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감이당)

澤水困 택수곤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 곤괘는 형통하고 올바를 수 있으니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初六,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초육효, 밑둥만 있는 나무에 앉아 있으니 곤란하다.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서 3년이 지나도 볼 수 없다.

九二,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亨祀, 征凶, 无咎.

구이효, 술과 밥에 곤궁하지만 붉은 무릎가리개를 한 구오의 군주가 올 것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로우니 나아가면 흉하여서 탓할 곳이 없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육삼효, 돌에 눌려서 곤란하고 가시풀에 찔리며 앉아 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구사효, 천천히 내려감은 쇠수레에 막혀 곤란하기 때문이니, 부끄럽지만 끝맺음은 있을 것이다.

九五,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구오효, 코를 베이고 발뒤꿈치를 잘리니 자주색 무릎가리개를 한 신하가 막혀 있지만, 서서히 기쁨이 있으리니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

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曰 動悔, 有悔, 征吉.

상육효, 칡덩굴과 높고 위태로운 자리에서 곤란을 겪으니, 움직일 때마다 후회하며 뉘우치면, 어떤 일을 하든 길하게 된다.

요즘 감이당 대중지성은 1학기 에세이 발표 시즌이다. 에세이 발표 현장은 대중지성의 꽃이자 가장 힘겨운 순간이기도 하다. 나만의 특별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글로 써서 남 앞에서 보편화할 때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아니 문제를 조금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는 감격의 순간이다. 한편, 글에는 무의식과 존재가 드러나기에 내가 다 털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르게 살고자 공부하러 왔는데 막상 다르게 살 길을 마주하면 힘겨워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모순을 경험하기도 한다. 내 경우가 그렇다. 대중지성 2년 차 때 나는 4학기 기말 에세이를 쓰지 못했다. 에세이를 안쓴다는 것은 대중지성 안에선 하나의 큰 사건이다. 나 자신과, 도반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특히 4학기 에세이는 한 해 공부를 마무리하는 시간이고 다음 공부 방향을 정하는 시기이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나는 에세이을 안 썼고, 발표현장에 갈까 말까를 놓고 너무너무 고민을 했다. 나는 이 사건으로 곤경에 빠졌다.

곤(困)은 나무(木)가 우리(口) 안에 갇혀있어서 뻗어나가지 못하고 막혀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괘상으로 보면 연못(澤) 아래에 물(水)이 있다. 보통의 연못이라면 연못 안에 물이 고여있는데 연못에 있는 물이 아래로 흘러서 갈라진 바닥이 다 드러나 있다.(澤無水) 연못에 물이 있어야 물고기도 살고, 가뭄에 그 물로 농사도 짓고 하는데 물이 없는 곤궁한 상황이다. 또한, 양이 음들에게 가려져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양이란 군자다. 군자가 소인에게 은폐되어 곤궁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군자에겐 왠지 어려움은 없고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데 군자도 어려움을 겪다니 일단 반갑다. 삶은 울퉁불퉁하기에 군자든 소인이든 누구나 곤궁한 상황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갖는 마음가짐이 군자와 소인을 나눈다. 심지어 곤괘의 상육효는 곤경인데도 다른 효들과는 달리 길(吉)하다. 물론 사물은 극에 이르면 변하고, 곤괘의 상체가 기쁨을 나타내는 택(澤)괘지만 곤경이 어떻게 길할 수 있을까? 곤괘를 통해, 에세이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감이당 학인들과 지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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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소인에게 은폐되어 곤궁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감이당에 온 첫해에는 뭣 모르고 그냥 글을 썼다. 그러다 2년 차가 되니 에세이는 매번 중언부언하고 있고, 똑같은 주제만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텍스트와는 접속하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고 싶은데 진척은 없고 이런 갈등이 4학기에는 극에 달했다. 상육효가 딱 그 상황을 말해준다. 곤괘의 상육효는 곤경이 극에 달한 상태다. 상육효는 칡덩굴과 높고 위태로운 자리에서 곤란을 겪으니, 움직일 때마다 후회하며 뉘우치면, 어떤 일을 하든 길하게 된다.(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曰 動悔 , 有悔, 征吉.) 갈류(葛藟)란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칡과 등나무는 감아 올라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라 얽히기 마련이다. 심적 갈등으로 칭칭 감겨있는 상황이다. 얼올(臲卼)은 위태롭게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낸다. 칡덩굴이 나를 옭아매고 위태로운 상황 이어서 나아갈 수도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이다.

