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은 (글쓰기학교 토요반)

왜 나에게 돌이키기인가?

사람들 간 일어나는 갈등 중에는 금세 조정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갈등은 서로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단 한 발짝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가정에서 일어나면 가족이 남보다 못하게 되고, 직장에서는 퇴사의 이유가 되며, 국가 간에는 전쟁으로도 번지게 된다. 매일 어디서나 벌어지지만 부딪힐 때마다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이 갈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게다가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남편이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지고 내 배로 낳아 키운 딸이 도저히 내 딸 같지 않을 때, 나는 생각한다. 닿을 수 없는 절벽 끝에서 서로를 보는 것과 같은 이 절망감은 어느 지점에서 탄생하여 어떻게 이렇게 커진 것인지.

그래서 전습록을 골랐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좋은 책이라 하여. ‘내가 너희들의 그 배배 꼬인 마음을 이해하고야 말리라’는 당찬 포부를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읽으면서 내 마음이 너무 찔렸다. 그간 대부분의 문제는 나의 옳은 말을 듣지 않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는 초현실적인 인생 모토를 매 순간 실천하고 사는 내 남편의 대책없는 철없음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했는데, 만일 문제가 나를 돌아보지 않은 나로 인해 일어났다면?

청천벽력같은 깨달음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양명선생이 말씀하시는 “오로지 나에게로만 돌이키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는 이 가르침. 이것을 몰랐기에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억울하고 가련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울어 버렸다.

시명치가 물었다: 선생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그들을 그토록 빨리 감동시켜서 뉘우치게 했습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순임금은 세상에서 가장 불효한 자식이었고, 고수는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순임금은 항상 자신이 가장 불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효도할 수 있었고, 고수는 항상 자신이 가장 자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애로울 수 없었다. (왕양명, 『전습록』, 정인재·한정길 역주, 청계, 1999, 775쪽)

나는 내가 너무도 좋은 아내이며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아내이자 엄마일 수 없었던 것이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얻은 깨달음과 실천

양명은 1472년에 태어나 58세의 일생을 살았는데, 이 기간 동안 명나라는 왕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양명이 관직에 올랐을 때의 황제는 10대 무종이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근이라는 환관의 꼬임에 빠져 사냥과 여색을 탐닉하느라 막상 국가 권력은 유근을 비롯한 환관세력이 휘둘러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다.

양명은 유근의 탄핵을 건의한 두 신하가 유배되자 이를 비판한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 상소문이 어찌나 조목조목 유근의 잘못을 짚었던지, 대노한 유근은 양명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도록 곤장 40대를 내려 친 것으로도 모자라 양명을 오랑캐들이 사는 머나먼 변방으로 유배 보내고 틈틈이 자객을 보내 양명을 죽이려 한다. 나라를 내팽개친 임금, 자신의 욕망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노회한 환관,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오랑캐들, 이치란 이치에는 조금도 닿아있는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공존을 강요받은 양명이 자기의 자리에서 정신줄 부여잡고 살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고민하며 알아낸 해답, 그것이 양명학의 요체이며, 이는 심즉리, 치양지, 격물치지로 요약된다.

양명학 이전은 주자학의 시대였는데, 왜 주자학은 양명에게 구원이 될 수 없었을까? 주자는 “각각의 사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가 있다”고 보아 이치를 먼저 익혀야 이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양명의 유배지였던 용장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이 굴 속에 기거하고, 벌레와 뱀이 우글거리는 데다 독초까지 무성하여 먹을 것도 구하기도 어려운 열악하고 생경한 곳이었다. 주자학에 따라 양명이 용장에서 이치대로 살기 위해서는 낯설기만 한 용장의 모든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다 깨쳐야 하는데, 그걸 언제 다 알게 되겠는가? 그래서 양명은 용장에서의 매 순간 ‘성인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화두로 삼았고, 섬광처럼, ‘나를 성인이게 하는 도리는 내 본성만으로 충분하다, 즉 내 마음이 곧 이치’임을 깨달았다.

양명은 우리 마음이 천리天理이므로 그 누구라도 이미 바른 앎良知을 가지고 본다. 이 양지는 심지어 오랑캐의 마음 속에도 있다. 누구에게나 양지가 있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앎을 실천으로 옮기며知行合一 자신의 양지를 집요하게 추구致良知하는 것이다. 양명이 오랑캐들을 법도가 없다고 천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대하며 이들과 잘 어울려 살아간 것이 지행합일이 바탕이 된 치양지의 좋은 예이다.

