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숙(감이당)

N번방의 사람들

작년, 코로나가 전 세계로 전파되며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을 때, 코로나보다 더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일명 N번방 사건. 디지털을 이용한 성범죄 사건이었는데, 그 방법과 잔악함에 모두가 너무나 놀랐다. 인간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나? 아니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였나? 허탈함과 분노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여성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 피해자를 상담하던 지인으로부터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간간이 듣기는 했으나, 잔악함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런 성범죄 방에 25만 명의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었다니. 남자란 남자는 다 ‘혹시 N번방 사람?’하고 의심해 볼만한 숫자였다. 박사방(N번방 중 하나)을 운영하던 운영자가 붙잡혔는데 그 평범한 모습에 더 놀랐다. 아직 애티를 벗어나지 않은 얼굴과 그런 잔악한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 평범한 생활. 너무나 잔인한 범죄여서 가해자의 얼굴도 조폭과 닮고, 그 생활도 조폭과 연관 있지 않을까하고 상상했었나보다. 이 정도 되니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가해자들은 도대체 어쩌다 N번방에 연루되었을까가 궁금해졌다. 25만 명이라는 숫자는 이들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숫자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 깊숙이 어떻게 이런 잔인함이 파고들었을까? 우리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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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식의 근간, 명언(名言)

잠시 유식 얘기를 해보자. 우리의 근본식인 아뢰야식에는 종자(경향성)들이 저장되어 있고, 이 종자들이 7전식(轉識)을 통해 현현한 것이 세상이다. 내가 보고 겪는 세상은 나의 아뢰야식의 종자가 현현된 것이다. 아뢰야(阿賴耶)는 ‘저장하다’, ‘축적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현 세상은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대 방출된 상태(창고대방출?^^)라고 할 수 있다.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에는 명언(名言)과 업(業)이 있다. 그리고 명언에는 현경(顯境)명언과 표의(表義)명언 두 종류가 있다. 현경명언은 명확하게 언어로 나타낼 수는 없으나 경계(境)를 드러내는 모든 이미지나 인상(印象) 같은 것이고, 표의명언은 이름(名)이나 구절(句), 문장(文) 등 음성으로 의미를 표현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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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본식인 아뢰야식에는 종자(경향성)들이 저장되어 있고, 이 종자들이 7전식(轉識)을 통해 현현한 것이 세상이다.

내가 본 것이 명확하게 언어로 나타낼 수는 없어도 이미지나 인상으로 인식가능하다면 현경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얼굴 표정이나 손짓, 눈짓, 손발의 움직임 등 보이는 어떤 대상에 대해 마음에 새겨지는 바(印象)가 있다면 현경명언에 해당한다. 또 내가 들은 것이 명확하게 언어도 표현할 수 없어도, 목소리의 울림, 톤, 높낮이 등으로 마음에 새겨지는 바가 있다면 이것도 현경명언이다. 구체적인 이름이나 구절, 문장으로 의미화 되지는 않았지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며 어떤 이미지나 인상을 가진다면 모두 현경명언이라 할 수 있다는 것. 반면, 표의명언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말로 표현하는 모든 것이다. 예를 들어, 거리를 걸으며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건물, 하늘, 가로수, 친구의 표정, 손짓, 발짓, 목소리의 톤 등 ‘무엇이다’하고 구체적으로 의식되지는 않지만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 모든 것은 현경명언이고, 친구와 대화하면서 언급되는 구체적인 이름들, 그 이름들이 모여 형성하는 구절들과 문장들, 지나치며 보는 건물에 걸린 상호들 등 의미를 가지며 인식되는 모든 것은 표의명언이다. 이에 따르면, 명언은 ‘환경적으로 접하고 있는 모든 것’과 ‘의미로 나타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명언들은 매 순간 우리의 근본식인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된다. 즉 환경적으로 접하고 있는 모든 것과 내가 하는 말, 생각, 읽고 보는 각종 의미들은, 의식하든 안하든, 끊임없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어(현행훈종자) 다음 순간 세상을 인식하는 근간으로 작용한다(종자생현행). 우리의 인식활동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내면에 미리 축적되어 있는 가치관이나 의미부여에 의해 시작한다.”(『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 p104).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한다. 이성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저 사람 또는 저것이 좋아서, 이 사람 또는 이것이 싫어서 한다. 좋고 싫음의 즉각적인 느낌이 선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좋고 싫음은 우리 내면에 미리 축적되어 있는 가치관이나 의미부여(명언종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우리 내면에 축적되어 있는 의미들은 우리 삶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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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미디어로 욕망을 증폭하다

그런데 인간은 좋아하는 것, 즉 욕망하는 것을 의미화하고 그것에 이름(名言)을 붙인다(앞 연재 참조).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들엔 우리의 욕망이 담겨있고, 우리는 그 욕망을 근간으로 해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동물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충족된 순간 잊는다. 사자가 노루를 사냥할 때를 보라, 그리고 사냥 후 그 여유로움을 보라. 하지만 인간은 ‘좋은 것’(欲)이 반복되기를 바라며(望)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반복하여 말하고 생각한다. 이름이 반복되는 만큼 욕망도 반복된다. 욕망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반복될 때 마다 증폭된다.

