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민(감이당)

2) 인상(人相) - 아상의 집단화

인상(人相)은 아상(我相)의 집단화를 말한다. 인상(人相)은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으로부터 출발해 여성(性), 남성, 종교적 종파, 같은 출신 학교, 출신 지역과 그에 따른 정치색, 국가, 나아가 인종에까지 확장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속한 쪽을 내 편이라 부르며 나와 동일시(人相) 하고 그 나머지 모두를 배척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나 ‘우리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가족애’같은 말속에 ‘나의 이기심’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같은 인간’, ‘같은 집단’, ‘같은 편’과 같은 금 긋기조차 뛰어넘어야 한다고. 왜냐하면 이런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서 조차도 아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나와 일치시키려는 집착이 세계를 안과 밖으로 분별하는 금을 더 두텁게 긋는다. 이 경우 금 안에 있는 것은 나와 동일시하여 소중하다고 생각하여 집착한다. 그러나 금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고 심한 경우 폭력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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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내가 속한 쪽을 내 편이라 부르며 나와 동일시(人相) 하고 그 나머지 모두를 배척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인상의 사례는 바로 가족이다. 현대인들의 자아는 딱 셋, 아빠와 엄마, 자녀로 규정되기에 오로지 가족만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내 배우자와 내 아이가 곧 나라고 생각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내 아이는 특별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누군가를 이기는 교육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주위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편견과 분쟁 이를테면 학연과 지연으로 인한 잡음, 백인 경찰이 흑인 시민의 목을 눌러 사망케 한 사건, 국가 간의 싸움은 모두 이 인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의 많은 빈곤 아동들을 놔두고 왜 아프리카 아동을 도와주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아이만 소중하다는 인상이 작동해 버린 것이다. 자아를 정당과 지역에 철저히 투영하고 있음은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6년에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이 올라와 70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왜 이렇게 반대할까? 한국은 순수한 단일민족이라는 무의식이 깊게 깔려 있고 낯선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거부감이 함께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에 살게 된 시간을 좀 길게 따져 보면 우리도 몽고, 중국,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와 여러 민족이 섞여서 이 땅에 좀 더 오래 산 이주민일 뿐이다. 또한 과거에도 지금도 수많은 한인들이 타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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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 하나만 붙잡는 것이 아상이 아니라 확대될 수가 있다. 경계가 가족인지, 민족인지에 따라 작은 아상과 큰 아상의 차이일 뿐 모두 아상이다. 이렇게 아상이 집단화한 인상이 작동하여 일으키는 사회적 분쟁은 수없이 많다. 보살은 이 모든 경계를 타파해야 한다.

3) 중생상(衆生相) - 중생의 범위에 그어진 금

중생상(衆生相)은 생명을 경계로 세상을 나누는 생각이다. 그래서 물, 햇빛, 공기와 같이 우리를 살게 해 주는 조건들에 대해 무지하여 생명의 이익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생상이다.

이 중생상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사건을 우리는 현재 목도하고 있다.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경향 신문 인터뷰(2020.5.14.)에서 미국 경제전문가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19 위기의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딱 잘라 ‘기후변화입니다.’라고 답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물 순환 교란의 극단적 형태로 ‘2019년 9월에 발생하여 2020년 4월 즈음 종식된 호주 산불’을 예로 든다.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 동물이 죽고 코알라가 멸종 위기라고 한다. 이렇게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들은 야생동물의 터전을 잠식하고 있다. 1900년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지구의 14% 정도였는데 지금은 거의 77%이다. 그 결과 야생 동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인간들이 재난을 피해 이주하듯 동물뿐 아니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재난을 피해 탈출하여 인간 곁으로 왔고,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다. 그것이 최근 몇 년 동안 에볼라, 사스, 메르스, 지카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라고 제레미 리프킨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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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이 예를 적용해 보자. 코로나19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인 RNA의 상태인 바이러스로서 스스로 살지 못하고 숙주를 필요로 한다. 본래 숙주는 박쥐였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산림을 훼손하니 우림에 살던 박쥐가 민가에 나타나게 된다. 무엇이든지 먹으려는 인간의 탐욕으로 박쥐를 잡아먹게 되고 박쥐들 사이에서만 전파되던 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게 된다.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던 바이러스에게 이동이 자유로운 전 인류가 노출되고, 면역이 취약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게 된 것이 작금의 사태이다. 박쥐의 바이러스에서 출발한 코로나19 사태는 새삼 온 세상이 연결되었음을 보여 주었고 이 연결성을 무시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나마 인류는 오로지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던 참이었다. 2019년에 개봉한 미국 문화의 상징인 할리우드 디즈니 영화 ‘겨울 왕국’ 2편과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그런 예이다. ‘겨울 왕국’을 보면 인간의 탐욕을 위해 만든 댐의 존재가 물, 불, 바람, 흙의 정령들을 노하게 한다. 그 결과로 구름은 해를 가리고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하여서 마을 사람들은 20년간 파란 하늘을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해치면 그 대가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스웨덴 환경 소녀 그레타 툰베리(16)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를 하여 전 세계인으로 하여금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툰베리는 2019년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툰베리는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피하고 태양광 요트를 이용해 대서양을 건넜다. 이날 회의에서 툰베리는 각국 정상들을 ‘세계 지도자들이 온실가스 감축 등 각종 환경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또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멸종 위기 앞에 있는데도,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라고 경고했다. 행동하는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성장이라는 환상에 갇힌 어른들의 중생상을 깨부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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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의 활동이 멈추어 버린 지난 세월은 생태계가 무너지면 인류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전과 같이 기후와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게 살 수는 없다. 쓰레기를 줄이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사소한 행동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나라 정책 결정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간과 동물, 식물과 무생물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이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연결에 대해 나름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기대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생명체인 한 누구도 이 인연장을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 아상을 주장할 수 없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공기, 물, 햇빛, 일상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부처님은 『금강경』 처음에 중생에 대해서 차근히 일러주셨다. 이 세상 만물 모두가 중생이라고. 중생은 인간, 동물, 조류, 어류뿐 아니라 햇빛, 공기, 바위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돌멩이조차도 중생에 포함시키는 부처님 마음을 확실히 알겠다. 중생상은 중생을 경계로 그어진 금이었다. 그러나 중생의 범위는 생명을 뛰어넘는다. 중생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했을 때 사람이 자연을 파괴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이렇게 보살은 ‘돌과 내가 한 생명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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