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민(감이당)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일 제자인 마하가섭은 승단에 있던 어떤 비구가 “부처가 죽어서 이제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네.”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부처님을 너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자들은 잔소리꾼 하나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좋아한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장면이지 않은가. 아마 마하가섭도 놀랐을 것이다. 저런 마음을 가진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설법한다면 얼마나 형식적인 틀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달할 것인가. 이 위기를 감지한 마하가섭이 부처님 말씀을 정확히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500명의 제자들을 결집한다. 사실 이 일은 사전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부처님 살아 생전 수많은 사람들과 괴로움에 대해 묻고 답한 내용을 암송하여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근본 불교(根本佛敎)다. 세월이 흘러 부처님과 그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이 모두 죽고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근본 불교(根本佛敎)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진다. 시대 변화에 맞춰 율법이 변해야 한다는 대중부(大衆部)와 불교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상좌부(上座部)로 불교가 분열된다. 이를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한다.

taylor-simpson-_zlok_3Zr_A-unsplash

부처님 사후 300년 즈음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Asoka, BC268?-232?) 왕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된 불교를 화합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중재와 통합에 실패한 아쇼카왕은 상좌부의 손을 들어주고 대중부 스님들을 쫓아내게 된다. 아쇼카왕은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택하고 상좌부 승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탁발 수행을 하던 승려들에게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러자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승려들은 걸식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 대신 사원 속에서 불교를 이론화(아비달마 교학불교) 하고 선정 수행을 통해 자신이 아라한이 되려고 했다.

‘아라한은 부파불교의 수도인들이 지향한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그런데 이 아라한은 원래 초기 불교집단에서 인간 싯다르타를 존경해서 부르는 열 개의 존칭(十號) 중 하나였다. 응공(應供) 즉 아라한이란 얻어먹어도 그것이 업이 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존경스러운 사람이란 뜻이었는데 부파불교의 시대에 내려오면서 이러한 아라한의 의미가 변질된다. 아라한은 사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도달하는 최고의 성스러운 경지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과정을 거쳐 아라한이 되는 단계로 설정되었다. 또한 아라한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부파(部派)마다 견해가 달랐다. 아라한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고 논쟁하는 가운데 불교는 점점 대중들과 멀어졌다.

아울러 기존 브라만교가 불교의 철학 및 인도 토착신앙을 흡수하여 사상을 재정비하면서 힌두교로 탄생하였다. 결국 대중들은 대거 힌두교로 떠나게 된다. 이에 불탑을 돌며 부처님을 그리워하던 재가 불자들과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은 승려들이 모여 새로운 불교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보살’을 수행 주체로 하는 대승불교(大乘佛敎, Mahayana Buddhism)이다.

linh-le-5sFk8jFZ43o-unsplash
‘대승’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큰 탈 것, 뛰어난 탈 것이다.

‘대승’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큰 탈 것, 뛰어난 탈 것이다. ‘탈 것’이란 가르침을 비유하는 말이다. 즉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 나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승이 있으면 소승이 있다. 소승은 스스로 아라한이 되기를 목표로 살아가는 수행자의 집단, 아비달마 교학불교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즉 불교사적으로 기존 종단을 비판하고 혁신적인 불교 운동의 정당성을 내세우고자 ‘대승’이라는 명칭을 만든 것이었다. 스스로를 대승이라 지칭하고 이전에 있던 기존 불교를 소승이라 부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승에게는 소승이 존재하지만 소승에게는 소, 대승의 개념이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승불교의 초기 공동체는 아주 적은 집단이었으나 ‘크다’라는 대승 이름 덕분인지 점점 세력이 확장된다. 세월이 흘러 상좌부 소승 불교는 남방으로 전해져서 미얀마, 버마 등지에서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대승불교는 북쪽으로 전해져서 중국과 티벳,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지금까지 번성하게 된다.

