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살림당)

2021년 남산강학원에 신(新)직종이 생겼다. 그 이름은 바로 ‘주맘(mom)’! 맘모스가 생각나는 무시무시한 이름 같지만, 주방의 엄마라는 뜻의 ‘주모(母)’를 친구들이 재미나게 바꿔준 것이다. 연구실 신(新)직종 ‘주맘’은 어떤 활동을 하는 걸까?

깨봉주방의 주역들, 그리고 주맘’?

지금까지 연구실 주방은 ‘매니저’와 ‘인턴’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이들은 학인들과 함께 먹을 메뉴를 짜고, 식자재를 준비하고, 밥 당번을 하러 오시는 학인분들에게 그날의 메뉴와 주방의 윤리를 소개하는 일을 한다. 365일 식사 시간에 딱! 맞춰 나오는 뜨끈하고 건강한 밥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주방 매니저와 인턴의 일이며, 우리 주방의 큰 자랑이다. 이렇듯 주방 매니저와 인턴은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연구실 주방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사실, 우리의 매번의 식사는 주방팀 친구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또 한 명의 숨은 주역, 우리의 뒤를 든든히 봐주고 계시던 근영샘이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김장, 학술제와 같은 주방의 큰 행사를 넓은 눈으로 챙겨주시고, 더불어 주방팀이 때때로 놓치는 디테일을 짚어주시곤 했다. 연구실의 흐름 위에서 주방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뒤에서 늘 살펴주셨던 것. 그런데 웬걸! 든든하게 주방을 지켜주시던 근영샘이 떠나셨다!!

2020년 남산강학원의 선생님들께서 연구동 ‘스튜디오 나루’로 터를 옮기게 되셨다. (시끌벅적한 청년들을 견디지 못하셔서 나가신 건 아니라고 믿는다;) 언제까지고 깨봉 주방을 지켜주실 것 같던 선생님이 떠나신 것이다. 오, 마이 갓!

그렇게 연구실에는 새로운 청년 일자리가 하나 더 창출되었다. 주방을 복작복작 굴려 나가게 될 또 다른 활동의 장이! 이것이 ‘주맘(mom)’이라는 활동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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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맘은 일하지 않는 주방 매니저가 아니야

이렇게 나는 주방의 곳간 열쇠를 넘겨받고, ‘주맘’이라는 새로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새로운 주방 매니저와 인턴 친구들과 함께 주방을 셋팅하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연구실 주방은 매니저가 바뀔 때마다 주방 컨셉을 잡고, 그 비전 위에서 활동한다. 말하자면, 이번 주방의 공약을 내세우는 거다. 새로운 친구들이 주방을 새 기운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같이 힘을 쓰고, 도와주었다. 또 주방 활동을 인수인계하고, 새로운 주방 친구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주맘’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나는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보고, 식자재와 잔반을 살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주일에 다섯 번 밥을 보러 가는 일도 없어졌다. 이건 주방 매니저의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주방 매니저와 인턴 친구들과 한 팀으로 활동하지도 않으니, 그 친구들과도 동선이 별로 겹치지 않았다. 우리가 만날 때는, 주방 회계를 보거나 주방 활동 서사를 들을 때 정도였다. 친구들이 주방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주방이 더 공부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아~주 부족한 느낌이었다. ‘주맘’으로써,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근영샘께 조언을 구했을 때, 샘은 전체 흐름을 보는 훈련을 하라고 말씀해주셨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주방 매니저 혹은 주방 인턴 친구들이 놓치는 것을, 멀리서 보면서 중심을 잡아주면 된다고 말이다. 그래,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보면서 짚어주는 것! 주맘은 그런 걸 하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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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는 것을, 멀리서 보면서 중심을 잡아주면 된다고 말이다.

주맘(mom)은 잔소리 대마왕

주방의 흐름에서 삐걱대는 것들을 짚어줘야겠다, 친구들이 놓치고 있는 걸 중심을 잡고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곧, 잔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밥 당번을 하러 들어갔을 때, 양념들이 제대로 채워져 있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물어보니, 쓰던 걸 다 쓰고 세척하고 채우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 밥 당번할 때 떨어지지 않게 잘 살피라고 당부했다. 그러다 재료창고를 열었는데, 웬걸! 간장, 식용유, 케찹 등이 순서 없이 뒤엉켜있었다. 내 입에서는 잔소리가 튀어 나갔다. “왜 이런 기본도 안 지키는 거야? 정돈은 해야지!”

또 어떤 날은 밥을 먹으러 갔는데, 메뉴가 매운 음식들로만 채워져 있던 적이 있었다. 너무 매운 음식들만 있지 않냐고, 메뉴를 짤 때 색도 고려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식수 인원 체크를 두루뭉술하게 하고 있을 때도 잔소리를 하는 방식으로밖에 이야기하지 못했다. 주맘이 아닌 ‘주방 잔소리 대마왕’이 되어 있었다. (정말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이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 짚어줄 뿐, ‘중심’ 위에서 말해주지 못했다. 드러난 현상을 통해 친구들이 진짜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공적으로 사건화를 시켜주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아마 주방팀 친구들도 그저 건건히 잔소리로만 받아들이고, 그 지점만을 고치는 방식을 취했을 터였다. 주맘으로 활동하면서 나는 잔소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혹은 ‘내가 개입해도 되나? 어쨌든 이 친구들이 실험하는 주방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멀찍이 떨어지거나, 이 극단을 오가고 있었다.

다시, 현장!

주방은 나의 활동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메뉴를 짜지 않고, 청소하지 않고, 밥을 보지 않는 등 이런 물리적인 활동 없다고 생각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소리를 퍼붓거나, 주방 매니저와 인턴 친구들의 서사를 듣고 사건에 개입하면서, 그저 ‘주방 도우미’ 혹은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주맘’이라는 새로운 활동을 열어가는 나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실무를 하지 않으면서도, 현장을 놓치지 않은 힘. 아니, 다른 현장을 만드는 힘이 필요했던 거였다.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고, 그 공간의 주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그것은 물질적 현상들 위에서 비물질적인 ‘마음’과 ‘태도’를 읽어내는 일이다. 주방의 기본을 놓치고 있을 때, 어떤 태도가 그런 현상을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잔소리로 접근하게는 게 아니라, 핵심을 짚을 수 있다. 그러려면 ‘공부하는 공간의 식탁’이라는 중심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재료창고가 뒤엉켜있다거나, 매운 음식만 나온다거나 할 때, ‘무엇이 무너지고 있길래 이렇게 되는지’를 봐야 한다. 어디서 마음이 흐트러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 ‘기운’을 읽어내는 것이 주맘이 연마해야 할 지점이다.

‘주맘’이라는 활동은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도 이 실험은 당분간 격하게(?)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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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한결
3 months ago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며 걸어가는 자연샘을 응원합니다~
주맘의 힘,
“실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장을 놓치지 않는, 다른 현장을 만드는 힘”을 보여주세욧!^^

재훈
재훈
3 months ago

ㅋㅋㅋ재밌다. 나도 주맘으로서의 누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더 알게 된 것 같다!

역시 중심이 중요하구나. 흐트러짐이 캐치되면, 물질적인 것을 통해 비물질적인 마음과 태도를 살펴 봐야 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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