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3부. 슬기로운 유배생활(2) - 용장대오? 용장생활백서

문리스(남산강학원)

(육징이)로 통달하는(上達) 공부에 관해 물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사람을 가르칠 때 수수하고 은미한 것에 관련되기만 하면 곧 상달(上達)은 배우기가 마땅치 않으니 일단 하학(下學)만을 말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학과 상달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무릇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이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상달이다.

예컨대 나무를 재배하고 물을 주는 것 따위는 하학이며, 밤낮으로 (조금씩) 자라서 가지가 뻗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은 바로 상달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 (생장하는) 힘에 간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힘을 기울일 수 있고 말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이다. 상달은 오직 하학 속에 있다. 무릇 성인이 말씀하신 내용은 비록 매우 깊고 미묘하다고 할지라고 모두 하학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학으로부터 힘쓰기만 하면 자연히 상달하게 되기 때문에 따로 상달하는 공부를 찾을 필요가 없다.(<전습록>(상). 정인재, 한정길 옮김, 육징의기록/ 24조목)

問上達工夫。先生曰:「後儒教人,纔涉精微,便謂上達,未當學,且說下學。是分下學上達為二也。夫目可得見,耳可得聞,口可得言,心可得思者,皆下學也。目不可得見,耳不可得聞,口不可得言,心不可得思者,上達也。如木之栽培灌溉,是下學也。至於日夜之所息,條達暢茂,乃是上達。人安能預其力哉?故凡可用功,可告語者,皆下學。上達只在下學里。凡聖人所說,雖極精微,俱是下學。學者只從下學裡用功,自然上達去。不必別尋個上達的工夫」。

귀주 용장에서의 유배 생활은 양명의 생애중 불과 2~3년에 불과했지만, 그 강렬함은 다른 어떤 생애와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때가 바로 ‘마음이 곧 이치'(심즉리)라는 양명학의 깨달음이 이루어진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양명 나이 35세~37세 때의 일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학자가 인생의 큰 고비와 전환을 겪으며 이룬 사유의 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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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식의 당연해보이는 진술이 왕양명 혹은 양명학이라는 구체적 대상에 대입될 때면 어딘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이 사건을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로 살펴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다시말해 ‘용장대오(용장에서의 큰 깨달음)’라는 양명학적 출발을 37세의 한족 사대부의 성취로 파악하기 이전에(혹은 이후라도), 이 사건에서 용장이라는 이민족 오랑캐 지역 즉 공간의 문제는 결코 주변부적인 것으로만 스쳐 지나가듯 언급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연하면 이것은 양명학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양명학은 유학 그리고 중국이라는 내적인 차원에서만 국한되어 사유된 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양명학의 특이점은 유학 내적 사건, 중국 내적 사유로 제한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11세에 성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멀리 안남(베트남)까지 내달렸던 마복파 장군을 동경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을 뿐 아니라 붓 대신 칼과 활을 들고 전쟁터에 서 있었던 한 인물의 기상과 의지와 비전 등등이 그저 천재적이고 비상한 인물의 훌륭한 능력이라는 배경으로 추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양명의 학문이 유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양명의 학문은 단지 유학 내적 사건 이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얘기가 엉뚱한 데로 빠지지 않기 위해 단도직입하겠습니다. 제 질문은 간단합니다. 양명학에서 용장(귀주성)이란 어떤 의미인가, 입니다. 복건성의 주자라는 말에 짝이 될만한 양명의 사상적 영지는 어디일까요. 고향 절강성 여요일까요? 19세에 소년 등과했지만 몇 번의 경우를 빼곤 복건성 민땅에서 평생의 학문을 주도했던 주자와 달리 양명은 11세에 이미 아버지를 따라 고향 여요현을 떠나 북경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의 양명은 잘 알려진 것처럼 평생을 길 위에서 보냈습니다. 그것도 전사로서 말입니다. 이는 양명에게 삶의 무게 중심이 언제나 그가 이동중(!)인 현장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장은 그러한 자각의 분기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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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용장 생활의 첫 번째 특이점. 그것은 용장이 양명을 구성(?)하는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용장에서는 사대부 관료 유학자 왕양명이 사라집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양명은 “성인께서 이곳에 계신다면 어떤 도리가 있을 것인가?”하고 묻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먹는 것과 입는 풍속이 다르고, 종족도 다르고, 산천과 산세와 기후와 동식물 등이 전부 다릅니다. 이는 삶에 대한 감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달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성인의 도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앞서 인용한 육징의 질문은 하학(下學)과 상달(上達)에 관한 논의이고, 이는 <논어> 헌문편에 나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자공이 말했다. “어째서 아무도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학(下學)해서 상달(上達)할 따름이다. 나를 알아줄 이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논어>, 헌문편)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전통적이고 소박한 의미에서 하학상달은 보통 물질적이고 인간사에 해당하는 온갖 것들(하학)을 정진하여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이치의 깨달음(상달)에 이른다는 뜻을 갖습니다. 주자의 해석을 빌리면, 하학은 사물에 해당하고 상달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치는 사물 속에 있고 사물은 이치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즉 사물을 탐구하여 이치를 통찰(통달)하는 것이 하학으로 상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징의 질문에 대한 양명 선생의 대답은 기존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결이 다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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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힘을 쓸 수 있는 곳은 오직 하학뿐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양명은 오직 하학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상달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양명은 상달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양명의 논점은 하학과 상달이 따로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하학입니다. 요컨대 힘을 쓸 수 있는 곳은 오직 하학뿐입니다. 그럼 상달은 무엇일까요? 상달은 하학에서만 존재 가능합니다. 이치란 현상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과 더불어서만 현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학이 있을 뿐입니다. 용장에도 양명에게도 오직 하학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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