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나라 저징(褚澄)이 여승과 과부를 치료할 때는 처방을 달리 하였다. 대개 그렇게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 이 두 부류의 여자들은 혼자 살기 때문에 음()만 있고 양()은 없으며, 성욕은 있으나 흔히 뜻대로 풀지 못하는 관계로 몸에 있는 음기와 양기가 서로 다투기 때문에 잠깐 추웠다 잠깐 열이 났다 하는 것이 온학(溫瘧)과 같은데, 이것이 오래되면 허로(虛勞)가 된다.

사기(史記)창공열전(倉公列傳)제북왕(濟北王)의 시중을 들던 궁녀 한씨(韓氏)가 허리와 등이 아프고 오한과 신열이 났다. 그래서 여러 의원들은 이것을 한열병(寒熱病)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창공(倉公)은 말하기를, 이 병은 남자를 얻고자 하나 얻을 수 없어서 생긴 병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 맥을 짚어보니 간맥(肝脈)이 촌구(寸口)에 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써 알 수 있다.”라는 것이 실려 있다. 대체로 남자는 정()을 위주로 하고, 여자는 혈()을 위주로 한다. 남자는 정기(精氣)가 왕성해지면 부인을 맞아들이고 싶어하고, 여자는 혈()이 왕성해지면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만약 족궐음간경맥(足厥陰肝經脈)이 촌구(寸口)에 현()하게 나타나고 또한 어제(魚際)까지 올라간다면 음()이 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褚氏의 말이 까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잡병편, ‘부인’, 1692)

동의보감』은 여성만의 병을 특별히 언급하는 문(門)을 따로 두고 있다. 바로 잡병편의 ‘부인’이다. 이는 임신과 해산, 붕루등 남자와 다른 병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인’에서는 임신과 출산이 우주 자연과 어떤 관계인가를 설명하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 조심해야 할 점, 안전한 방법과 그와 관련된 병과 치료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는 다시 여승과 과부, 궁녀의 병을 따로 한 항목으로 정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들. 결혼을 한 일반 보통의 여성과는 증상이 달라서다. 그녀들은 왜 보통의 여성과는 다른 특별한 증상에 시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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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은 환자가 젊은 궁녀라는 점과 간경맥의 이상, 더웠다 추웠다 하며 허리와 등이 아픈 증상을 연결시켰다. 젊은 여자가 허리와 등이 아플 때는 신장에 문제가 있을 때다. 신장은 허리 뒤 등뼈에 붙어 있다. 여자에게 있어서 신장은 자궁의 낙맥과 연결되어 있다. ‘자궁의 낙맥이 신에 연결되어 있어, 몸이 차지면 피가 유통되지 못하고 자궁이 낙맥이 막히게 되고 월경이 통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신장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사기』, 「편작창공열전」, 712쪽, 주167, 까치)그러니까 이것은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 여자에게 몸의 이상은 반드시 월경으로 나타난다. ‘몸속이 차져서 월경이 통하지 않는 것’(같은 책, 712쪽)이라고 창공은 말한다.

