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남산강학원)

광장 스캔들

공도자가 말했다.

“광장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는데 선생님은 그와 교유할뿐더러 또 나아가 예를 갖춰 공경하기까지 하시는데 감히 그 까닭을 여쭙습니다.”

맹자, 말씀하시다.

“세상에서 불효라 일컫는 것이 다섯 가지더군. 손발을 게을리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첫째요, 노름에 빠지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둘째요, 재물을 탐하고 처자식만 아끼며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그 셋째요, 또 눈과 귀의 쾌락에 빠져 부모를 욕보이는 것이 넷째고, 성깔을 부려 남과 싸우고 다퉈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다섯째더군. 광장이 이 가운데 해당하는 게 하나라도 있더냐?

저 광장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책선하다가 서로 어긋나버린 것이다. 책선은 붕우 사이의 도리이니, 부자 사이의 책선은 은혜를 손상함이 크다. 광장인들 어찌 부부와 모자의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으랴! 그러나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가까이하지 못하자, 아내를 내치고 자식을 물리치고서 종신토록 봉양을 받지 않았다.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크다’고 여긴 것이니 이런 사람이 광장일 따름이다.”

「이루」 (하), 『맹자, 마음의 정치학 2』, 배병삼 옮기고 풀어 씀, 사계절, 365~366쪽 (8:30)

광장(匡章)은 제나라의 장수로 당대 ‘불효 스캔들’로 유명했다. 광장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어떤 죄를 지었는데 이 일로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해했다. 그리고는 마구간 아래에 시신을 파묻었다. 어머니의 죽음, 그에 관련된 아버지, 그리고 방치된 시신. 어떤 연유에서 시작된 사건인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광장이 느꼈을 비애와 당혹스러움은 가히 짐작된다.

광장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한 용서와 이장을 권한다. 이를 ‘책선(責善)’이라고 하는데 ‘선을 행하도록 권면하다’라는 뜻이다. 뭔가 잘못을 범한 친구에게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주는 충고 같은 것이다. 하지만 책선은 본래 친구 사이의 윤리다. 부모-자식 간에는 책선이 불가했다. 부모-자식 간의 정을 크게 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광장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책선 하다가 서로 어긋나’ 버렸다. 광장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결국 내쫓김을 당한다. 광장은 이제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모실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혼자만 편하게 처자식의 봉양을 받을 수는 없다며 아내와 자식을 쫓아낸다. 헐…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광장의 행동도 지나쳐 보인다. 광장은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도 못했고, 이장을 성사시키지도 못했다. 아버지마저 모실 수 없게 되었으니 이런 일련의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내와 자식을 물리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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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라고 어찌 부모, 처자식과 함께하는 단란함을 원하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의 분노로 어머니와 처자식마저 잃게 된 광장. 어쩌다 불효의 아이콘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었을까? 책선과 봉양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 비난의 이유였다.

그런데 맹자는 달랐다. 맹자도 책선의 잘못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곧 ‘불효’는 아니라고 광장을 강하게 옹호했다. 효/불효를 가르는 기준이라도 있는 걸까?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맹자만의 효/불효 감별법은? 그리고 맹자는 광장의 어떤 점에 반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와 특별히 교유하며 지냈을까?

‘효’란?

맹자는 인간의 ‘마음’을 발견한 자다. 다른 존재와의 공생(仁)을 원하고 옳음(義)을 지향하는 마음이다. 부모-자식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시작으로 관계를 확충해 간다. 그래서인지 맹자는 효에 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이루(離婁)」 편에 실린 ‘증자 삼부자 (「이루」 (상), 7:19)’ 일화로 효 얘기를 시작해 보자.