양명 사상에서의 실천의 중요성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해석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주자에게 物은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사물이지만, 양명에게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格) 사건들이다. 따라서 양명에게 격물치지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사건을 양지에 비추어 바라보고 바른 실천을 하는 것이며, 그는 본인의 파란만장한 삶 속 수많은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함으로써 격물치지를 시현하였다.

양명은 수백명이 강학을 위해 몰려드는 대학자였으나 엄연히 그의 직업은 공무원이어서, 나라에서 명이 떨어지면 여러 난을 평정해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죽여야만 했다. 이 모순된 상황에서 양명이 할 수 있는 격물치지는 무엇이었을까? 양명은 싸움은 최대한 피하고 모든 난亂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겨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한 후 합당하면 들어주었다. 인명살상은 우두머리 등 핵심인사로 최소화하고 전쟁이 끝나면 학교를 세워 배움이 지속되도록 하였다. 혹자는 양명이 아예 명을 받들지 않고 물러나 살육을 피했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양명이 고요하고 갈등없는 상황을 찾아갈 줄 몰라 안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양지를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격물치지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物, 나의 남편

감히 나의 인생을 양명의 인생역정에 비교할 수는 없으나, 내 깜냥으로는 내 가족 하나 건사하고 사는 일이 참으로 벅찼다. 특히 내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며,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긴다. 나의 남편이 하고 싶은 일에는, 맞벌이를 하는데도 본인 작품이 끝나고 나면 혼자서 몇 달씩 해외여행 가기, 언론탄압을 견디기 힘들면 본인이 노조부위원장 되어 회사에서 잘리고 감옥가는 위험을 감수하기 등이 있으며 (이는 물론 돈 벌어오는 나를 믿고 하는 일이다…), 하기 싫은 일은 살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집안일 및 아이들 건사이다.

감히 나의 인생을 양명의 인생역정에 비교할 수는 없으나, 내 깜냥으로는 내 가족 하나 건사하고 사는 일이 참으로 벅찼다.

그는 본인이 지나간 자리에 반드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은 그대로 식탁에 있고, 갈아입은 옷은 바닥에 즐비하다. 그러나 문제없다. 설거지는 쓸 그릇과 수저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하면 되므로. 아이를 키우면서 끼니도 챙겨야 하고 청소, 빨래, 설거지도 해야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다.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므로. 원전은 반대하지만 불은 켤 줄만 알지 끌 줄은 모르며 번거로운 쓰레기 재활용 따위도 내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런 문제는 너무 사소하므로.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펼 줄은 아나 묶을 줄은 모른다. 내 손이 더러운 데 닿는 것은 싫으므로. 그리하여 그가 시작한 일은 항상 나로 마무리된다. 제발 단 하나라도 제대로 하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지적하면 ‘잔소리를 할 거면 시키지를 말라’고 한다. 20년째 도돌이표. 참 질릴 대로 질렸다고 생각했다. 올 6월, 내 아빠가 돌아가시고 49재도 채 치르지 못했는데, 자신은 나랑 사는 것이 너무 숨 막혀 주 3일은 따로 나가 살아야겠다고 통보하는 것을 들을 때 까지는. 오히려 탈출을 꿈꿔야 할 사람은 안팎으로 시달린 나인데 도대체 누가 집을 나간다는 말인가? 이 본데없는 무도한 인간을 나는 어떻게 격물치지해야 하는가?

나는 전습록을 읽었으므로 남편이라는 物을 다시 잘 마주해(格) 보기로 한다. 순임금의 에피소드로 돌아가 보자. “순임금은 항상 자신이 가장 불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효도할 수 있었고, 고수는 항상 자신이 가장 자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애로울 수 없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바로 이어지는 양명의 말에 그 해답이 있다. “고수는 다만 순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키워 왔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는지만 기억하였고, 자신의 마음이 이미 후처로 옮겨간 것을 알지 못했다.”

나의 지적이 통하지 않은 이유

그렇다. 문제는 나의 남편이라는 物 자체가 아니라, 그 物을 대하는 나의 방식,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선택적 기억이었던 것이다. 내 남편은 평생 때로는 무도해 왔고 때로는 무도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매일의 나는 어제의, 일주일 전, 또 12년 전의 그의 무도함만을 기억하고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아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내 마음 속에서 점점 더 무도하기만 한 인간이 되어가고, ‘내가 하는 육아와 집안일의 절반만이라도 반드시 네가 하도록 만들기’ 위한 나의 결연한 지적 퍼레이드는 계속된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이고 그는 방관하는 자이므로, 내 마음 속 나의 도덕적 우월성은 커져만 가고 나의 지적질은 매순간 정당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무도함만 기억한 것은 내 문제라 치더라도, 나의 지적 자체는 정당하고 순결한데 왜 도통 먹히지 않은 것일까?

