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사랑하라, 흐르게 함으로써 -2)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사랑, 타자로 인해 생동하는 능력

인간은 인식이라는 게 있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로 인해 자연과 자신을 분리된 것으로 느끼고, 때문에 누구나 고립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고립감을 느끼는 인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대처능력 이상으로 외부 세계가 자신을 덮쳐올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이 고립감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 하느냐’,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는가’라는 질문을 모든 시대, 모든 문화가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19)

여기에서 프롬은 ‘고립상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 ‘고립상태를 넘어서는 능력’을 사랑이라 말한다. 특히 그는 대인간적 합일의 욕구를 인간의 가장 큰 욕구로 보고 있다. 한데 그 중에서도 일시적이고 미숙한 형태-다른 사람의 일부가 되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방식-의 결합은 사랑이라 칭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버리거나 누군가를 종속시키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세상 혹은 다른 인간과 합일되고자 할 때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결합으로 인해 자신이 지워지거나 다른 사람이 지워져 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오직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이 세상에 연결되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베풀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자기 자신 속에 살아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19, p.45

프롬은 ‘나의 생명을 남에게 주라!’고 말한다. 목숨은 아니고 우리 안에 살아있음, 생생함, 생동감 그 자체를 주라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있음’을 남에게 줄 수 있을까? 나의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슬픔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지분을 주라는,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생명력을 고양할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상대방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무언가를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것. 상대의 영향을 받으라는, 타인을 자신의 삶 안으로 침투시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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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아도취적으로 나의 이익이나 욕망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삶에 근거해서 말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서’, ‘내 삶에 이런 영향을 줘서’ 기쁘거나 슬픈 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나를 기쁘게 하고 혹은 슬프게도 하는 식으로 상대의 삶을 함께 겪는 것이다. 말 그대로 내 살아감을 그에게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더 많은 것들, 기존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게 어떤 느낌, 깨달음 등을 발생시킨다. 외부로부터 나의 생명력, 움직임이 고양되고 ‘살아있음’의 표현이 증대된다. 이런 고양과 증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능력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준다’는 것을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여 주는 것이라 착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분명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있는 만큼 퍼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상대를 내 삶에 침투시키는 만큼 나의 생동감이 고양되니 살아있음은 주는 만큼 생겨나고, 아무리 줘도 나는 잃는 게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연애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혼자만 상대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 같으면 억울해한다. 예컨대 나만 애쓴다, 하는 식으로. 상대로 인해 내 생명이 고양되고 삶이 생동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나만 이 관계에 ‘에너지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아니다. 상대가 없었다면 내 감정과 몸과 삶은 그만큼의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짚어볼 게 있다. 이게 에너지라고 할지언정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쓴 것이 우리는 왜 억울할까? 어떤 식으로,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 하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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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싶은 자, 독립하라

무언가에 에너지가 쓰이는 게 낭비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더 중요한 것’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안티-오이디푸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렌츠의 산책’이라는 장면이다.

산책할 때 렌츠는 다른 신들과 함께 또는 전혀 신 없이, 가족 없이, 부모 없이, 자연과 함께 산속에, 눈 속에 있다. <아버진 뭘 바라지? 아버지가 내게 더 좋은 걸 줄 수 있을까? 불가능해. 날 평화롭게 내버려 둬.> 모든 것은 기계를 이룬다. 별들이나 무지개 같은 천상 기계들, 알프스 기계들, 이것들은 렌츠의 몸의 기계들과 짝짓는다. 기계들의 끊임없는 소음. <온갖 형태의 깊은 삶과 접촉하는 것, 돌들, 금속들, , 식물들과 영혼을 교감하는 것, 달이 차고 기욺에 따라 꽃들이 공기를 빨아들이듯 꿈에 잠겨 자연의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것, 렌츠는 이런 것들이 무한한 지복의 느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들뢰즈·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민음사, 2016, p.24

렌츠가 별, 무지개, 물, 식물들 등 자연과 합일을 이루며 ‘무한한 지복’을 느낀다. 이 장면은 단지 ‘합일에 지복이 있다’는 것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하는 것이 장면의 핵심이다. 렌츠는 온 자연과 합일을 이루기 전에, 혹은 그 과정에서 하나의 통찰을 이루었다. <아버진 뭘 바라지? 아버지가 내게 더 좋은 걸 줄 수 있을까? 불가능해.>