쉬는 날,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저녁이 되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 적이 없는가? 할 일 없이 인터넷을 잠시 돌아다녔을 뿐인데, 무언가 사고 싶은, 왠지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 적은 없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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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광고, 드라마,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우리 욕망을 자극하는 화면과 소리들을 보낸다. 그리고 인터넷은 키워드 하나만 클릭하면 내가 원하는 것들이 있는 곳(site)으로 데려다 준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자신이 사는 환경을 편리하게 바꾸었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보여주는 미디어도 만들었다. 욕망은 감각적 자극이 없으면 자연스레 잊혀지거나 감소할 수 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츄르(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를 하루에 몇 번씩 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라고 조른다. 야옹, 야~~옹, 야~~~옹, 정말 괴롭게 한다(ㅠㅠ). 그런데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르지 않는다. 그동안 츄르의 자극을 잊은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는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말(표의명언)과 영상(현경명언)을 반복한다. 잊혀 질만하면 기억하게 하고, 기억하면 갖고 싶어진다. 심지어 인터넷은 클릭 몇 번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복하여 듣거나 볼 수 있다. 매일 매시간 정말이지 무한히.

그러니 현대의 각종 미디어들은 우리 욕망을 증폭하는 무한 증폭기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말과 이미지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되고, 이 자극은 명언의 형태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는 이 증폭된 욕망을 바탕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증폭된 욕망은 7전식이 현현할 때 번뇌의 마음작용(心所)으로 나타난다. 번뇌는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것은 계속되기를 바라는 탐(貪)의 마음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진(瞋)의 마음. 탐과 진의 끝에 잔인함이 있다. 좋아하는 것만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와 연결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tv를 틀 때 마다 인터넷을 연결할 때 마다 탐과 진의 마음을 무한히 증폭시킬 수 있는 증폭기를 켜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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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러나 또 다른 N번방들

N번방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르게 잔인하고, 남다르게 돈을 좋아하고, 남다르게 성에 관심이 있었을까? 그 중 어떤 사람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하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또는 게임이나 검색 중 인터넷 화면에 뜨는 이름들을 무심코 클릭했을지도 모른다. 첫(?) 욕망은 단순했다. 그저 자기 욕망을 충실히 표현하는 키워드를 타고, 인터넷에 자주 접속하다보니, 어느 날 도착한 곳(site)이 N번방이다. 동일한 키워드를 타고 왔으니, 동일한 욕망과 그 욕망을 표현하는 동일한 이름들로 구성된 방이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욕망이 반복되는 키워드의 클릭과 함께 증폭되었다. 자극적 화면(현경명언)과 자극적 이름들(표의명언)의 반복은 그들의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이 저장된 것들이 다음 그들이 클릭할 이름들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에, 단순했던 그들의 욕망은 무한 증폭되고, 욕망이 증폭된 곳에 그들만의 닫힌 세상이 만들어졌다. 돈과 성의 욕망이 무한 증폭된 세상. 그 외의 다른 모든 가치들로부터 닫힌 방, 아니 갇힌 방.

갇힌 세상은 잔인함을 낳고, 잔인함은 또 다른 갇힌 세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N번까지의 방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방들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나의 욕망이 극대화되었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욕망은 키워드를 타고, 즉 이름(명언)을 매개로해서 반복됨으로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평범한 것이 어떻게 잔인해질 수 있는 지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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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에, 단순했던 그들의 욕망은 무한 증폭되고, 욕망이 증폭된 곳에 그들만의 닫힌 세상이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N번방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 자주 검색하는 단어나 몇 번만 검색해도 뜨는 관련 사이트는 자신의 증폭된 욕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언제든 내 삶의 다음 스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다.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말, 듣는 소리, 무심코 보는 이미지들이 우리의 다음 순간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그 순간을 명확하게 포착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닿게 되는 세상이다. 연일 tv뉴스를 장식하는 평범한 일상속의 잔인한 범죄들은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놓쳤을 때 우리가 닿게 되는 또 다른 N번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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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4 months ago

불교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면에 축적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기도 하고 놀라웠어요.

그래서 정말 사소한 뭔가를 클릭할 때도 조심조심하게 되는 것 같고요.
(보통은 이미 축적된 종자의 발현에 따르지만요…ㅠㅠ 쩝)

욕망의 갇힌방에서 나오는 방법이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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