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감이당)

요즘 들어 통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유튜브나 sns를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아이쇼핑을 한다. 지금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핸드폰과 글쓰기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딴짓들은 mvq글을 쓸 때 많이 그런다. 주역을 해석할 때 막히고, 나의 일상을 묘사하려고 할 때 막히고, 제목을 정할 때 막히고……. 머리는 꽉 막힌 채 돌아가지 않고 과열된 엔진처럼 증기가 난다. 차라리 근육통으로 끙끙거리는 게 나은 것 같다.^^ 이럴 때 의욕이 사라지고 핸드폰에 손이 간다. 지금은 글 몇 줄 쓰고 딴짓하고, 책 한 챕터 읽고 딴짓을 하고 있다. ‘아 이제 진짜 공부하자’라고 얼마나 많이 생각(만)했는지!

물론 처음부터 딴짓을 한 건 아니다. 감이당에 들어온 초반에는 공부에 집중했다. 감이당에 오기 전에는 공부를 할 생각이 1도 없었다. 그저 택견으로만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했고 공부의 ‘ㄱ’ 자만 들어도 심각한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하지만 슬럼프가 오면서 ‘택견으로만은 먹고 살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공부를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약하게 말이다.^^ 나 자신조차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마음이었지만 일단 하려는 마음이 생기자 한번 해보고 싶었다.

감이당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술도 게임도 유튜브나 SNS까지도 멀리했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그 덕분에 한눈팔지 않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약간의(?) 강제성이 있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공부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거나, 막혀있었던 생각의 길이 뚫릴 때나, 나도 몰랐던 나를 공부를 통해서 알게 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기쁨, 즐거움, 행복 등등 온갖 밝은 기운을 가진 감정들이 뒤섞이며 올라온다. 그때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 온몸으로 그 기쁨이 느껴졌다. 이 순간만큼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택견과 공부를 제대로 엮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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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만큼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택견과 공부를 제대로 엮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도 몇 번씩 봐야 하고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명절날 고속도로 마냥 끝도 없이 막힌다. 그러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감이당 사람들과 관계도 생기고 공간이 익숙해졌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도 마음도 늘어졌다. 공부의 강제성이 사라지자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순식간에 180도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면서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순간)가 참 많이 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의지가 부족한 놈이었나?! 한숨만 나왔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니 이런 나의 모습이 지뢰복 괘의 육삼효를 똑 닮았다. 復(복)괘는 돌아옴, 회복이라는 뜻이 있다. 괘상을 보면 움직임을 뜻하는 震(진) 괘가 밑에 있고 땅을 뜻하는 坤(곤) 괘가 위에 있다. 다섯 개의 음이 위에 있고 제일 밑에 양이 하나가 있는 상이다. 소인들(다섯개의 음)이 판을 치는 세상에 군자(하나의 양)의 기운이 회복하는 때이다. 효사는 頻復 厲 无咎.(자주 돌아오니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양의 기운이 회복을 시작하는 때인데 자꾸 예전 소인의 때로 돌아갔다가, 다시 양의 기운을 키우러 돌아왔다가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양의 자리에 음이 와서 실천력도 별로 없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도 부족하다. 자꾸 예전의 쾌락과 중독의 신체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다시 ‘이러면 안 돼! 얼른 다시 공부하자!’를 오가며 헤매고 있는 딱 지금의 내 모습이다. 공부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청년! 이 의지를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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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청년! 이 의지를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삼효를 꼼꼼히 살펴보자 이효와 육사효를 보면 초효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육이효는 음의 자리에 음이 왔고 하괘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있고 초효와 가까운 자리에 있어서 초효의 덕에 감화되어 회복하는 자리이다. 사효는 초효와 호응하는 자리다. 그래서 아래, 위로 음(소인)들에 쌓여 있지만, 초효의 도를 따라 혼자서 회복할 수 있다. 즉 이효와 사효는 초효라는 타인과 접속해 감화되어 회복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삼효는 초효와 멀리 있고, 음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회복의 의지도 없고 그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효와 사효가 회복하니 군중심리(?)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따라서 회복하는 자리인 것이다.

내가 딱 이 꼴이다. 공부는 타인과 접속해야만 꾸준히 할 수 있다. 타인과 같이 공부하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혼자서 하는 공부가 아니기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진다. 나는 지금까지 같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 정도면 같이 공부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내 마음가짐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한다고 해도 타인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타인의 생각을 ‘내 공부’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접속은커녕 나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지루해진다. 그러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딴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공부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깐 분위기 상 ‘여기에 있으려면 얼른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주변 환경에 맞춰 다시 공부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요즘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것은 혼자서 하는 공부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삼효에게 허물이 없다고 한다. 이런 태도가 허물이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빈복은 아무리 길이 엇나가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려고 애를 쓴다. 의지가 약해서 자꾸 어긋나거나 실수하지만 돌아오려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자리다. 계속 돌아오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조금씩이라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구하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가려 할 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긋났다가 돌아오고, 다른 길로 샜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빈복의 포인트는 포기, 의지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돌아오려고 애쓰면서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꾸준히 밀고 나아가는 힘에 있다!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공부를 해 볼까?’ 했던 그 미약한 초심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빈복의 힘이다. 그래서 빈복은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빈복의 중요한 점은 몇 번이고 돌아올 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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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복의 중요한 점은 몇 번이고 돌아올 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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