‘아버지’란 무엇일까? 아마도 렌츠에게 조금은 좋은 걸 주는 존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렌츠는 그 안에서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나 보다. 아마 자신의 감각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렌츠는 아버지가 제시하는 길을 따르고 아버지가 주는 것을 받으며 사는 것이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 믿고 평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는 우리가 (나도 모르게) 좋은 길이라 믿고 따르는 길, 좋은 것이라 믿고 따르는 가치, 그러나 사랑과는 대척점에 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 스스로 생동력과 지복을 만드는 힘은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들 노릇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아들인 게 당연하다 여기며 자신을 수동의 상태, 맹목적 믿음의 상태에 둬선 안 된다.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저게 뭔지는 몰라도 저걸 따르면 좋다고 한다’, ‘저걸 하면 뭐가 떨어지겠지’, 하는 동안에는 뭐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정해 준 ‘중요한 것’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타자들이 내 눈엔 보이지 않게 되고, 내게 불러일으켜 진 생동감마저 ‘낭비’로 여겨진다. 우리는 사랑에 무능해지고, 합일과 지복을 맛볼 기회들은 계속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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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을 깨는 믿음, 글쓰기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프롬은 권위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비합리적 신앙’이라고 말한다. ‘어떤 권위자나 대다수의 사람이 그와 같이 말하기 때문에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사랑의 기술, p.175) .이러한 맹목적 신앙은 사랑을 결여시킨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 신앙’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자기 자신의 사고나 감정상의 경험에 뿌리박고 있는 확신(같은 책, p.173)’이 바로 그것이다. 독립을 위해서는 이 ‘합리적 신앙’, 즉 자기 존재에 대한 통찰과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은 아버지의 말을 듣기 위해 태어난 ‘본 투 비’ 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세상과 연결될 힘, 세상을 자신의 삶에 침투시킬 힘이 있는, 자연의 일부이자 하나의 개체라는 걸 믿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것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인 상태다. 타자를 내 안으로 침투시키지만 완전한 하나로 만들지는 않는 것, 그래서 자신의 ‘타자를 침투시키는 힘’을, 물론 상대뿐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사랑의 기술이다.

한데 참된 신앙을 가지라는 말은 무작정 자신을 믿는 것과는 구분을 해야 한다. 나를 믿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의심해보라는 말에 가깝다. 오랫동안 아들로 살아온 자신을 맹목하는 것은 사실상 아버지를 맹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버지의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쉽게 되지 않는다. 자세히 지켜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따라온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 순간 변화하는 ‘지금의 나’로서 ‘지금까지의 나’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지금 내게 떠오른 생각과 감정들을 통해 이제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시 보는 것이다. 즉 ‘관찰하라’는 거다. 예컨대 늘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정신적으로 한가한 상태를 만들어서 평상시의 자신을 다시 보는 것, 운동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평상시와 다른 몸 상태를 만들어서 자신의 평소 상태와 비교해보는 것, 병에 걸린 사람이 아픈 몸으로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새롭게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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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이런 ‘독립 훈련’의 아주 좋은 도구다. -글쓰기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계속 평상시 활동할 때와 다른 상태에 두며, 예컨대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서 펜을 들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며, 일상생활에서 지나쳤던, 혹은 지금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지켜보게 한다. 아니 그런 행위 자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전제-앎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감정이 올라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사랑하는 능력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지를(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에 대한 믿음의 힘으로 기존에 내가 따르던 앎-가르침을 발견하고 더이상 따르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이전엔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삶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지표라 여겼던 내 행동이 느려졌다. 내 생각들, 감정들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맹신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론 맹신할 수 없게 되어 답답해졌다. 종종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부딪혔다. 어릴 적 ‘숨 쉬기’를 인식하면 숨쉬기의 과정이 의식되면서 숨 쉬는 게 낯설어지다가 순간적으로 호흡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곤 했던 것처럼, 암담한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상태 역시 독립의 과정, 앎을 깨고 사랑의 능력을 익히는 과정이다. 서른을 먹은 나는 이제 무려 ‘호흡을 의식하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사유를 하려면 삶이 온통 꼬이고 정지되는 것 같지만, 이것도 반복하다 보면 ‘사유하며 살아가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모 사이트에서 조사한 ‘20년 뒤에 없어질 직업’ 리스트 10위권 즈음에 전업 작가가 있었다. 우리 인간들은 글쓰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스스로 세상과 합일하고 싶고, 본능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길을 궁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구나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이 시대에 와서는 모두가 글을 쓰고 있으며, 그래서 곧 작가라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게 아닐까. 일기이든, 에세이든, 논문이든, sns든, 낙서든, 유서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깨작거린다. 아무리 그 빈도와 강도가 낮다고 해도. 누구나 써야 한다, 가 아니라 누구나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짧은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열리고 세상을 만나보고 싶다면 사랑의 능력을 본격 기르기 위해 자신을 마주하여 바라보는 그 횟수와 강도를 높여버리면 된다. 글을 쓰고, 자아도취와 앎을 깨며, 사랑으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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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다른 성욕의 탄생' 연재는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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