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감이당)

중지곤

坤 元, 亨, 利, 牝馬之貞. 君子有攸往. 先迷, 後得, 主利.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곤괘는 원하고 형하고 리하고 암말의 정함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이고, 만물을 성장시켜 형통하게 하고, 만물을 촉진시켜 이롭게 하고, 만물을 완성시키는 암말의 올바름이니 군자가 나아갈 바를 둔다. 앞장서면 헤매게 되고 뒤이어 따르면 얻을 것이며 이로움을 주관한다. 서쪽⸱남쪽은 벗을 얻고 동쪽⸱북쪽은 벗을 잃으니 편안히 여기고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다.

初六, 履霜, 堅氷至.

초육효,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게 된다.

六二, 直方大, 不習无不利.

육이효, 곧고, 반듯하고, 위대하다. 애써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六三,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육삼효, 안으로 아름다움을 머금어 올바름을 지킬 수 있으니 혹 나랏일에 종사하더라도, 그 성공을 자기 것으로 하지 말고 끝마침이 있어야 한다.

六四, 括囊, 无咎无譽.

육사효,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고 영예도 없으리라.

六五, 黃裳, 元吉.

육오효, 황색치마이면 크게 좋고 길하다.

上六, 龍戰于野, 其血玄黃.

상육효,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다.

用六, 利永貞.

용육, 오래도록 지속함과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2년 전 신부님께서 공석이던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단체를 맡아서 이끌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고 계셨기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핸드폰과 게임으로 외부와 단절되고 고립되어가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이당 공부를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지만, 감이당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성서 암송이나 운동 등 뭔가를 실험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렵게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 단체에는 오랫동안 일해온 봉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함께 일했기에 멤버쉽이 좋았다. 그동안 신부님과 직접 소통하며 재미있게 봉사해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불쑥 끼어든 거다. 낙하산 인사 같은 느낌이랄까? 신부님도 그들과 함께 일을 해왔기에 호흡이 잘 맞았다. 내 입장이 애매했다.

봉사자들은 그동안 비교적 잘해오고 있었다. 교리 중심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등 그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책임자가 나타난 거다. 일을 잘 모르는 내가 자신들에게 간섭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공을 채 갈 수도 있고 등등 나는 별로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업무 보고를 할 때도 신부님과 직접 소통하며 나를 패쓰했다. 읽어야 할 텍스트도 많고 바쁜데 나를 안거치고 일하니 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편해할 수는 없었다. 세부적인 일들은 잘 모르는데 맡은 역할은 중책이고, 봉사자들은 자기들끼리만 친하고 나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고민 끝에 주역점을 쳤고 그때 나온 괘가 중지곤, 육사효다.

하늘인 건(乾)은 생명이 생겨나는 근원이다. 땅인 곤(坤)은 건을 이어받아 생명을 키워내고 결실을 맺는다. 하늘이 정신적인 활동이라면 땅은 그런 활동을 펼치고 구체화하는 현장이다. 곤의 가장 큰 특징은 유순함이다. 이 유순함이란 약하고 아첨하는 그런 유순함이 아니다. 건의 지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질서 잡을 수 있는, 유연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진 유순함이다. 중지곤은 이런 곤이 두 개가 겹쳐져 있다. 상괘와 하괘 모두 땅이다. 곤괘의 괘상(䷁)을 보면 음이 6개다.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이다. 땅은 만물을 싣고 있지만 가라앉지 않고,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가고 있다. 주역점은 내가 신부님을 도와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즐겁게 자라도록 현장에서 실천할 때임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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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즐겁게 자라도록 현장에서 실천할 때임을 알려주었다.

