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살림당)

새로운 주방의 명목과 실상

남산강학원&감이당은 ‘공부 공동체’다. 이곳을 ‘공동체’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주방’에 있다. 학인들은 먹거리가 있는 주방을 기점으로 모이고, 떠들고, 공부한다. 곰샘(고미숙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 이 주방의 시초는 먼 옛날 몇몇 학인들이 도시락을 싸 와서 함께 나눠 먹고, 설거지는 한꺼번에 모아 화장실에서 하던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주방은 웬만한 식당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어엿한 하나의 사업체(?)로서, 남산강학원 살림살이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산강학원이 청년 쿵푸 백수들의 공부 자립 실험터가 되면서, 주방을 청년들이 도맡아 꾸려가고 있다. 식단 짜기, 식재료 관리 등을 비롯하여 주방 전체 살림을 운영하는 주방 매니저가 둘, 부자재들을 채우는 등 매니저들과 함께 주방이 원활히 굴러갈 수 있도록 보조 역할을 하는 주방 인턴이 둘 해서 총 네 명의 청년들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주방의 생태계를 책임진다. 주방 매니저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주방의 비전을 세우고 출발하는데, 올 초에 매니저를 맡게 된 나와 미솔이는 ‘베풂’이라는 멋진 비전을 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약 한 달여 동안 미솔&나는 주방 활동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나누며 새로운 베풂주방의 비전, 윤리, 강령들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베풂주방이 출범한 지 2개월쯤 되던 때, ‘청년운영단’(이하 청운)이 새로이 결성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모임은 공동체 상주 멤버들의 리더십 및 멤버십을 다지는 장(場)으로,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활동을 꾸리고 있는 청년들이 공동체 선배이자 스승인 선생님들과 활동 서사 및 회계를 공유하며 훈련을 받는다.

바로 그 청운에서 선생님들은 새로운 주방이 내걸었던 슬로건 중 하나인 ‘파·마늘 사용하지 않기’와 최근 실험적&화려해진 식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를 제기하셨다. 아뿔싸! 주방 매니저인 나와 미솔이는 뜨끔했다. 베풂주방은 출사표 중 하나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식단 기준으로 세웠고, 그러면서 오신채에 해당하는 파와 마늘이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으니 쓰지 말아보자는 실험을 해오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정작 지난 2개월 동안 우리의 식단은 다양하고도 특이한(?) 메뉴들로 채워져 있었다. 예를 들면 ‘묵은지 파스타’라든가, 그 이름도 기다란 ‘고추장 콩나물 해물 파스타’라든가, ‘버섯 된장 덮밥’과 같은…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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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명목과 실상이 어긋남 그 자체였다!;; 우리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내자며 파와 마늘을 과감히 식재료에서 빼버렸으면서, 퓨전 메뉴나 평상시 먹기 힘든 화려한 메뉴들로 구성된 식단을 짜오고 있었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러한 주방의 실상이 다행히도 선생님들의 매의 눈에 포착이 되었고, 청운에서 문제 제기가 됨으로써 주방 매니저들은 우리가 짜고 있는 식단에 대해 전면 검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주방 매니저인 나와 미솔이는 우리가 짜고 있는 식단의 명실이 상부하지 않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 문제 제기는 아주 감사하고도 반가운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식이 왜 점점 화려해졌을까?”, “재료들을 왜 하필 섞었을까?(우리는 인터넷 레시피에 따라, 안 그래도 특이한 묵은지 파스타에 무려 어묵을 넣기까지 했다!)” “왜 그런 실험적인 메뉴들을 하게 되었을까?”…….

그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재밌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음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 음식이란 배를 채우고 입을 만족시키는 정도의 무엇이었다. 그러다 보니 메뉴를 짤 때의 기준이 어느 순간 ‘다양성’이나 ‘곳간에 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메뉴를 짤 때 우리는 스마트폰 어플과 인터넷을 참조하며 보다 다양한 메뉴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런 시도들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있었다. “재료가 한정적이니까 이왕이면 레시피나 조리법이라도 다양한 게 좋지 않을까?!”

우리 주방에서는 대대로(?) 육류를 먹지 않는다. 육류 자체가 탐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음식이기도 하고, 기름기가 많아 조리할 때나 설거지할 때 불필요하게 세제와 물을 많이 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류 대신 채소와 (가끔) 생선, 육류가 아닌 단백질 위주의 재료들로 밥상을 차리는데, 그러다 보면 식단이 좀 반복되는 구조가 된다. 버섯, 감자, 가지, 두부 등…의 재료들을 돌아가며 볶거나 찌거나 졸이거나 굽게 되는 것이다. 나와 미솔이는 메뉴들이 이렇게 한정적인 게 마음에 좀 걸렸다. 루틴화된 메뉴들을 계속 돌리는 게 어딘가 성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계속해서 새로운 레시피와 메뉴를 찾아보고 시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베풂’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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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들을 괄호 칠 때 갖게 되는 태도였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괄호 칠 때, 그 위에다 좋아 보이고 그럴싸해 보이는 말을 얹혀놓는다. 그렇게 하면 실제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누구에게나 좋아 보이는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새로운 레시피·메뉴가 좋다’라는 건 어떤 ‘자극’이 좋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메뉴를 하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 우리의 기준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하는 학인분들의 욕망에 불을 계속 지피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샘 솟았다.ㅜㅜ 결국 우리의 식단은 자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베푼다는 것에 대하여

주방 매니저들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방에서 먹는 이 음식은 어떤 음식일까?” 생각해보면 이 음식은 공부를 하는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일상을 굴리는 음식’은 어떠해야 할까? 우리의 일상은 결코 할리우드 영화처럼 스펙타클 하지 않다. 단조롭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한 일상의 흐름에 맞게 우리는 담백한 음식, 기본에 충실한 식단을 꾸리기로 했다.

식단 기준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주방의 비전인 ‘베풂’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맨 처음 출사표를 던지던 때까지만 해도 ‘베풂’이란 건 단순히 주체인 ‘내’가 객체인 ‘너’에게 뭔가 좋은 걸 ‘주는’ 차원의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정의를 내렸었다. 아직 베푼다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그냥 주기만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앞으로 더 배워가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 같다’고 정의 내린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 우리는 ‘이런 게 베푸는 거 아닐까?’ 하면서 짜곤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좋아 보이는’, ‘그럴싸해 보이는’ 일들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풂이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베푼다는 건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걸 저 사람에게 주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타자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만 정말로 저 사람의 상황에 맞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선 블로거’가 아니라, 학인이고 도반들이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시공간이라는 맥락 위에 선다면, 욕망에 불을 지피는 다종다양한 음식들이 아니라 오히려 담백하고 청정한 메뉴들로 꾸려진 식사를 차려내는 게 훨씬 더 ‘베푸는’ 길이 될 터였다. 주방 매니저 2개월 차, 드디어 음식을 통해 베푼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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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담백하고 청정한 메뉴들로 꾸려진 식사를 차려내는 게 훨씬 더 ‘베푸는’ 길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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