간경맥은 음의 경맥이다. 그리고 간은 용기를 주관한다. 여성은 ‘음기의 결집체’이다. 간경맥에 이상이 생겼는데 그렇다면 이 궁녀는 무엇을 용기있게 하지 못했을까? 창공의 말대로 남자를 얻고자 하나 못했다. 궁녀라는 신분 때문이다. 촌구맥이 활시위같이 팽팽한(弦) 것은 ‘간기(肝氣)가 맺히고 신(腎)에서 나오는 열이 왕성한 맥으로서, 마음속에 감추어진 일이 있으나 그것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였을 때 생긴다.”(위의 책 712쪽, 주167) 짝을 찾고 싶은 성적 욕구를 오래 참다보니 생긴 병이라는 것. 남녀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기운이 화평하지 못하고 더웠다 추웠다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어른들이 젊은 여자들이 아프면 ‘시집가면 낫는다.’ 혹은 ’시집가서 애 하나 나면 낫는다‘라고 했었는데 그와 똑 같은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남녀가 짝을 찾아 몸을 섞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이다. 하늘이 내린 본성이다. 『동의보감』에선 그 나이까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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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7세가 되면 신기(腎氣)가 차오르기 시작하여 유치(幼齒)를 갈고 머리털도 길게 자랍니다. 14세가 되면 천계(天癸)가 이르러 임맥(任脈)이 통하여 태충맥(太衝脈)이 성해져서 월경이 때에 맞추어 나오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8세가 되면 신기(腎氣)가 차오르기 시작하여 머리털이 길게 자라고 유치도 갈게 됩니다. 16세가 되면 신기가 왕성해지고 천계가 이르러 정기(精氣)가 넘치고 사정할 수 있으므로 남녀가 교합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내경편, ‘신형’ 203)

남자는 양(陽)이고 여자는 음(陰)이며 남자는 정(精), 여자는 혈(血)이 충실하다. 여자는 7세를 기준으로, 남자는 8세를 기준으로 변해간다. 여자와 남자 모두 두 번째 주기인 14세와 16세가 되면 교합할 수 있는 신체가 된다는 것. 말 그대로 이팔청춘의 나이다. 여자는 임맥과 충맥이 충실해진다. 임맥과 충맥은 우리가 흔히 자궁이라고 부르는 포(胞)에서 출발하여 위로 순행하는데 모든 경맥과 혈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 임맥과 충맥이 서로 의지하여 포(胞)에서 월경을 하고 교합이 이루어지며 자식을 가질 수 있다. 음양의 조화이고 정과 혈의 결합이다. 이는 하늘로부터 온다고 하여 천계(天癸)라고 이름한다. 우주자연의 리듬인 것이다. 하늘이 내린 본성이다. 이 리듬을 어겼을 경우 위의 궁녀처럼 여성들은 여러 증상에 시달린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팔청춘에 혼인하는 것이 당연했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그 나이에 신방을 치루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자 나이 스무살이 넘어 딸을 시집보내지 못하면 집안의 우환이었고 가장은 나라에서 죄로 다스렸다고 까지 하니 옛 사람들이 얼마나 음양의 조화를 중히 여겼으며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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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이팔청춘은 청춘이 아니라 어린나이다. 중고등학생 정도가 아닌가. 30대 초반도 아직 기반을 못 잡았다며 이른 나이로 보고 요즘엔 마흔에 임박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결혼에 무심한 젊은이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요즘 젊은 여성들은 여기 저기 소소한 병들을 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우선 몸이 차다. 여름에도 춥다며 종아리에 토시를 하고 약간의 찬 바람도 이겨내지 못한다. 불안해하고 신경질을 부리며 여러 통증에 시달린다. 나의 세대만 해도 기반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로 덥석 결혼부터 했다. 기반은 결혼 후에 마련하는 걸로 알았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아플 사이도 없었다. 아프는 건 한참 나이 든 뒤의 일로 생각했다.요즘은 결혼은 이룰 것을 이루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의보감』에선 이런 저런 여성의 병들이 근본을 따져보면 ‘혈병 아닌 것이 없다’(1693쪽)고 한다. 남녀의 교합이나 출산을 통해 자궁의 혈을 순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의 월경의 양이나 색, 혹은 통증으로 신호를 보낸다. 창공처럼 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여성 자신이 자기 몸을 관찰하면 눈치 챌 수 있다. 그런데도 단순한 생리통 정도로 여겨 병원이니 진통제에 의존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데에만 올인한다. 그러다 보니 옛날은 여승과 과부, 궁녀처럼 특별한 처지에 있던 여성의 어려움을 지금은 대부분의 젊은 여성이 겪고 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뚫고 내 몸을 내가 주도할지 고심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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