육사효는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고 영예도 없으리라.(六四, 括囊, 无咎无譽)이다. 육사는 차곡차곡 덕을 쌓아 어느 정도 도약을 이룬 자다. 군주인 육오와 가깝게 있다. 하지만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결실이 있는데 육사와 육오는 같은 음이기에 서로 얻으려는 뜻이 없다. 아래로는 세 음효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 있기에 위아래로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봉사자들로부터 시기와 비난이 예상되는 자리에 있었다. 괄낭(括囊)이란 주머니를 묶어서 안에 내용물이 새지 않게 하라는 거다. 육사의 위치상 신중하지 않으면 비난과 모함에 빠져 허물이 생길 수도 있기에 주머니를 묶어야 한다. 그럴 때 허물이 없고 명예도 없다.(无咎无譽)

주머니를 묶으려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먼저 봐야 했다. 나는 성서 암송이 왜 아이들에게 필요한지? 교리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보다는 함께 하는 삶을 중심에 놓을 수 있을지? 를 봉사자들과 고민하고 싶었다. 한편 이왕 일을 맡았으니 조직을 잘 이끌어서 칭찬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보고 절차를 바로 잡아야 했다. 하지만 보고 절차를 지적한다면 비난은 불 보듯 뻔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기에 쓴소리는 하지 못했다. 육사는 이런 계획과 욕심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잘 묶으라고 한다. 잘 묶는다는 것은 신중하게 살피고 감추는 것이다. 그럴 때 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일을 하고, 의견을 내야 명예도 얻는데 그런 것을 하지 않으니 명예도 없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일만 하고 현장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봉사자들 일에 직접적인 개입은 가능한 한 줄였다. 대신 아이들 미사는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회의에 참석은 하더라도 내 의견은 거의 내지 않고 주로 따랐다. 모른 척하며 휙 지나가는 봉사자들에게 먼저 인사했고, 나를 패쓰하는 것도 쿨하게 넘어갔다. 이런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이 막혀있고 단절된 때임을 알기에 상황을 받아들였다. 봉사자들의 나에 대한 견제도 이해하려고 했다. 신부님과 가까운 위치로 인해 시기를 살 수도 있으니 신부님과도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보고절차에 대해서도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히 말했다. 패쓰는 여전했지만 서로 조심하는 정도로 마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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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심하니 각자의 속사정은 모르지만, 조직은 잘 돌아갔고 아이들도 즐겁게 잘 지냈으니 나쁘지 않았다. 대놓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허물도 없었고, 내가 딱히 하는 게 없으니 명예도 없었다. 나는 나름 잘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곤괘를 공부를 하면서 이게 괄낭의 덕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데 굳이 뭐하러 나서나~, 바쁜데 잘됐다~ 이런 마음이었다. 당장 욕을 안 먹기 위한 편협한 마음에서 주머니를 닫았다. 욕심을 묶는 척하며 봉사자들에 대한 마음을 닫은 거였다. 이것을 괄낭이라고 착각했다. 곤의 덕이 이렇게 협소하던가?

대상전에서 말하듯 곤은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厚德載物) 만물을 실을 수 있는 덕이란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힘이다. 포용은 내가 옳다는 마음을 비울 때 가능하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곤의 유연함이요, 멈추지 않고 포용력을 꾸준히 기르는 것이 곤의 강함이 아닐까? 이런 후덕재물의 덕을 가지게 되었을 때, 신중해야 되는 것은 같지만 괄낭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보고 절차를 문제 삼기 전에, 소통이 일방적이진 않았는지? 나의 소통방식을 먼저 살필 것이다. 욕을 안 먹으려는 편협함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봉사자들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내가 앞장서서 봉사자들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펼쳐놓은 것을 믿고 함께 가려고 할 것이다.(先洣, 後得)

또한, 내가 펼치지 못한 계획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맹목적 믿음보다는 암송이나 봉사활동처럼 예수님의 삶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인 부분들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기도문과 말씀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해서 현장에서 펼치고자 했다. 물론 이것에 관한 공부가 아직 무르익지도 않았고, 믿음이 먼저인 성당의 방향과 어긋날 수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계획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더욱 부적합하다. 나서면 허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때가 올 때까지 계획을 주머니에 넣어 감추고 성숙시키라는 의미인 것 같다. 계획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지혜를 주머니 속에서 끊임없이 갈고 닦아 쌓아가는 것. 이러한 것이 괄낭의 덕이 아닐까? 암컷 말이 쉬지 않고 걸어가는 것처럼(牝馬之貞), 나 또한 괄낭의 덕을 기르는데 쉼이 없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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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때가 올 때까지 계획을 주머니에 넣어 감추고 성숙시키라는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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