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살림당)

함께 밥 먹는 주방의 위기

때는 바야흐로 2021년, 깨봉 주방(남산강학원&감이당이 터를 잡고 있는 건물 이름이 ‘깨봉’이다^^)에 크나큰 위기가 찾아왔으니……바로 ‘전염병’! 2019년 겨울에 출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를 무대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로 그 코로나 사태(이하 코로나)의 여파가 어김없이 이곳 공부 공동체, 그중에서도 특히 ‘함께 밥을 먹는’ 주방에 크게 찾아온 것이다.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높아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각종 세미나와 강의들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고, 깨봉에는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청년들만이 남게 되었다. 심지어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의 상주 멤버인 선생님들도 출퇴근길에 도심을 오가는 동안 어찌 될지 모르니 깨봉에서만 지내고 있는 청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꽤 오랫동안이나 나오지 않으셨는데, 그때는 정말 ‘고립무원’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히 체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함께 모여 밥을 먹지 못하게 된 건 당연지사! 그리하여 수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생활을 깨봉에서 하고 있는 청년들을 제외하고는, 식사가 전면 중단되었다. 헉! 남은 우리는 코로나 특별 대책으로 4명 이하씩 방마다 뿔뿔이 흩어져서, 칸막이를 설치 및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반드시 쓰는 등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밥을 먹기로 했다. 이 이색적인 식사시간에 다들 잠시 어색해하는 듯 했으나, 어디서나 적응하는 백수답게 우리는 곧 완벽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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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청년들)만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2, 3층의 다양한 학인분들이 나이와 성별과 직업을 막론하고 섞여 활발히 서로의 공부와 인생을 교류하던 이곳 깨봉 주방이, 이제는 띄엄띄엄 앉은 우리들만의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잠시 이러다 원래대로 돌아가겠지’하며 지나가는 날이 2주, 한 달, 3개월, 그리고 반년…….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들 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수업들은 하나 둘 개강하는데, 주방과 식당에는 여전히 우리들뿐.

그러던 어느 날, 주방 회계를 체크하는데 식권 구입 목록에 ‘대중지성 낭송 심사 선물 식권’이라는 항목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대중지성에서 하는 낭송대회의 심사를 맡아준 청년들에게 선물로 주는 식권을 대중지성 담임 선생님이 구입해 가셨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걸 보고 처음엔 의아했다가 이내 곧 깜짝 놀랐다. 벌써 대중지성 낭송대회 기간이라니! 낭송대회는 한 학기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이벤트로, 학인분들이 학기 동안 배운 책으로 낭송을 발표하는 자리다. 내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이유는 감이당 공부 프로그램의 주요 행사인 낭송대회의 일정을 사람이 아닌 회계를 통해, 그리고 거의 당일 즈음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낭송대회 같이 큰 행사의 소식을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럼 보통은 어땠냐 하면, 우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공부 일정이나 동태 같은 것들을 파악하게 된다. 누가 혼이 많이 났고, 어떤 팀이 싸웠고, 이번 글쓰기 주제는 이런 것이고… 하는 얘기들이 들려오다가, 학기말 에세이가 다가오면 선생님들이 하나 둘 점점 고통(?)스러워 하신다. 그러다가 낭송은 또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오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정이 공유가 된다. 같이 밥을 먹음으로써 서로의 소식들을 활발히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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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일정이 공유가 된다. 같이 밥을 먹음으로써 서로의 소식들을 활발히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식사를 같이 못하게 되자, 그런 주요한 소식들이 주방과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일이 뚝! 끊겼다. 원래 수많은 정보의 진원지이자 생성지였던 주방이, 이제는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주방과 사람을 연결하는 주방매니저로서 이전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주방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부터 해서 ‘이제 뭘 해야 하지….’ 등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근심들이 피어올랐다. 네트워크가 생명인 주방을 잇는 흐름들이 하나 둘 끊어져 가고 있는데…이를 어쩐다……?

단절의 때를 지나는 법함께 연대하여 올바름을 지킴

주역 64괘 중 12번째 괘인 천지 비(天地 否)괘는 정체와 단절의 때를 보여주는 괘인데, 비괘의 괘사(괘의 이야기)는 이런 말을 품고 있다. “否之匪人(비지비인).” 단절의 때는 사람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 있어 관계가 정체되고 단절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게 안라는 뜻과 통하는 말이다. 그럼 이렇게 전염병, 그것도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한 강제적 단절의 때에는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천지 비괘는 말한다.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 亨(초육, 발모여 이기휘 정길 형).” 이것은 비괘의 첫 번째 효의 효사(효의 이야기)인데, “서로 엉겨있는 띠 뿌리를 뽑듯이 그 무리와 함께 하되 바르게 하면 길해서 형통하다”는 뜻이다. 즉, 이런 때일수록 함께 연대하여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형통하다는 것! 네트워크가 단절되어버린 주방의 위기를 감지했을 때 마침 이 비괘를 배웠는데, 덕분에 ‘단절의 때’라는 게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때에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함께 연대하여 올바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도.

그렇다면 이 단절의 때에 어떻게 하면 함께 연대하여 올바름을 지킬 수 있을까? 우선, 지금의 주방이 현실적으로 이전과 같은 소통 창구가 되기는 어려운 때라는 걸 명확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때에는 잘 안 되는 걸 어떻게든 억지로 힘써 해보려 하는 게 때에 맞지 않을 수 있음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전의 그 활기 넘치던 이야기장일 때와 계속 비교하는 건 일종의 어불성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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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선 위에서 다시 주방을 바라보니 이런 난세(亂世)^^;의 때에도 이곳이 얼마나 놀라운 공간인지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학인분들의 공동 식사가 잠정중단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방 앞으로 학인분들이 보내주시는 선물들이 끝도 없이 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식사를 하지도 않는데 수업 들으러 오시면서 주방선물을 무겁게 챙겨오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코로나라는 장벽 때문에 공부하러 나오기도 어려운 때인데 주방일지를 보고 생각났다며 선물을 보내주시다니. 이곳은, 어느새 그야말로 ‘베풂’의 공간이 되어있었다!

또한 주방은 몇몇의 청년들이 공부 자립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 역할도 톡톡히 했다. 청년들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공간인 것. 이렇게 주방은 이전과 같이 ‘공동체 와이파이존(wi-fi zone)’의 역할을 활발히 하지는 못하게 됐지만, 오히려 전에 없던 ‘끈끈함’을 발휘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단절의 때에도 끊기지 않는 마음-흐름들이 생생히 드러나고, 청년들의 공부를 중단 없이 가능케 하는 것으로써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몸은 마스크와 가림막 벽에 의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 주방 성금을 보내주신 한 선생님의 문자메시지가 스쳐 간다. “주방 밥 너무 그리워서 성금 보내요~~.” 선생님, 저희도 그리워요~~! 주방,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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