나는 그 당시 어렵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발표 전날이 되니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했다. 10시까지 글을 올려야 하는데 7시쯤 포기해 버렸다. 글을 포기하고 나니 상황은 더 혼란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었다. 글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에세이 발표현장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발표현장에 가려고 하니 글을 쓰지 않았기에 부끄러웠다. 선생님과 도반들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 과제도 안 낸 무책임한 사람으로 볼 것 같았다. 안 가자니 한 해 공부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도반들에게 인사도 못했기에 그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또한 이렇게 끝나면 공부 인연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가방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시계만 보고 있었다. 지금 나와 같은 곤경 속에 있는 학인들이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앞두고 갑자기 잠수를 타거나, 집안에 일이 생기고, 몸이 아픈 학인들에게 (물론 실제로 아플 수도 있지만) 이 택수곤은 중요한 조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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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육효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를 알려준다. 왈, 동회, 유회, 정길(曰 動悔 , 有悔, 征吉.) “‘동회(動悔)’란 움직일 때마다 뉘우침이 있다는 말이니, 곤경에 빠지지 않는 일이 없는 것이다. ‘유회(有悔)’는 이전의 잘못을 스스로 탓하는 말이다. ‘왈(曰)’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정이천, 『주역』, 950p) 움직일 때마다 이전의 잘못을 내가 알고, 소인의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후회할거야 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이 곤경의 상황을 초래했음을 정확히 아는 것. 그럴 때 통찰할 수 있고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군자의 마음이 생긴다. 나로 인한 것이니 헤쳐나갈 수 있는 것도 내 태도에 달렸다. 나는 마음은 글을 잘 쓰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고민만 하다 그냥 포기해 버렸다. 한 스텝씩 밟아가야 공부에 진전이 있는 것인데 순서는 지키지 않고 점프하고 싶은 허황된 욕심이 앞섰다. 봄에서 가을로 훌쩍 건너뛰는 그런 불가능한 것을 원했다. 미리미리 도반들과 의논하며 준비했으면 이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갈등하는 시간에 텍스트를 한 번 더 읽고 몇 줄이라도 쓰면 됐는데 갈등에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간 에세이 발표현장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도반들은 이렇게라도 온 게 공부고, 공부한 보람이라고 격려해줬다. 한편으론 도반들은 자신의 발표에 신경 쓰느라 나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 막상 발표가 시작되니 도반들 글도 나와 비슷했다. 나도 쓸 걸… 후회가 밀려왔다. 도반들이 선생님께 코멘트를 듣는 것도 너무 부러웠다. 발표가 끝난 후 도반들은 홀가분하고 시원했는데 나는 많이 피곤했다. 하루종일 내가 이럴려고 공부했나 하는 자괴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쓰지 못했지만, 자괴감으로 힘들었던 그하루가 계속해서 공부를 해 나가게 하고, 정말 힘들어도 글을 쓸 수 있게끔 나를 바꾸었다. 물론 그 이후론 글을 제출하지 않은 적도 없다. 글쓰기의 기쁨이란 잘 써서가 아니라 내가 참여를 했고, 코멘트를 얻는 그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데 있음을 배웠다. 그 후로 나는 글을 잘 안 써도 되니까 쓸 수 있는 만큼 쓰자.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그날의 곤경에서 얻은 이 배움 덕분에 지금 이렇게 공부의 기쁨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이 기쁨이 수풍정의 지혜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학인들이여 부디 힘들다고 에세이를 포기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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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쁨이 수풍정의 지혜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학인들이여 부디 힘들다고 에세이를 포기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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