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남산강학원 동고동락)

등문공의 질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등나라 문공이 물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해 대국을 섬기지만 오히려 침탈을 면하지 못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 대하여 말씀하시다.

“옛날 태왕이 빈邠 땅에 거처할 때, 북쪽 오랑캐들이 침략해왔지요. 짐승 가죽과 비단 폐백을 바쳤 지만 침탈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개와 말을 바쳤지만 면하지 못했습니다. 구슬과 옥을 바쳤지만 면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태왕은 장로들을 소집하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랑캐들이 바라는 것은 우 리 토지외다. 내 듣건대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땅으로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하였소. 여러분에 게 임금 없는 것이 무슨 대수겠소. 내가 이 땅을 떠나리다!’

태왕은 빈 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 거처를 정했습니다. 빈 땅 사람들이 말했답니다.

‘어진 사람이다. 놓칠 수 없다.’ 이에 태왕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장을 보러 몰려들 듯 앞을 다 퉜답니다.

어떤 이는 ‘대대로 지켜온 나라다.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바치더라도 지켜 야 한다’라고도 합니다. 청컨대 임금께서는 이 둘 중에 택하소서.”

「양혜왕」 (하), 『맹자, 마음의 정치학 2』, 배병삼 옮기고 풀어 씀, 사계절, 244~245쪽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여 시달림을 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는 고공단보 태왕의 일화를 들려준다. 고공단보가 빈 땅에 거할 때 오랑캐가 자꾸 쳐들어왔다. 태왕은 각종 선물을 바쳐 그들을 섬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장로들을 모아놓아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토지이니 토지를 놓고 내가 떠나겠다. 백성들은 살던 땅에서 계속 머물면 된다. 오랑캐들은 원하는 땅을 얻었으니 아무 소리 안 할 것이고 백성들은 새로운 왕을 섬기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고공단보의 생각. 그리고 고공단보는 기산으로 가서 새롭게 정착했다. 그러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빈 땅의 사람들이 ‘인한 사람을 놓칠 수 없다‘며 우루루 고공단보를 따라간 것이다.

한편,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땅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고공단보 한 사람이 제멋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곳에 남아 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맹자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해주며 등문공 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두 가지 모두 등문공에겐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어려운 일이다.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하고 그러다 보면 백성들이 화를 입게 된다. 왕만 떠나면 땅과 백성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안. 왕만 떠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살든지 죽든지 백성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 사직을 보존해야 한다는 게 두 번째 안이다. 등문공은 후자를 선택했던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등나라는 결국 등문공 다음 대에 송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등문공은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이 쌓아 등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제선왕에게 왕도정치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던 반면 소국의 왕에게 왕도정치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절박하고도 위태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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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등문공의 왕도정치는 실패한 것일까? 무엇을 성공으로 평가할지, 평가는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의 존위나 영토의 확장만이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백성들의 삶 또한 고려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등나라 백성들의 삶과 주변강대국 백성들의 삶, 누가 더 행복했을까? 언제 전쟁으로 불려 나갈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가족들과는 생이별하고 기아와 부상에 신음하는 강대국 백성들의 삶. 하지만 등나라 백성들이라고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언제든 침입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戰國)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치가 던져주는 삶의 국면은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지만, 리더의 자질과 가치관에서 오는 차이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지금은 등문공이 살아생전 실현했던 제자로서의 삶을 배우는 데 집중하자.

어떤 제자가 좋은 제자일까? 머리 좋은? 말 잘 듣는? 글 잘 쓰는?^^ 등문공은 어떤 제자였을까?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요’라고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만 일삼다 아들과 대장군, 나라의 수도까지 잃게 된 양혜왕. ‘왕도가 좋은 줄은 알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어서 할 수 없’다며 늘 발뺌만 하던 제선왕에 비해 등문공은 질문부터가 달랐다. 그는 늘 이런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를 물었다.

제선왕이나 양혜왕처럼 할 수 있을까, 왕도정치가 가능할까를 물은 게 아니라 ‘해보겠다는 전제 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을 물었다. 왕도의 구현에 최선을 다하지만, 주변국들의 침입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은 등문공도 피해갈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떡해…. 라며 절망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조건 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물었다. 제자란 누구인가? 스승의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믿고 삶으로 살아내는 자이다. 그런 점에서 등문공은 맹자의 최고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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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제자’로 산다는 것

고전을 공부하며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여기저기에서 마주치게 되는 ‘스승-제자’의 관계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스승이란 학창시절 교과과목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었다. 내가 생각한 좋은 선생님이란 공부할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학생들을 잘 이해해주고, 조금 더 나아가 삶을 풍부하게 해줄 기타 등등을 따로 알려주셨던 선생님들이었다. 졸업과 함께 딱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만난 스승은 상해에 사는 5년 동안 친구들과 영어를 같이 공부했던 영국 할아버지 데이브 선생님이었다.

데이브와 보낸 시간은 특별했다. 그가 가족과 관계 맺는 법, 시간을 사용하는 법, 건강관리, 여행하는 스타일, 사람과 사건을 대하는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대해 데이브는 독특한 모델이었다. 그 연세 다른 분들이 연금과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관리와 취미 생활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데이브는 달라진 삶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친구들처럼 안정되고 여유로운 노후를 누릴 수 있음에도 삶이 던져주는 변화와 도전에 여전히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며 반응한달까? 편견도 무리도 없어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4-50대의 중년층까지, 다양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영어를 매개로 폭넓은 우정을 만들어갔다. 70대 중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수업 교재를 넣은 무거운 백팩을 짊어지고, 빠른 도보로 운동과 이동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모두가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이끌렸고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그의 친구가 되어 인연을 이어갔다. 그가 살아온 인생과 경험, 통찰과 지혜, 유머, 그리고 현재를 사는 모습은 그 자체가 배움이었다.

음…영어는 그닥 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데이브를 좋은 스승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영어 외에 배운 다른 것들 때문일 것이다. 데이브는 주위에서 접하는 전형적인 노인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순임금이 삶의 단락마다 존재의 변이를 이루어냈듯 데이브도 고아에서 비즈니스맨으로, 다시 영어튜터로 삶의 변곡점마다 이전의 삶과는 경쾌하게 이별하고 유쾌하게 변신했다.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싶은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래서 따라 살고 싶어지는 자이다. 데이브는 이전 삶의 경험을 나누기는 했지만, 그 삶에 일말의 미련을 두지 않는 듯 보였다. 순임금이 산속에 살 때 천자의 삶을 욕심 내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았듯이, 천자가 돼서는 이전 농사지을 때를 그리워하지 않았듯이. 마치 지금의 그 삶 외에 다른 삶은 없는 양 살았다. 등문공 역시 맹자가 제시한 그 삶 이외의 삶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배우고 감탄하는 것을 넘어 그 삶의 방식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 했던 등문공처럼 삶의 자세와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존재를 걸고 한 길에 오롯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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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데이브와 연락하던 메일과 sns에 문제가 있어 3년 정도 연락이 끊겼다가 이 글을 쓰던 중에 데이브와 연락이 닿았다. 데이브는 지금 영국에 살고 계시다. 코로나도 걱정되고 데이브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는 말도 전하고 싶어서, 수소문해서 주소를 알아내 메일을 보냈고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다!! 여전히 내가 알던 액티브하고 유쾌한 데이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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