순임금은 상象의 오만함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은 오직 상의 옳지 않은 점을 보지 않은 데 있었다. 만약 순임금이 그의 간악함을 바로잡으려고만 했다면 상의 옳지 않은 점을 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상象은 오만한 사람이라 반드시 굽히려고 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그를 감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지금부터 그대는 단지 다른 사람의 시비를 논하려고 하지 말라. 무릇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비판하려고 할 바로 그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커다란 사사로움으로 간주해서 극복하여 제거해야 한다(왕양명, 『전습록』, 이한음 옮김, 청계, 2007, 699쪽)

그가 변하는 것을 원했다면 나는 그의 옳지 않은 점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이 원리를 모르고 ‘절대 너의 잘못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는 어긋나고 나는 지적하는 이 지긋지긋한 윤회는 끝날 리 없다. 이것이 나의 천리를 더럽혀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일찍이 아인슈타인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그렇다. 혼신을 다해 그의 잘못만 보고 지적하기를 반복한 결과 나는 드디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가 변하는 것을 원했다면 나는 그의 옳지 않은 점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나에게 돌이키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이제 양명의 폐부를 찌르는 상소문이 왜 유근을 교화시키지도 무왕을 바로잡지도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양명의 상소문이 무뎠더라면, 유근은 그렇게까지 가혹한 처벌과 복수를 감행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시선이 나를 향하여 내가 잘 못 한 것은 없었는지를 먼저 돌아보았다면, 그를 책망하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지지도, 나의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지적이 그의 마음을 비수처럼 파고들어가 생채기를 내 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가 설거지를 하기까지 15년이 걸리지도, 그가 벗어놓은 양말짝이 20년째 화장실 입구를 지키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친하게 여긴다는 것은 곧 어질게 대한다는 뜻이다. …(중략)… 예컨대 공자가 말한 ‘자기를 닦아서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에서 ‘자기를 닦는다’는 것은 곧 ‘밝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며,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친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친민親民’이라고 말하면 ‘가르친다’는 의미와 ‘양육한다’는 의미를 겸하게 되지만, ‘신민新民’이라고 말하면 ‘가르친다’는 쪽에 치우친 감이 있다.  (왕양명, 전습록, 이한음 옮김, 청계, 2007, 76쪽)

잘못은 나에게로 돌이키고 남에게는 오로지 진정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것이 양명의 친민親民이 주자의 신민新民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나는 우리 가족을 親民했어야 했다. 新民이 아니고. 친민을 하려면 내 마음 속에 상대방을 대하는 따뜻함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마음은 그들을 ‘새사람’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만 가득했던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내 마음이고 나에게로만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양명선생 덕분에 알았다.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이 많다. 지적은 덜어내고 따뜻한 시선은 더했다면, 나의 남편이나 큰 아이가 나로부터 그토록 원했던 인정과 칭찬을 넘치도록 해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갑자기 난 다 틀렸고 그들은 다 맞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서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매우 부차적이라는 것만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는 것이다. 그럴 시간에 오로지 나에게 돌이켜 내 마음의 천리를 회복하는 것이 낫다. 그 과정이 내가 성인되는 길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성인되는 것이 남을 성인되게 바꾸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므로. 이걸 알면서도 나는 수시로 내가 아닌 남에게 나의 시선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금방 다시 거두어 다시 나에게 돌리면 되므로. 나는 다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나의 인욕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파란만장한 양명의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양명 정도로 깨달음을 얻었으면 인생의 어떤 시련이라도 척척 받아내며 번민없이 살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또한 인생의 높은 파고 앞에서는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명의 인생이 위대한 이유는, 수많은 고난과 번민을 온전히 끌어안고 오로지 자신의 양지만을 등불삼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앎을 실천해 갔던 그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이 순탄하길 바라지 말자. 그 순탄치 않을 나의 인생 항로에서 내 마음에 번민 없기를 바라지 말자. 괴로워도 슬퍼도 다만 ‘오로지 나에게로만 돌이킴’을 멈추지 말고 나의 良知를 行하자. 이것이 전습록이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명의 인생이 위대한 이유는, 수많은 고난과 번민을 온전히 끌어안고 오로지 자신의 양지만을 등불삼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앎을 실천해 갔던 그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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