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민(감이당)

금강경의 구조는 총 3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경의 1장은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그리고 있다. 이 첫 장면에 금강경이 말하고자 하는 도리(道理)가 모두 들어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1장만 읽고 우리가 금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서인지 2장부터는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께 우리를 대신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가 바로 수보리이다.

불경마다 부처님께 질문하는 제자가 다르고, 부처님의 답변도 제자들의 질문에 따라 다른 지혜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후기 대승 경전인 『법화경』에서는 지혜 제일인 사리불이, 『원각경』에서는 보살행을 제일 잘하는 보현보살이 질문을 한다. 그래서 지혜에 대해 알고 싶다면 『법화경』을, 보살행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원각경』을 읽으면 된다. 대부분의 불경이 질문하는 제자들의 특징에 따라 그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금강경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처님께 질문하는 수보리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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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는 기수급고독원을 보시한 거부 ‘수닷타’의 조카였다. 그는 총명하고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나 성질이 포악하고 화를 잘 냈다. 잘 생긴데다가 지나치게 머리 좋은 청년들은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 있지 않은가. 수보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화가 나면 그 성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화를 내는 사고뭉치 청년이었다. 이런 수보리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족들은 그에게 부처님을 한번 만나보기를 권했다. 그의 포악한 성질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수보리는 “부처를 만나서 무엇을 하겠나? 그는 인생이 덧없다고 하는데!”라고 받아치며 부처님 말을 오히려 비꼬았다. 그리고 숲속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나 동물들에게 고함을 치고 화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숲속의 동물들은 수보리의 치받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산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산신은 수보리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로 갔다. 그토록 완고했던 수보리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출가했다고 한다. 도대체 부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금강경』에서 그 힌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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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수보리는 열심히 수행하여 깨닫게 되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수행자,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 불리게 된다. 부처님 제자 중 평화롭게 사는 이 가운데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난하는 자와 다투지 않는 것은 큰 지혜에 속한다. 또 그는 탁발하는 집집마다 그곳에서 자비 명상을 닦았다. 집안의 우환 중 제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가족들끼리 다투는 것임을 수보리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탁발을 하러 온 수보리가 자비명상을 하면 그의 마음이 전달되어 그 집안이 더 화목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접하기를 좋아하여 수보리에게는 공양제일(供養第一)의 칭호가 붙었다. ‘수보리는 그에게 보시하는 사람들이 공덕을 쌓아 세속의 욕망을 성취하는 것보다 자비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했다. 바라는 마음 없는 자비심으로 보시한 공덕이 최상의 진리를 배울 기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탁발하는 집을 차별하지 않고 법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두지 않았다.’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공(空)을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해공제일(解空第一)’이 수보리를 가장 대표하는 별명이다. 그럼 수보리가 제일 잘 안다는 공(空)이란 무엇일까? 공(空)의 한자 뜻풀이는 ‘비다, 없다, 헛되다’이다. 해공제일의 공(空)은 단순히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공(空)은 ‘미리 결정되어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은 인연 따라 유동하고 변화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조건)에 따라 나는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며, 의사가 되기도 하고, 학생(변화하는 상태)이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아공, 我空)이다. ‘나는 무엇이다!’하고 고정되어 확정된 그 무엇이 없다(아공, 我空)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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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공(空)은 ‘미리 결정되어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사실 『금강경』에는 공(空)이란 말을 직접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금강경』에서 해공제일인 수보리가 부처님과 대화하는 제자로 발탁된 이유는 무엇일까? 잠깐 대승 불교가 나타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대승 불교는 아비달마 교학불교를 비판하면서 나타났다. 아비달마 교학불교는 사원의 승려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법을 정리한 것은 불교사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아비달마 교학불교는 ‘문자화된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 부처님이 애초에 가르침을 펼치셨던 근본 취지를 망각한 것이 문제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를 가는 법을 가르치셨다. 아비달마 불교도들도 부처님 가르침(교법)에 의거하여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교법에 집착한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가르침(교법)을 뗏목에 비유하신다. 뗏목이 강을 건너갈 때는 필요하지만 육지에 도착했는데도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신다. 부처님 가르침(교법)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라 마음이 머물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금강경』은 직접적으로 공을 말하지 않지만 공의 논리를 압축하고 있다. 그래서 해공제일인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질문하는 자로 설정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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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의 별명들을 살펴보니 『금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제 부처님과 수보리의 질의응답을 통해 『금강경』의 지혜를 하나씩 배워 보도록 하자.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

2장부터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깨달음에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금강경정화 씀, 법공양, 17

