던 공손함을 해석하기 위해 올해의 나를 소환해보았다. 나는 올해 중년의 방황을 겪고 있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오춘기(^^;)를 겪는 중년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상한 일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으며,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며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방황은 어느 지점에서 일어난 것일까. 공부에 정처가 없다는 것은,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확실한 뜻을 품지 않고, 습관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방향이 있었다. 번뇌를 만들어내는 상식, 편견, 관념들을 조각냄으로써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겠다는 다짐과 결의로 가득했으니까. 그렇게 뜨거웠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공부로 분주한 생활만이 남았던 걸까. 적당히 안정된 일상에 만족하고, 공부로 무엇을 하겠다는 뜻도 품지 않은 채 집과 감이당 사이를 정처없이 떠다녔던 것도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중풍손괘는 화산려괘 다음에 위치한다. 서괘전에서 ‘려괘는 용납될 곳이 없으므로 손괘로 받았다’고 하며, ‘공손함은 들어가는 것(巽者 入也)’이라고 했다. 공손함을 ‘아래(下)’ 즉 낮은 자세, 낮은 마음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감(入)’ 즉 간여, 받아들임, 벼슬과 같은 능동적인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괘사에서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利有攸往)’와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를 말했는데, 두 개념이 이 적극성과 연결된다. 손괘는 그냥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손괘 자체는 유약한 성질을 가졌기에 나아갈 바를 스스로 찾기가 힘들다. 자칫 덕을 갖추지 못한 것에도 공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인’ 혹은 ‘대인이 품은 뜻’을 만나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하면 이롭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중풍손괘는 대인의 뜻 안으로 들어가, 그것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려괘의 떠돎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효가 육사효의 ‘전획삼품(田獲三品)’이다. ‘사냥하는 공손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공손함(巽)과 들어감(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분명 소극적인 느낌을 주는 두 글자인데, 이 두 글자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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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육사효는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 나가서 세 등급의 짐승을 잡는 것(悔亡 田獲三品)’을 뜻한다. 손괘의 주체는 초육과 육사인데, 공손한 때에 음의 자질로 위의 양들을 따르고 있기에 그렇다. 공손함이 지나친 초육에게는 무인(武人)의 마음을 주문해 강한 올바름을 실천하도록 했는데, 육사효에게는 사냥을 주문하고 있다. 갑자기 사냥이라니? 사실, 육사효는 후회가 많은 자리다. 호응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받들고 있는 사람과 올라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강하니, 마땅히 후회가 있는 것이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1127)”. 하지만, 육사효는 제자리에 위치해 마땅함을 얻었고, 그래서 올바름(正)을 지킬 줄 안다. 그렇기에 후회가 없다. 후회 없는 자가 하는 올바른 일이 ‘사냥’이다. 사냥 나가서 세 등급의 짐승을 잡는(田獲三品) 것이다. 정이천에 따르면, 세 등급의 짐승은 다음과 같다. 제사에 쓰일 마른 고기용 짐승, 군주의 푸줏간을 채우거나 손님에게 주기 위한 짐승, 수레와 말몰이꾼에게 주기 위한 짐승이다. 그렇게 잡은 짐승들은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이거나, 높은 사람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거나, 백성의 생활을 돕기 위한 것으로 쓰인다. 짐승을 잡아 자기 곳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위, 아래로 두루 미치도록 하는 것이 사냥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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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잡아 자기 곳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위, 아래로 두루 미치도록 하는 것이 사냥의 이유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육사효의 공손함이 자기 이익을 바라지 않고 사냥한 것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걸까? 그런 측면에서라면 ‘베풂’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육사효는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사냥을 해서 구오효에게 공을 돌리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오효의 군주는 중정의 도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의 일상까지 돌봐야 하는데, 그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사효다. 오효가 가진 뜻을 받아들여 사냥물을 골고루 쓰이도록 하는 것이 사효의 공손함인 것이다. 괘상으로 보면 더욱 이해가 된다. 바람(風)이 두 번 거듭해 부는 모습을 나타낸다. 공손함을 뜻하는 바람이 잇달아 부는 것이다. 한 번의 바람은 오효의 뜻에 순종하는 바람이고, 또 한 번의 바람은 아랫사람에 순종하는 바람이다. 위의 뜻에 맞춰 아랫사람의 필요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사효가 가진 공손함의 힘인 것이다.

육사효가 따르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공부의 이치를 다시 생각할 때인 것이다. 나는 올해 공부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본질에 대해 물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전자가 진퇴를 묻는 초육효의 질문이라면, 후자는 실행을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공부(工夫)란 글자를 풀어보면, 스승이나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일하는 사람 즉 장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란,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이것이 육사효의 공부법이다. 손괘에서 말하는 공부는 심플하다. 군주를 통해 천명을 알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육사효인 것처럼, 공부 역시 그러하다. 공부를 하면 지혜를 얻어야 하고,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 그 뜻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간여하는 것이 중풍손괘 육사효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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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공부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본질에 대해 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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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25 days ago

중풍손, 공손한 바람이 부는 괘(그것도 두번이나요!)라고 해서 이제껏 소극적이고 순종하는 괘라고 생각해왔는데… 글을 읽다보니 되게 역동적이네요! 선생님과 중풍손의 운명적 만남^^ 저도 신년맞이 주역점을 한번 쳐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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