증자(曾子)는 아버지 증석(曾晳)이 밥상을 물릴 때면 ‘남은 술과 고기를 누구에게 줄까요?’라고 반드시 물어보았다. 음식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웃어른은 일부러 음식을 남겨 아랫사람에게 주곤 했다. 이는 은근한 애정의 표현이다. 뒤이어 증석이 남은 음식이 있냐고 물으면 증자는 꼭 있다고 대답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증석이 죽고 이번에는 증자의 아들 증원(曾元)이 증자를 봉양한다. 하지만 증원은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줄지 묻지 않았다. 증자가 남은 음식이 있냐고 물어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다시 올리기 위해서(一將以復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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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기 위해서(一將以復進)’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린다. 남은 음식을 ‘다음 밥상에 다시 올리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면 증자와 증원의 태도가 이미 극명히 달라 두 사람의 효를 비교하는 의미가 퇴색된다. 또 다른 해석은 ‘음식을 따뜻하게 다시 만들어 올리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다(feat. 문리스샘). 이 해석이 보다 합리적이다. 그래야 같은 선상에서 증자와 증원의 효를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증원은 아직 ‘양구체(養口體-육신을 기르다, 밥으로 봉양하다)’에 머물렀으니 ‘그런대로 괜찮다(可也)’고. 평가가 좀 박하다. 매번 음식을 다시 해서 올리는 것이 어디 보통 정성인가? 하지만 맹자가 보기에 그것은 비록 괜찮은 태도이긴 하나 여전히 육신을 살피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효란 증자처럼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양지(養志-마음을 기르다, 그 뜻을 숭상하다)’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효의 핵심은 육신을 봉양하는 데에 있지 않고 그 뜻을 숭상하는 데에 있다.

‘불효’를 말하다

다시 광장. 맹자는 광장의 일화를 통해 효가 아닌 ‘불효’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효를 얘기하면 효가 아닌 것들은 자동적으로 불효가 된다. 하지만 불효를 얘기함으로써 나머지 불효가 아닌 것들은 상대적으로 좀 여유롭달까? (어쨌든 불효는 아니란 점에서^^) 맹자는 세상에서 통용되던 불효의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불효가 ‘아닌’ 공간을 확보해준다.

이 대목에 대해 배병삼 선생님은 세상 누구보다 효성스러운 한국 사람들이 ‘불효 콤플렉스’에 빠져있다며, 심지어 여기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불효 외에는 ‘다 효다!’라고 푸셨다. 통쾌한 해석이다. 맹자 역시 불효의 기준으로 광장을 변호함으로써 세간의 비난에 맞섰다. 불효를 말함으로써 불효가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효의 핵심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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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의 기준을 보더라도 효의 기본은 역시나 부모 봉양이었다. 그런데!! 앞에 인용문에서 서술한 봉양하지 않는 다섯 가지 단서를 살펴보니 오히려 방점은 이 ‘단서들’에 찍혀 있었다. 첫째 게을러서! 둘째 술과 노름에 빠져서! 셋째 재물을 탐하고 처자식만 아껴서! 넷째 눈과 귀의 쾌락에 빠져서! 다섯째 성깔을 부려 남과 싸우고 다퉈!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 이전에 이 다섯 가지 단서가 불효라는 것이다. 그리고 광장의 삶은 여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불효는 단순히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게 하는 게으르고 방만하고 이기적인 삶에 있다는 맹자의 지적! 그래서 진정한 효는 육신을 봉양하기보다는 그 ‘뜻’을 숭상하는 데 있다는 증자 집안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이런 사람이 광장일 따름이다

과하다고 느껴지는 광장의 행동들이 있다. 책선 함으로써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고, 굳이 처자식까지 내치는 처사도 그렇고, 전쟁 승리의 대가로 어머니 묘 이장을 시켜 주겠다는 제위왕의 제안을 거절하는 장면(『전국책』)도 그렇다. 이런 행동들에서 광장의 광자다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광자(狂者)’란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튀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뜻(인의)을 잃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공자와 맹자가 좋아했던 인간 유형이다.

왕의 제안까지 거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장은 광장이 그토록 바라던 일 아니었던가? ‘아버지 살아생전에 어머니 묘를 이장하라는 말씀이 없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장하면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되니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이 거절한 이유였다. 사건의 중심, 비난의 원인 제공자(?) 아버지. 하지만 이제 와서 묘를 이장하면 그건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아버지 살아서는 의견을 달리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그 뜻만은 속이거나 거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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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원칙을 끝까지 지킨 사람, 삶이 던져준 모순적 상황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격하게 단속한 사람이었다. 이 길은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자기 삶을 책임지는 자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누가 시켜서도, 남들의 이목을 의식해서도 아니었다. 아니,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상상하여 그 길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람이었다. 광장의 삶이 그 증거다. ‘이런 사람이 광장일 따름’이라고 하며 예로 공경했던 맹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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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4 months ago

광장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점점 궁금해집니다ㅎ

맹자가 말하는 불효의 기준을 보니 다른 쾌락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잘 돌보는 것에서 효가 시작된다는 말인 것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이제껏 생각해온 효에 대해서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재윤
최재윤
4 months ago

불효가 아닌 공간에서 자신의 효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간 광자라…멋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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