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옛날 옛날, 어린시절 우리집의 책꽂이는 폭이 매우 깊었다. 거기엔 세계문학전집과 전 세계 각국의 여행전집과 엄마가 결혼할 당시에 혼수로 해오셨던 백과사전류가 쫙 꽂혀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낱권의 책들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내가 가끔씩 조심스럽게 들춰보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신비롭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야기 곳곳에 낯 뜨거운 장면들이 속속 박혀있는 그 책은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너무 재미있었지만 왠지 내가 보기엔 적절치 않다고 자가 검열을 하고는, 몰래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후 세월이 흐르며 만나게 된 『아라비안 나이트』들은 모두 마법과 모험이 가득한 단편 동화와 애니메이션 일색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도 모두 좋아했지만, 언젠가는 원전을 다시 접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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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다. 문학을 통해 문명을 탐사하겠다는 감이당 대중지성의 커리큘럼에 천일야화를 용감하게 집어넣었고, 이 기회에 편견과 오해에 쌓여있는 이슬람, 중동의 진면목을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앙투안 갈랑’판의 『천일야화』와 나온지 오래된 ‘리처드 버턴’판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준비하고, 아랍과 이슬람 등의 공부를 해나갈 준비를 했다.

아! 나는 얼마나 무식했던가! 그리고 용감했던가! 내용과 배경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그 이름부터 다시 알아가야 했다. 천일은 1000일이 아니라 1001(千一)일이다. 맨땅에 헤딩이란게 언제나 그렇듯이, 충격과 막막함에 휩싸인 채 더듬거리며 세미나를 해나갔다. 나 혼자만 무식한 게 아니었다. ‘우린 너무 몰랐다’! 아랍도, 페르시아도, 이슬람도, 『천일야화』도… 그것들은 너무 멀리 있다. 지구촌이란 미명아래 전 세계가 이웃이 된지 오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중동에 대해서만은 이미지, 편견, 오해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두터운 무식과 오해를 차근차근 풀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했다. 적어두지 않으면 홀랑 까먹으니까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천일야화의 탄생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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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1. 천일야화는 프랑스 문학?

세미나에서 읽은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보고 의아했다. 원본 번역인데도 전혀 야한 부분도 없고, 동화처럼 짧고 명쾌한 것이 내가 어렸을 때 훔쳐봤던 그 책이 아니었다. 세미나 외에 혼자 읽어보려고 중고로 구매한 방대한 양의 ‘리처드 버턴’판이 어렸을 때 봤던 ‘성인용’ 아라비안나이트와 비슷하다. 그런데 두 책은 완전 다르다. 갈랑판은 버턴판에 비해 양이 굉장히 적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앙투안 갈랑은 1001일의 이야기 중 이백 몇 십 일 정도의 이야기로 천일야화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갈랑판은 버턴판의 보급형, 또는 축약본인 걸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불완전한 앙투안 갈랑판 천일야화가 바로 아랍세계까지 통틀어 최초로 출판된 천일야화라는 점이다. 1600년대, 프랑스의 동양학자였던 갈랑은 아랍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그곳에서 보고 경험한 여러 책을 집필하고 번역하는 가운데, 말년에 천일야화를 한 권씩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번역한 아랍어 원본이 바로 2백 몇 십일 밤에 불과한 14세기의 불완전한 필사본이었다. 그는 제목처럼 1001일에 해당하는 나머지 이야기들이 민간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여기고는 부족한 밤을 채우기 위해 그것을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몇몇 따로 수집된 이야기들을 천일야화의 일부라고 굳게 믿고 자기의 책에 첨가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유명한 <알라딘과 요술램프>,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등의 이야기들이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이야기들은 날조되었거나, 천일야화와는 별개로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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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떠랴! 당시의 프랑스에선 ‘갈랑이여! 어서 속편을!’이라는 애독자들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그의 책은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여러 경로의 짜깁기를 통해 유럽세계에서 탄생한 이 책은 앙투안 갈랑의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한 세기쯤 후, 이 천일야화는 거꾸로 아랍지역으로 가서 아랍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아랍에서는 사장되어 잊혀져 가던 이야기 쪼가리들이, 동양에 대한 열렬한 환호 속에서 유럽에서 천일야화로 재탄생하고, 그 이야기의 고향으로 역수출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후엔 1001일을 꽉꽉 채운 작품들이 등장하고, 리처드 버턴 판 역시도 명실상부한 천 일일 밤 스토리의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데, 과연 그것들은 또 어떻게 만들어진 천일야화인지 제각각 수록된 에피소드와, 스토리와, 문체가 다르다는 점은 천일야화의 재밌는 특징이다.

