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숙(감이당)

風地 觀(풍지관)

觀, 盥而不薦, 有孚, 顒若.

관괘는 손을 씻고서 아직 제사음식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백성들이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우러러 본다.

初六, 童觀, 小人无咎, 君子吝.

초육효, 어린아이가 보는 것이니 소인이라면 허물이 없지만 군자는 부끄러우니라.

六二, 闚觀, 利女貞.

육이효, 문틈으로 엿보는 것이라 여자의 올바름이 이롭다.

六三, 觀我生, 進退.

육삼효,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아가거나 물러난다.

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육사효, 나라의 빛남(구오의 빛나는 덕)을 보는 것이니 왕에게 제대로 대접받는 신하가 되는 것이 이롭다.

九五, 觀我生, 君子 无咎.

구오효, 내가 하는 정치를 보아서 군자답다면 허물이 없다.

上九, 觀其生, 君子 无咎.

상구효, 자신이 하는 덕행을 보았을 때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 볼 수 있을까. 잘 알 수 있을까. 처음 이곳 감이당에 와서 공부하며 가장 놀랐던 게 있다. 내가 나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왜곡해서 알고 있거나 일부분만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들어오거나 생각했던 이미지들과는 사뭇 다른 피드백과 코멘트들. 가령 타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 침묵은 그 사람에 대한 무관심 때문일 수 있고, 신중함이나 조신함으로 표현되는 태도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답답함과 수동성에 다름 아니기도 하고, 또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들어왔던 말은 솔직하지 못한 관계 맺기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세세한 마음 씀의 지점들에 대한 발견은 아마도 공부의 장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했을 것들이다. 함께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함께 글쓰고 발표하며 지나온 관계 속에서 나온 이런 지적들은 이전의 편하고 익숙했던 관계 속에선 결코 들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주로 고쳐야할 것들이니 들을 때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을 보게 하는 힘은 놀랍다. 이번에 마주하게 된 풍지관괘는 나를 보고 안다는 것에 대해 다시 ‘보며’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관괘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있다. 바람은 땅 위에서 불며 온갖 것들과 두루두루 접촉한다. 넓디넓게 구석구석 빠짐없이 파고 들어가는(入) 바람처럼 사람과 사물과 세상을 크고 넓고 깊게 바라보고 통찰하는 것이 관(觀)이다. 관은 ‘본다’, ‘보인다’라는 의미가 있다. 자동과 피동, 주체와 객체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모두 들어있다. 제대로 보려면 내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까지 보아야 제대로 본다는 말이다. ‘본다’는 ‘안다’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 안다고 말하진 않는다. 알기 위해선 보아야 하고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나도 다른 이의 말을 듣기 전엔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이 옳거나 전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니체가 그랬던가.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고. 그만큼 자신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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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불교에서 통찰의 지혜를 얻는 ‘위빳사나’ 명상수행이 ‘분리해서 보다’라는 ‘관(觀)’으로 해석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의 마음을 관찰자와 행위자(에고) 둘로 분리해서 ‘본다!’ 내면의 행위자를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내가 나의 모습이라고 여겨온 이미지들은 내면에서 떠오른 나에 관한 생각을 ‘나’와 동일시해 온 것이다. 이런 ‘행위자’인 나를 고정된 이미지에 매이지 않고 ‘관찰자’로서 관(觀)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자기 모습의 실상을 통찰할 때 자기를 제대로 보고 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위빳사나(관)의 통찰을 넓은 사회적 관계 망으로 확대해 보면 관괘가 더 잘 이해된다. 관괘에서 가장 크고 넓게 관찰하고 보는(大觀) 존재는 구오효다. 군주인 구오효는 행위자이자 관찰자로서 가장 잘 보고 잘 아는 자다. 그는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행위들(觀我生)을 백성들을 통해서 본다(觀民也). 관아생(觀我生)은 ‘나로부터 생겨난’ 모든 처신과 행동거지를 보는 것을 말한다. 군주의 처신과 행위는 백성을 보면 안다. 백성들의 풍속과 삶이 아름다우면 군주의 정치와 교화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물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 모든 건 구오효의 덕성과 자질에 달려있다. 잘 본다는 건 자신으로부터 나온 행위의 결과를 잘 관찰해서 그로부터 다시 자신을 잘 살펴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땅 위에서 부는 것이 관괘의 모습이니, 선왕은 이를 본받아 지방을 순행하여 백성을 보고 가르침을 베푼다.(風行地上 觀 先王 以 省方觀民 說敎)”(정이천, 『주역』, 439쪽) 군자의 덕을 갖춘 군주는 여러 곳을 다니며 세상 인정물태 돌아가는 걸 살피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한다. 이는 곧 관계를 확장하고 인식을 넓히는 일이다. 그렇게 두루 세상과 만나는 만큼 잘 보고 잘 알게 된다. 또 가르침을 베푼다(說敎)는 건 자신의 경험이나 지혜를 세상에 보여주고 나누는 일이다. 잘 본다는 건 이렇게 자신과 세상이 서로 보고 보여주는 관계로써 얼마나 연결되어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는 곧 이곳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이자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소인의 협소하고 작은 봄에서 벗어나 군자의 큰 봄을 배우고, 배운 걸 다시 세상과 나누고 소통한다. 군자는 어디에도 걸릴 것 없는 바람처럼 크고 넓게 세상을 관통하며 자신과 세상을 본다. 사심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뜻과 삶을 세상에 펼쳐 드러내 보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존재가 군자다. 공부로써 이런 군자로서의 덕목을 갖출 때 서로 보고 보이는, 소통과 나눔의 관계에서 허물이 없게 된다(君子 无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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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어디에도 걸릴 것 없는 바람처럼 크고 넓게 세상을 관통하며 자신과 세상을 본다.

