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살림당)

작년 이맘때만 해도,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이런 말도 이제 지겨울 지경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주방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아무리 방역을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기에, 다시 복작복작해질 주방을 기대하며 우리는 이 시기를 잘 넘어가 보고자 했다.

복작복작 소통의 핫플레이스 주방을 돌리도~

며칠 전, 대중지성 한 학기 마무리인 낭송과 에세이가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소식을 주방 매니저 친구들이 ‘당일’에 알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낭송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면서 말이다. (당일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충격받을만한 일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여기서 주방 매니저 친구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카페는 그나마 대중지성 선생님들이 주로 수업을 들으시는 2층에 분점(!)도 있고, 에세이 날에 가벼운 차(tea)선물도 하면서 조금이나마 ‘연결’되어 보이는데, 주방은 그렇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전과 다르게 주방이 ‘소통창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예전에는 공동체 소식이 가장 먼저 흘러들어오는 곳이 주방이었는데, 이대로 괜찮을지……, 주방이 열릴 방법은 없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주방에서 사람이 오가며 일어나던 사건과 그 안에서의 배움들을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코로나 이전의 ‘주방’은 공동체 소식의 ‘핫플레이스’였다. 공동체 안팎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섞이는 공간이었기에 이보다 더 왁자지껄한 공간이 없었다. 처음 공부하러 오신 분들과도 함께 밥을 먹고, 또 밥을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주방이었다. 선생님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던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도 문득 그리워진다) 또한 주방은 오가는 학인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에세이나 낭송대회 등 각종 행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곳도 ‘주방’이었다. 우리 공부의 1년의 흐름과 주방은 함께 움직였다.

하여, 주방 매니저는 정말 모르는 게 없었다. 누가 어디서 공부하는지, 이번 학기 에세이 장원이 누구인지, 언제 손님이 오시는지, 언제 공동체 행사가 있는지 등등.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가 주방으로 흘러들어왔고, 주방은 소통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니 지금 주방 매니저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일에 낭송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그 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력(?)의 핵심 주방 매니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카페지기들은 이 소식을 알고 있고, 에세이 날에 차(tea)선물도 했다고 하니, 더더욱 고민이 생겼던 것! 물론 카페지기들이 세심한 눈으로 살피고 있었을 테다. 또 2층 카페 분점을 통해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배치도 한몫했을 거다. 그렇다고 주방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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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괜찮아!

자, 다시 친구들의 고민으로 돌아와 보자. ‘주방이 소통창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주방이 다시 열릴 방법은 없을까?’

우선 주방이 당장 다시 열릴 수는 없다. 이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은 지금의 때에 맞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 시국에 ‘먹는 것’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분간 코로나 이전과 같은 주방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도록 감각을 깨우고 있는 것은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상황과 조건이 변했다. 소통의 중심이 되던 주방, 복작복작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주방, 소식이 굴러들어오는 주방은, 이제 없다. 달라진 이 조건 위에서는 더 부지런히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친구들도 이런 고민 위에서 주방일지에 ‘주방 WIFI’라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다. ‘주방일지’라는 창구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공동체 이야기를 전하고, 배움을 나누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찬찬히 생각해보자. 주방의 ‘소통’은 무엇이었나? 주방에서 했던 ‘소통’이라 함은 ‘주방을 오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많은 학인분들이 오가고 있으니, 그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했다. 지금은 어떤가. 함께 살고있는 청년들이 주방을 오가고 있다. 매일매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이미 너무 익숙한 그대들~ 이렇게 익숙한 친구들이 주방을 드나들고 있다. ‘소통’의 빈곤함을 느낀다면, 이 친구들에게 너무도 익숙해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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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들에게 너무도 익숙해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주방에서, 섬세한 주방으로

권태로움은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익숙함은 일상이 단조로워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우리의 신체에서 비롯된다. 헛! 지금 내 옆에 같이 공부하고,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눈을 돌려보니, 알바 때문에 일찍 밥을 먹고 가는 친구들이 있다. 먹을 만한 음식이 좀 남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친구를 살펴보니, 알바가 힘든지 요즘 저녁을 잘 먹지 않는다. 공부방에 에세이 마감 때문에, 식사를 거르는 친구들도 있다(화이팅…!). 구운 감자를 무진장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쌀밥이 나오면 행복해하는 친구도 있다. 식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짠다고 생각하니, 이 친구들이 눈에 밟힌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 주방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주변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훈련하는 것이다. 주변을 디테일하게 읽어내는 훈련! 현재의 규모 위에서 흐름을 읽어낼 수 있어야, 더 큰 규모에도 가능하다. 사람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사람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주방의 배움이다.

왠지 더 큰 공부의 장이 열린 기분이다. 60인분, 100인분에 묻어가던 것들을 더 섬세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먹는 음식이 너무 겹치지는 않는지를 생각하며 식단을 짤 때도, 전과 다르다. 그전에는 1주일에 한 번 오시는 선생님들이시기에 같은 요일에 같은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친구들이 매일매일 식사를 하고 있으니, 훨씬 더 세심해져야 한다. 한가지 샐러드가 계속 나오진 않는지, 우리끼리 먹는다고 잔반을 너무 먹는 건 아닌지, 혹은 너무 방만하게 먹는 것은 아닌지 등등 고려할 것이 많아졌다.

식재료를 준비할 때도 훨씬 더 섬세해져야 한다. 60명에서 한두 명 차이와 15명에서 한두 명 차이는 완전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친구들에게 몇 날 며칠 같은 음식을 먹여야 할 수도 있다. 디테일하게 보다 보니, 정말 권태로울 틈이 없다. 이제 주방 매니저들에게 완전 다른 주방이, 완전 다른 공부의 장이 열린 것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주방 만들기!’ 이것이 코로나 주방의 새로운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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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
복희씨
1 month ago

오~~
어떤 상황도
공부의 현장으로 삼는 주방팀 홧팅!
‘섬세한 주방’을 응원합니다.

-주방이 ‘권력(!!^^)’의 중심에 서는 그날을 학수고대하는 일인^^

Last edited 1 month ago by 복희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