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남산강학원 동고동락)

그 말이 마음에서 잊히질 않아

등나라 문공이 세자였을 때,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가다가 맹자를 만났다. 맹자는 성선 을 논하고, 말마다 꼭 요순을 일컬었다.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자는 다시 맹자를 방문하였다.

맹자, 말씀하시다.

“세자는 내 말을 의심하시오? 대저 길은 하나일 뿐이외다. 성간이 제나라 경공에게 말했다지요. ‘저 이들도 사내요, 나도 사내다. 내가 왜 저들을 두려워하리오!’ 또 안연은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하려 하는 사람이라면 다만 순임금과 같이 할 따름인 것을!’ 그리고 공명의 는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고 주공이 말했으니, 어찌 주공이 거짓을 말하랴’라고 했습니다.

「등문공」 (상), 『맹자, 마음의 정치학 1』, 배병삼 옮기고 풀어 씀, 사계절, 471~478쪽

등나라는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붙여도 사방 50리 정도 되는, 지금으로 치면 서울 종로구 정도의 면적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나라다. 제, 연, 초 등 주변국들의 스케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나라. 등나라의 세자는 초나라의 초청으로 가는 길에 송나라에서 맹자를 만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자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세자는 맹자를 만나고 나서 ‘그때 들었던 맹자의 말씀이 마음에서 잊히질 않았다’고 한다. 이거,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맹자를 찾아간다. 등문공은 대체 무슨 말을 들었던 것일까? 다시 찾아갔다는 건 뭘 더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지금 세자는 초청으로 간다고는 하지만 볼로나 인질로 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는 영토를 넓히고 중원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전쟁을 일삼던, 욕망이 들끓던 시대였다. 한편 여러 사상과 이념이 활발히 터지던 백가쟁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유와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세자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당시 맹자는 이미 유명인사였을지도. 그렇다면 세자 또한 맹자가 주장하는 인의(仁義)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약소국 등나라의 세자는 어떤 ‘기대’를 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직접 만난 맹자는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열정, 거침없는 태도와 확신에 찬 음성은 세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더군다나 그가 하는 말은 이제까지 들어왔던 말들과는 좀 달랐다. 남들은 다 전쟁에서 이길 방법을 얘기하는데 그는 말마다 ‘성선(性善)’과 ‘요순(堯舜)’을 입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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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과 요순이라니. ‘성선’이란 사람은 모두 인의예지의 마음을 타고났다는, 그러니 선(善)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그리고 ‘요순’은 먼 옛날의 이상적인 군주 아닌가? 이 말이 왜 세자의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을까?

물론 나도 맹자가 발견해준 인의예지의 마음은 감동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 봤을 때 이런 멋진 마음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은 다른 어떤 배경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금수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좋은 머리와 직업을 대물림하는 가문, 넉넉한 자산과 경제적 혜택이 가져다 주는 가능성… 물론 이런 것들은 삶을 훨씬 수월하고 윤기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인의예지를 타고났다는 것 또한 완전 신나는 일 아닌가! 타인의 삶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측은지심), 옳음에 반응하고 떳떳하지 못함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 그런 마음으로 가능한 삶과 다스림. 맹자의 그 말이 초나라에 있는 내내 등문공의 마음에서 잊히질 않았다.

『맹자』 안에 또 하나의 볼매(볼수록 매력) 캐릭터가 있다. 순임금이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눈에 일찌감치 발탁된다. 순임금이 대단한 집안의 자식이라거나 특출난 능력이 있어서였거나 공을 세워서가 아니었다. 순이 산속에서 살 때는 집에 나무와 돌만 있었고, 밖에 나가 사슴과 돼지들과 뛰어놀았는데 산속에 사는 야인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 것만 같았다. 그러다 ‘좋은 말’을 듣거나 ‘선한 행동’을 보게 되면 그 선함으로 쏠리는 자세가 마치 둑이 터져 물이 쏟아지듯 그 기세가 맹렬하였다고 한다. 또 천자가 되자 비단옷을 입고 두 아내의 섬김을 받았는데 그 모습이 본래 그러던 사람같이 보였다. 맹자가 말해주는 순임금을 들으면 그의 성인됨이 신선하면서도 기발하게 느껴진다. 종래에 상상했던 경건한 성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맹자가 포착한 순의 위대성은 그의 ‘삶의 자세’에 있었다. 순은 처해진 상황마다 마치 평생을 그렇게 산(살) 것처럼 한마음으로 오롯하게 대응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옛날이야기로 수없이 듣고 또 동화책으로 읽었던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등을 연구실(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펴낸 낭송집으로 다시 접했을 때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였나 싶어 새삼 놀랐다. 착한 흥부는 복 받고 욕심 많은 놀부형은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로만 읽을 때는 그저 우애를 강조하는 옛날이야기 정도였다. 그런데 형에게 쫓겨나고 형수에게 뺨 맞고 새끼들은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불행의 한가운데서도 부러진 제비의 다리에 마음이 가닿은 흥부의 착한 심성에 포커스를 맞추자 교훈적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박에서 온갖 재물이 쏟아져서가 아니라 선한 심성 자체가 이미 복이라는 통찰은 맹자의 ‘성선’과도 통한다. 흥부는 또한 부자가 된 상황보다도 지복의 순간에 형을 불러 함께하기를 더 큰 기쁨으로 여기는 자였다. 텍스트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의미를 찾아내 읽어주시는 선생님과 동료 학인들을 볼 때, 나도 그런 말을 들은 날은 그 말이 마음에서 잊히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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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에게 성선과 요순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듣기 좋지만 밋밋한 덕담 수준의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나 혹은 삶을 툭 건드리는 말이 되었고, 그때 배움이 일어나고 촉발된다. 순임금의 성인됨이 그런 거였어? 그렇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맹자가 유독 등문공에게만 좋은 말을 해줬을 리 없다. 맹자는 여러 나라를 돌며 인의예지, 왕도와 여민(與民)의 정치를 설파했다.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왕들이 좋은 말인 줄은 알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며 실천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등문공은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맹자의 말을 들었다. 좋은 스승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등문공처럼 열렬히 배우려는 제자가 맹자라는 좋은 스승을 만드는 게 아닐까?