공부하러 오기 전 가족이나 직장 관계에서는 그 나름의 틀 안에서 나를 보았다. 협소하면 협소한대로 그만큼의 관계에서 소통하며 형성된 나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관괘의 비유로 치면 초효인 어린아이(童觀)나 이효인 방안에 있는 아녀자가 세상을 보는 것(闚觀)과 같다. 얕고 근시안적이고 분명하지 않은 봄과 앎이다. 그럼에도 흉하다거나 허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조건이 그렇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방안의 아녀자라는 관계조건 속에 있을 땐 그렇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조건 속에서 어쩌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지적을 들었다 해도 그 안에서 별 불편이 없을 만큼 대처하고 지나갔을 터였다. 그래서 어떤 관계와 조건에 자신을 위치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공부하러 와서 처음 자신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쓴 소리들을 들었을 땐 부끄럽기도 했지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기쁨이 더 컸다. 안 만큼 정말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래서 답답했던 거구나!…’하면서. 자신에 대해 이해되는 만큼 나의 지나온 삶도 이해되고 그만큼 자유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보았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체적으로 굳어진 오래된 습성을 바꾸는 일이니 쉬울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쓸데없이 괴로워하거나 섣불리 위로할 일도 아니다. 그런다고 바뀌는 게 아니니. 관괘는 이에 대해 또 하나의 답을 준다. 관이불천(盥而不薦)! 제사를 올리기 전 손을 씻는 마음처럼 초심의 정성스런 뜻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 지금 당장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공부의 장에 산만하지 않게 정성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다. 공부의 장은 크고 넓고 깊게 자신을 대관(大觀)할 수 있는 조건과 관계의 장이다. 그러니 그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마음을 집중하라는 게 관괘에서 건져 올린 가르침이다. 되든 안 되든 그 조건 속에서만이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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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마음을 집중하라는 게 관괘에서 건져 올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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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김지영
2 months ago

혜숙샘 글 잘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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