대승 불교의 수행 주체인 보살(菩薩)은 아라한과 무엇이 다를까? 보살이란, 보디 샤트바(bodhisattva)의 한역이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이고 샤트바(sattva)는 중생이다. 이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보살은 중생(샤트바sattva)이지만 깨달음(보디bodhi)을 향해 가는 수행자 모두를 일컫는다. 출가자인 승려만 깨우칠 수 있다는 소승불교의 제한성을 깨고, 깨달음의 마음을 낸 사람, 즉 보살로 수행 주체가 확대된 것이다. 아라한이 승가 제도의 보호를 받는 특수한 출가자에 국한되었다면 보살은 출가자(스님), 재가자(일반 신도)를 가리지 않는다. 즉 보살에는 승(僧), 속(俗)의 이원적인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만이 혹은 내가 속한 어느 집단만이 아라한이 된다는 일체의 분별과 세속의 특권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우월의식, 특권의식의 거부가 곧 대승의 출발인 것이다.’

jay-castor-7AcMUSYRZpU-unsplash

소승불교에서는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자라는 개념이 없고 다만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는 생사의 수레바퀴를 윤회하지 않는 아라한이 수행의 최고 목표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수행의 목표가 더 넓어진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말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중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하였다. 지장보살과 유마거사처럼 중생 속에서 중생을 위해 수행하여야 한다는 뜻을 품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이 대승불교의 탄생과 함께 대승경전도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다. 당시 부파불교는 아비달마 교학불교로 일반 신도들이 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초기 대승경전은 깨달음과 체험을 강조한 근본불교의 수행 관점을 잘 이어 받고 반야(般若, 깨달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즉 반야경은 대승 사상을 표방하는 경전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전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다.

3221쪽이 되는 방대한 분량인 『대반야경』 중 아주 짧은 6쪽에 해당하는 것이 『금강경』이다. 이 경전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독송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간결하게 짧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을 전부 독송하거나, 더 압축하여 이 경의 네 가지 게송만 외워도 복이 온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승 가르침의 핵심인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초기에 만들어졌지만 대승의 의도를 아주 간결하고 폭넓게 품고 있었다.

theravada-buddhism-4745053_640

대승불교가 번성하면서 중국에서 점차 경전의 양이 방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비달마 교학불교처럼 다시 경전의 내용과 형식에 집착했다. 이 프레임을 깨고자 나타난 것이 선종(禪宗)이었다. 그래서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마음을 꿰뚫어 알아), 견성성불(見性成佛, 본성을 보아야 함)’을 표방한다. 선종은 경전 공부보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 보는 수행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이 선종에서도 『금강경』이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는 『금강경』의 내용이 선종에서 말하는 ‘마음을 바로 보는 것’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중국 선종(禪宗)은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지금 한국 현대 불교의 근간이다. 이렇게 『금강경』은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곁에 가장 친숙한 경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john-mark-smith-F_cHIM0Kcy4-unsplash
“보살의 길을 함께 가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금강경』이다.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이 시대에 오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하는 물음으로 부처님 근본 교설을 풀어내어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금강경』은 첫 대목에 부처님이 1250인의 승려들과 함께 걸식하고 발을 씻고 명상하는 하루를 묘사한다. 당시 부유한 승원에 앉아 대중과 격리되어 혼자 아라한을 성취했다고 논쟁하는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소통하는 것이 『금강경』의 모습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행하셨던 그 길, 즉 “보살의 길을 함께 가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금강경』이다. 결국 『금강경』은 사람들과 항상 함께 했던 부처님의 행적을 그대로 담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누구나 쉽게 접하도록 만들어진 경전이다. 『금강경』은 30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반야부의 다른 경전에 비해 길이가 짧지만 핵심은 다 담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노래처럼 외울 수도 있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만큼 『금강경』은 2000년을 살아남은 친숙한 경전이다. 『금강경』의 내용은 짧지만 그 핵심적인 게송들은 이 방대하고 복잡해 보이는 불교의 입구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대승경전의 대표적인 책이기에 불교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공부를 시작하기에 『금강경』은 아주 좋은 책이다.

5 1 vote
Article Rating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