등문공은 자신이 가진 제후라는 조건에서 맹자의 철학과 사상을 힘껏 실천한 사람이었다. 제선왕이나 양혜왕에게 맹자는 여러 제자백가들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등문공에게 맹자는 단 하나의 스승, 단 하나의 삶의 비전이 되었다. 이것이 등문공의 위대함이다. 등문공이 적극적으로 좋은 말을 들으러 찾아다니고, 들으면 마음에 새기고,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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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 ‘맹자’로 살겠어!

맹자, 말씀하시다.

“썩 좋은 생각이오! 부모 장례는 정녕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증자가 말했지요. ‘살아 계실 적에는 예를 다해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에 맞추어 장례 지내며, 제사도 예에 합당하다면 효라고 이를 만하 다’라고. 내가 제후의 예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그러하나 일찍이 들은 바는 있습니다. 3년의 상기에 상복을 입고 미음과 죽을 먹는 것은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하은주 삼대가 다 같이 행했던 것이외다.”

「등문공」 (상), 같은 책, 487쪽

세자의 아버지인 등나라 정공이 서거한다. 세자가 맞는 첫 번째 정치적 관문이다. 관례대로 할 수도 있었지만 세자는 먼저 맹자와 상의하고 ‘삼년상’을 치르기로 결정한다. 애초에 장례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니 맹자와 등문공이 왜 삼년상을 결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의 시신을 산속에다 버리고 왔다고 한다. 어느 날 그 길을 우연히 지나치던 자식이 부모의 시신을 훼손시키고 있는 동물들을 보게 되었다. 여우, 살쾡이가 부모의 살점을 뜯어먹고 파리, 모기가 갉아먹고 있는 걸 보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흙을 가져와 덮었다는 데서 매장문화가 생겨났다. 이런 반응은 누굴 의식해서도 이익을 따져서도 아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행동이다. 누구든 부모의 시신이 훼손되는 걸 차마 두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부모상은 누구나 겪게 되는 문제다. 맹자 또한 어머니상을 예에 맞지 않게 화려하게 치렀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상례(喪禮)는 죽은 이의 신분과 지위에 맞춰 행하는 것이 관례인데 당시 재상의 지위였던 맹자는 차마 어머니의 장례를 검소하게 치를 수가 없었다. 맹자 주유기간중 얼마 동안은 어머니와 함께 다녔다는 흔적이 있고, 맹모삼천지교의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어머니에 대한 맹자의 마음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는 마음을 거스르는 어떤 인위적인 관습이나 관례에 반대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실천했다.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사람마다 입장과 처지가 다르다. 그래서 이견도 많고 그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또 장례다.

등문공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친,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종국인 노나라의 선례에도 없고 등나라의 선대 임금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세자가 맹자에게서 배운 것은 마음, 판단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삶이었다. 당시는 묵가의 절장(節葬)이 환영을 받던 시기였다. 기간을 단축하여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자, 낭비하지 말고 간략하게 치르자는 묵가 주장의 효율성이 어필하던 시대였다. 세자는 이런 세태에 따라가기보다는 등나라 제후의 신분과 지위에 맞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 마음을 미루어 만난 결론이 삼년상이었던 것이다.

3년은 마음을 다하는 시간이었다. 묵가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시간으로서의 3년은 길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공(子貢)은 스승 공자를 떠나보내는 데에 6년이 걸렸다. 공자의 제자들과 삼년상을 마치고 난 뒤 홀로 3년을 더 남아 스승 곁을 지켰다. 이는 자공이 스승을 떠나보내는데 걸리는 마음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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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문공에게 삼년상을 치른다는 것은 단순히 부모의 장례를 치른다는 의미를 넘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정치철학으로 다스릴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판단에 내맡기거나 주변국들의 외교정책에 휘둘리는 약소국의 왕이 아니라 인의로 다스리는 왕도정치의 주체가 되겠다는 의식. 등문공의 삼년상은 앞으로 ‘맹자로 살겠어!’라는 선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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