수보리는 이렇게 깨달음에 마음을 낸 우리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음은 또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부처님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러자 부처님은 깨닫고자 하는 사람들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모든 중생들, 곧 알에서 태어난 중생, 모태에서 태어난 중생, 습기에서 태어난 중생, 스스로 변화해서 태어난 중생, 형체가 있는 중생, 형체가 없는 중생, 분별이 있는 중생, 분별이 없는 중생, 분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중생 모두를 번뇌가 다 없어진 열반에 들도록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 금강경정화 씀, 법공양, 18

부처님의 대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중생을 열반을 들도록 구제하라는 말씀이다. 열반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가 사라져 일체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나도 깨닫지 못했는데 모든 중생을 도우라니.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열반에 들게 할 중생의 범위가 아주 넓다. 인간뿐 아니라 새, 포유류, 곤충, 나아가 산과 돌 같은 자연물, 그리고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까지. 말 그대로 우주의 모든 존재를 다 포함한 어마어마한 중생을 제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금강경』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부처님은 다 아시니까 중생을 이렇게 모두 보실 수 있나 보다. 나는 저렇게 못 보는데. 나도 깨달으면 부처님처럼 모든 중생이 보일까?’하고 신기해했다. 근데 이제 내가 『금강경』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내가 깨닫든 깨닫지 못했든 이 장면을 풀어야 한다. 깨달으면 다 알 줄 알고 이런 장면들을 유보해 두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을 꼼꼼히 다시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가 아니라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하러 산속으로 떠나라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도, 시선도 돌리지 않는 우리에게 모든 중생을 보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라는 것이었다. 마음조차도 내지 않는 우리가 세상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신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집중한 시야를 더 많은 중생을 포괄하는 쪽으로 확장하라는 말씀이었다. 깨달음에 마음을 낸 사람이니 깨닫고자 하는 노력은 당연히 하고(上求菩提), 더불어 중생을 구제(下化衆生)하는 대승의 비전을 서두에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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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니 내가 이전에 『금강경』을 대하는 태도는 나 하나에만 국한되어 아주 좁았었다. 나 혼자의 구제라서 내 문제에만 집중했다. 내 공부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는 전제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많이 배워야 하는 학생이었다. 문제가 하나 풀리면 기뻐하는 학생처럼 나의 번뇌가 해결되면 즐거워하기만 했다. 내가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금강경』에 대한 글을 써갔다. 그랬더니 감이당 공부를 하면서 내가 받은 지적은 금강경을 대하는 태도가 힐링 정도에서 그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강경』을 읽고 나의 번뇌가 해결된 것이면 충분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번뇌밖에 관심이 없으니 ‘모든 중생’이란 말 자체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깨달아야 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처님의 간절한 말이 내 귀에 들리지 않고 오직 내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의 불교 공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대승 경전인 『금강경』이 말하는 지혜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나를 고집한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보이지 않고, 중생들 역시 결코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에게만 향해있던 마음을 세상으로 향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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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선을 돌리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부처님처럼 수많은 중생이 있음을 느끼는 광대무변한 마음일 것 같다. 이렇게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자 ‘부처님 말씀대로 이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질문이 생겼다. 깨달으면 제도할 것이라고 과거에 미뤄뒀던 일들을 지금 당장 하는 것이었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내가 누군가를 도울 방법을 궁리하는 마음이 생겼다. ‘무생물인 돌까지도 제도하려면?’하는 질문이 당장 이 순간 돌을 볼 때 내 태도를 관찰하게 한다. 돌에게도 내 생각이 미치는 것을 궁리하고 계속 탐구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공부한 지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내 기쁨이 미세한 것부터 저 멀리까지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은 자비심의 표현이 아닐까? 진정한 자비가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지성과 지혜로 꾸려진 자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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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인 돌까지도 제도하려면?’하는 질문이 당장 이 순간 돌을 볼 때 내 태도를 관찰하게 한다.

『금강경』의 진정한 핵심은 나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연마하여 삶의 현장 속에서 세상과 연결하는 지혜와 자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부처님 말씀을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이야기는 더욱더 우리의 기존 관념을 넘어선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모두 제도했을지라도 참으로 제도되는 중생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수보리야, 왜냐하면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 이다. 금강경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정화 씀, 법공양, 18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모두 제도했는데 참으로 제도되는 중생이 없다니?’ 부처님은 계속 우리의 생각에 충격을 주고 계신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인식했더니 거기서 더 나아가서 ‘참으로 제도되는 중생이 없다’고 그 경계를 또 깨고 있다. 『금강경』에서 논리를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은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질문은 일단 넘어가자. 왜냐하면 다음 연재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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