그런데 사실, 정작 중동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나라도 있을 만큼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17~18세기의 유럽은 대항해 시대 이후 탐욕스런 눈길로 세계의 곳곳을 식민지화해가던 중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차례로 동인도회사를 세웠고, 신식 무기와 자본주의를 앞세워 중동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혀갔다. 고대부터 항상 위협적으로만 느꼈던 ‘페르시아’는 이제 유럽인들이 누리는 새로운 근대문화의 소스이자 물적 토대가 되었다. ‘오리엔트’는 근동과 중동에 대한 유럽인의 환상이 담긴 단어다. 향료와 향신료, 카펫, 과일, 장식, 그릇 등의 물자들과 함께 낯선 문명의 이야기 역시 열렬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천일야화는 유럽인들의 시선이 담긴 아랍 이야기이고, 매우 신비로우면서도 단순한 에피소드로 재미와 흥미가 극대화 되었다. 오리엔트를 향한 이 작은 창은 유럽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창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오랫동안 『천일야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중동지역의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시큰둥한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출생의 비밀2. 아라비안 나이트는 페르시안 나이트?

또 한 가지, 우리를 아주 헷갈리게 하는 문제는 ‘아라비안’, 즉 아랍이란 단어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치한 아라비아 반도에서나 ‘아라비아’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그 위쪽과 오른쪽은 이라크, 터키, 이란과 000스탄 등 우리가(사실은 유럽 기준) 중동이라 부르는 지역이다. 천일야화의 중심이야기는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바스라에 집중되어 있고, 많은 이야기들의 무대가 동쪽으로는 이란을 지나 인도까지, 서쪽으로는 다마스쿠스, 이집트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러나 아라비아반도의 이야기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야기 속 어떤 왕자가 사막을 건넌다거나 어느 황량한 나라에 표류하게 된다거나 할 때, 그곳이 아라비아 반도의 한 지역일 수는 있겠다. 그런데 왜 이야기에 등장도 하지 않는 아라비아라는 단어가 전체이야기의 제목이 되고 우리는 이 지역들을 아랍이라는 이름으로 일컫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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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20세기 초까지도 ‘페르시아’라는 이름의 나라였다.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을 치렀던 바로 그 페르시아다. 화려한 문명을 꽃 피웠고, 용맹한 전사의 나라였던 페르시아는 이집트에서 인도북부까지를 아우르던 대제국이었다. 몇 천 년 동안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7세기에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탄생한 이슬람이 무서운 속도로 이슬람 성전을 치르면서 페르시아와 주변지역을 점령했다. 이슬람 전파는 곧 아랍어 전파였다. 페르시아 지역은 모두 기존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아랍어를 쓰면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의 휘하에 들어갔다. 다양한 종족이 섞여 살았던 이들을 이제 그냥 아랍국가 또는 아랍민족이라고 통칭해도 무리는 없다. 이들은 예전부터 유전자의 뿌리, 혈통의 개념으로 민족을 이루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종교와 언어로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믿고 아랍어를 쓰면 아랍국가다. 이슬람 제국의 공용어는 아랍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이 쪼개지며 근대국가에 들어설 때, 고대 페르시아어를 간신히 보존했던 이란(페르시아)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아랍국가에서는 제외되는 것이다.

8~9세기엔 페르시아의 모든 것이 아랍어로 교체되면서, 페르시아의 책도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언어가 아랍어일 뿐, 중동지역을 풍미하던 재미난 설화와 야담들은 모두 페르시아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페르시아 시절엔 조로아스터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후에 이슬람의 역사 속에서도 천일야화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덧붙여졌지만, 적지 않은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고대 이란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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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8세기 경에 페르시아어로 된 <하자르 아흐사네>라는 이야기집이 있었다고 한다. ‘천 가지 이야기’라는 뜻으로, 한 도서 사서의 책 목록에는 이 책에 대해 하룻밤 동침한 처녀를 날마다 죽이던 왕이 현명한 처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고 악행을 멈추게 된다는 줄거리가 설명되어 있다. 원본은 찾을 길이 없으나,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의 이 책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원조인 것은 확실하다.

사실, 어떤 이야기이든 원조 따위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이야기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으며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는지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토록 재밌는 책의 기원을 첫 연재부터 김 빠지게 따박따박 따져본 것은 표지를 열기도 전의 제목과 저자부터 우리가 오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중동(이슬람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앞으로 써나갈 글들을 통해 오리엔탈의 이미지에 쌓여있는 천일야화의 창 옆에 작은 창들을 하나씩 내가고 싶다. 역사의 창, 종교의 창, 문화의 창들을 말이다. 낯선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좀 더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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