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감이당)

주역에 있는 384개의 효사 중에 딱 한번 나오는 단어가 있다. 근데 그 단어가 워낙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한번 보고는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바로 기망기망(其亡其亡) 이다. 아마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단어가 뇌리에 박혀있지 않을까 싶다. 쉽기도 하고 솔직히 단어만 봤을 때는 좀 웃기다. 이 글자의 뜻은 ‘망할까, 망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엥?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고? 그거는 망상 아닌가? 걱정이 심해지면 시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다칠까 봐 못 하고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주역에서 기망기망(其亡其亡) 하라고 권유(?)하다니! 뭔가 내가 눈치채지 못한 아주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 같다.

기망기망은 천지비괘의 구오효에 나온다. 비(否)는 정체와 단절이라는 뜻이다. 하괘에는 땅을 뜻하는 곤괘가, 상괘에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가 있다. 딱 괘상만 봤을 때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밑에 있으니 자기 자리에 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서로 크로스가 되면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위로 올라가려는 건(乾)은 위에 있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곤(坤)은 아래에 있어서 크로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괘사에서는 정체는 인간의 길이 아니다’(否之匪人)라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나는 모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체된 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people-2591874_640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나는 모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생긴 바이러스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중국에 어떤 바이러스가 터졌다’ 같은 거짓 기사들을 많이 봤었기 때문에 그냥 대충 넘어갔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나왔어도, 정부에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말을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신천지가 터지면서 코로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도 나나 깨봉청년들이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각성을 느끼신 쌤들이 깨봉 방역수칙을 만드셨고 결국, 나에게는 택견전수관 출입금지령이 떨어졌다. 택견인한테 택견 금지령이라니!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지만, 나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다! 택견을 하지 못하니 온몸에 쥐가 나는 듯 했고 몸은 점점 무기력해졌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밤에는 잠이 안 오고 아침에 늦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거리두기가 내려가면 다시 나갈 수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격상돼서 못 나갔다. 택견을 다시 할 수 있는 희망을 줬다가 다시 뺏어갔다. 코로나 이놈, 희망고문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이 고문이 빨리 끝나길 빌고 있었지만 내 기도와는 달리 코로나는 더 심해졌다. 여름에는 2차 대유행, 겨울에는 3차 대유행을 겪으면서 기망기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구오효는 정체의 때를 그치게 하니, 대인의 길함이다. 망할까, 망할까 염려해야, 뽕나무 뿌리 무더기에 묶어놓은 듯할 것이다.)

구오효는 군주의 자리에 양강하며 중정의 덕을 지닌 사람이 정체의 시대를 끝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정체의 시대에서 풀리려는 쪽으로 방향을 튼 시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옛날 성인처럼 똑똑하고 지혜롭고 힘이 있어도 其亡其亡(기망기망) 하지 않으면 정체의 때가 더 지속될 수 있다. 그러니깐 이 기망기망의 뜻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건강한 긴장’이다.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도 아니고 너무 방심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바로 기망기망이다. 그래야 코로나가 원,투 펀치를 날려도 날렵하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방심해서 가드를 내려놓으면 제대로 맞겠지만.^^

wind-237490_640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건강한 긴장’이다.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도 아니고 너무 방심하는 것도 아니다.

내 SNS에 등록되어 있는 친구들의 활동을 보면 ‘이 친구들은 진짜 겁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거리두기가 허용하는 최대치를 누리려고 기를 쓴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진이나 카페에서 친구랑 만나는 사진,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들이 매일 올라온다. 사실 나도 방역수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놀고 싶기는 하다. 친구들을 못 본 지 얼마나 됐는지…. 가끔씩 친구에게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생긴다.

내 평소 동선은 매우 단순하다. 복지관으로 출근하고 퇴근 후 감이당에 가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하다가 상방(감이당에 상주하는 청년들이 더부살이 하는 공간이다.)에 내려온다. 복지관에 있는 동안 밥 먹을 때 말고는 마스크를 벗지도 않는다. 다른 공익 형들이 나의 동선을 들으면 안 답답하냐고 물어볼 정도다. 솔직히 답답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예전에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공익형들이랑 한 달에 한 번은 외식했었다. 누구 훈련소 가는 기념으로 먹고, 전역한 기념으로 먹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먹기도 했다. 웃고, 떠들고, 어쩔 땐 진지한 얘기를, 어떨 땐 시답지 않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그러나 코로나가 심각해지자 감이당에서 ‘외식금지’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쿠궁! 이럴수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앞으로 형들과 외식을 못 한다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형들과 외식하지 않고 있다. 물론 내가 못 간다고 형들도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 빼고 형들끼리 먹으러 간다! (방역수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이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키며 신나 보이는 형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public-telephones-971169_640
가끔씩 친구에게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생긴다.

코로나가 발생한지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많은 나라에서 이 코로나를 물리치기 위한 백신을 만들고 있다. 아스트라 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등 많은 백신이 나오고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도 잠잠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백신 말고도 코로나를 잠재울 수 있는 나만의 백신이 있다.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도 아니고 너무 방심하는 것도 아닌 바로 ‘건강한 긴장!’ 코로나를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백신은 바로 기망기망 하는 마음이다!

0 0 vote
Article Rating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