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진(감이당)

重澤 兌(중택태)  ䷹

 

兌, 亨, 利貞.

태괘는 형통하니,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

初九, 和兌, 吉.

초구효, 조화를 이루면서 기쁘게 함이니 길하다.

九二, 孚兌, 吉, 悔亡.

구이효, 진실한 믿음으로써 기쁘게 하니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六三, 來兌, .

육삼효, 아래로 내려가서 기쁘게 하니 흉하다.

九四, 商兌未寧, 介疾有喜.

구사효, 기쁨을 계산하느라 편안하지 못한 것이니, 구오의 군주에 대한 절개를 지키고 병이 되는 자(육삼)를 미워하면 기쁜 일이 있으리라.

九五, 孚于剝, 有厲.

구오효, 양을 벗겨 내려는 자(상육)를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

上六, 引兌.

상육효, 기쁨을 당겨서 연장하려는 것이다.

내 나이 40대를 목전에 두었을 때, 산다는 일이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재밌어 보이는 이런저런 취미활동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본 일이었다. 지금의 비대해진 나의 몸을 보고서는 ‘42.195㎞’를 뛰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고등학교 반창회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마라톤 풀코스를 같이 뛰어보자’라는 제안에 나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그걸 뛸 수가 있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들 했다. 하지만 ‘충분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완주하고 나서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봄 직하다’는 먼저 뛰어본 그 친구의 진지한 꼬임(?)에 몇몇 다른 친구들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즈음에 재밌어 보이는 일을 찾던 나 역시 좀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그 꼬임에 넘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 한 번쯤은 해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함께 그 해 가을 춘천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6개월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다 같이 모여서 훈련을 했고, 주중에는 개인적으로 연습을 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참여하게 된 첫 번째 도전에서 정해진 5시간을 약간 넘기기는 했지만, 완주에 성공을 했다. 골인 지점을 앞두었을 때 ‘우리가 함께 완주를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안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듯한 기쁨은 그 친구의 말대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주역에서 유일하게 다루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기쁨[說,悅]에 대한 것이다. 이 기쁨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는 괘가 중택태(重澤兌, ䷹)이다. 팔괘 중에서 기쁨이라는 뜻이 있는 태(兌)괘(☱)가 중첩된 상이다. 태는 연못[澤]인데, 연못이 땅을 적셔주기 때문에 기쁨의 뜻이 있다고 여긴다. 태괘의 상을 보면, 하나의 음효가 두 개의 양효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단전에서는 이를 “강(剛)한 것이 중(中)에 있고, 유(柔)한 것이 밖(外)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이천은 이를 “양강(陽剛)한 것이 중의 위치에 자리하니 마음속이 진실한 모습이고, 유(柔)한 효가 밖에 있으니 타인과 관계하는 데 있어 조화롭고 유연하게 대하는 모습이므로, 남을 기쁘게 하면서도 스스로 올바를 수 있다”<「주역」, 정이천, 글항아리, 1135쪽>라고 풀고 있다. 그러니까 주역이 가르쳐주고 있는 기쁨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의 충만함에서 비롯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기쁨의 감정은 남을 기쁘게 하지만 스스로의 올바름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주역이 가르쳐주고 있는 이 기쁨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을 때 느꼈던 그 기쁨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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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듯한 기쁨은 그 친구의 말대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인생에서 한 번이라고 생각하며 뛰었는데,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기쁨’과 ‘완주의 즐거움’을 지울 수가 없어서 계속 뛰게 되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의 풀코스를 뛰었고, 그 사이사이에 하프마라톤이나 단축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회 때마다 받은 완주기념 메달과 기념품, 그리고 운동복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집에 쌓이는 만큼 점점 뛰는 재미도 붙으면서 동네 마라톤 동호회도 가입하게 되었고, 연습하는 양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연습을 제일 많이 하던 시기에는 주중의 3일 정도는 아침에 10㎞를 뛰고, 주말에는 20~30㎞ 정도를 뛰었다. 연습하는 양이 늘어나면서 기록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록을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단순한 완주에서 4시간 30분 이내, 4시간 이내 완주 등으로 말이다. 4시간 이내 완주를 마라토너들은 ‘서브 4’라고 하는데, 풀코스 9번을 완주하면서 그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그러고 나서 완주 목표 시간을 ‘서브 3.5(3시간 30분 이내 완주)’로 설정했다. 그것을 위해서 더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기록이 조금씩 단축되면서 목표 시간에 접근하는 것에 희열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피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뛰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발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이라는 부상이 찾아온 것이다. 어느새 뛰기는커녕 걷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니 태괘의 육삼효가 눈에 들어왔다.

태괘의 육삼효는 “와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 흉하다[來兌, 凶]”이다. 정이천은 “와서 기쁘게 한다는 것은 찾아가서 상대가 기뻐하기를 구하려는 것이다”라고 풀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뜻을 굽혀 정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찾아가서 상대가 기뻐하기를 구하니, 그래서 흉한 것이다”<같은 책, 1140쪽>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상대가 기뻐하기를 구한다’를 ‘자기의 바깥(외부)에서 기뻐하기를 구한다’로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기쁨의 감정을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저버리고 자신의 바깥에서부터 기쁨의 감정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흉해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던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그 기쁨으로 인해서 달리기를 계속했고, 그리고 달릴수록 나의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완주는 당연시하였고, 그 완주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도전이 집착으로 변질하면서 내 안에서부터의 달릴 수 있다는 운동에 대한 기쁨보다는 나의 외부에 있는 ‘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외부인 것에서 기쁨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발바닥에 염증이 생기는 흉함을 얻게 된 것이다. 부상에 의한 흉함도 그렇지만 그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달리기의 기쁨, 완주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 더 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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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대한 기쁨보다는 나의 외부에 있는 ‘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십여 년 전에 나에게 찾아왔던 ‘족저근막염’이 흉하게만 다가왔었다. 하지만 태괘의 육삼효를 알게 되면서 그 흉함에서 작은 깨달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달릴 때마다 1분씩, 아니 1초씩 줄여가는 ‘시간 단축’이 주는 ‘짜릿함’이 있었다. 이것은 육삼효에서 말하는 ‘상대를 찾아가서 기쁨을 구하는 것[來兌]’, 즉 ‘나의 외부에서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외부에서 기쁨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달리기 자체의 기쁨, 완주 자체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게 했다. 주로 기록만을 경쟁에서의 우위만을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라톤 초심자들이 가질 수 있는 오류이기도 했다. 그래서 달리기 고수들은 ‘완주와 기록을 위해서 충분히 연습도 하지만, 그만큼 휴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동호인들과 즐겁게 달리다 보면 완주와 기록은 따라온다’라고 늘 강조했었다. 하지만 나는 ‘짜릿함’을 즐기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록 단축과 경쟁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운동을 무리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서 발바닥에 염증이 생겼던 것이다. 달리기의 기쁨과 완주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채 기록과 경쟁만을 생각하며 뛴 것은 달리기의 올바름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괘의 괘사에서 “기쁨이 형통하지만,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兌 亨 利貞]”라고 말하고 있다. 기쁨이 형통할 수 있지만 이롭기 위해서는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괘사의 뜻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흉하게만 생각했던 ‘족저근막염’이 준 이러한 깨달음을 되새기면서, 이제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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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1 month ago

선생님~ “지금의 비대해진 나의 몸”에서 빵 터졌어요^^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ㅎ

기쁨은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솟구쳐 올라야 흉하지 않다는 것.
저는 기쁨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자기 점검을 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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