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가장 쎈 욕망, ‘그것이 알고 싶다’

세계 각지의 신화와 민담엔 마치 서로 베낀 것만 같은 비슷한 레파토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열어보지 마라’, ‘돌아보지 마라’같은 금기다. 이런 금기는 종종 주인공들이 자신의 무죄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나는 ‘돌아보지 마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미 그가 실패할 것임을 직감하며 긴장감을 느낀다. 아담과 이브 때부터 인간의 가장 큰 취약점은 바로 호기심 금기가 아니던가. 기억해야하고,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은 영리한 주인공들이라면 거뜬하게 해내는 미션이지만, 아무리 영리하고, 착하고, 용감하고, 절박한 요구가 있다하더라도 호기심 앞에서는 모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야기 속에서 호기심이 금기와 결합했을 땐, 마치 내면에서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처럼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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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과 관련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바그다드의 세 미녀의 야회에 우연히 함께하게 된 나그네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에 관해 호기심을 가졌다가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그 중엔 공교롭게도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애꾸가 된 탁발승이 있었다. 그는 이 야회의 주최자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 번째 탁발승의 이야기」라고 소개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시나 왕자였다. 아지브라는 이름의 이 왕자는 난파된 배에서 혼자 살아남아 무인도를 거쳐 알 수 없는 나라를 떠돈다. 그러다가 열 명의 청년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오른쪽 눈이 애꾸였다. 아지브 왕자는 그들 무리와 함께하게 되는데, 조건이 한 가지 걸렸다.

친구분! 여기서 당신하고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왜 우리 모두가 애꾸인지 하는 질문은 삼가 주십시오. 그냥 보고만 계시고, 그 이상 쓸데없는 호기심은 품지 마십시오!” (천일야화 1, 271)

이 대사는 바그다드의 야회에서 들었던 금기와 완전히 똑같다. 그러나, 그 열 명의 청년이 밤바다 행하는 참회의식이 얼마나 해괴했던지 아지브 왕자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 그들의 사연을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만약 자기들의 사연을 알게 된다면 아지브 역시 자신들처럼 비참한 운명을 맛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참 이상한 대답이다. 그 내용이 CIA가 노리는 핵무기 기밀 같은 거라면 듣고 아는 것만으로 표적이 될 수 있어 벌벌 떨리겠지만, 누군가의 사연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비참한 운명이 된다고? 그러나 청년들은 자신들의 사연을 단순히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지브로 하여금 직접 겪게 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겪으면 다 알게 될 일이라며, 부디 오른쪽 눈이 애꾸가 되어 돌아오지 말기를 기원해준다.

아지브는 청년들이 알려 준대로 모험을 시작하고, 일 년 간 40명의 미녀와 관능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금기의 관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녀들이 갑자기 떠나며 100개의 열쇠를 주고 가는데 그 중 한 열쇠로 여는 황금문의 방만은 절대로 열어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결론은 뻔하다. 그는 문을 열었고, 흑마의 꼬리에 오른쪽 눈을 찔려서 실명을 하고, 흑마를 탄 채로 그 꿈같은 궁전을 떠나 모험을 하기 전의 장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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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금기에는 별다른 긴장감이 존재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고난과 억울함을 풀기 위한 미션수행이 아니었고, 미녀들과의 이야기도 너무 뜬금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재밌는 부분은 청년들이 똑같은 실수를 해가며 오른쪽 눈 애꾸가 한 명씩 늘어나다가 또 한 명 추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하게 예상되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열 명의 청년들은 아지브 왕자가 애꾸가 되어 돌아온 것을 보고 놀라지도 않았고,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이 애꾸 모임에는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하나같이 똑같은 환락을 누렸고, 하나같이 똑같은 시험에 들었고, 똑같이 호기심의 관문에서 실패하고는 모두 다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그들은 열 명 인원을 유지하려고 고집하니 사실 아지브가 열 한 번째가 아니라 수많은 열 한 번째 애꾸가 그의 앞에 있었거나, 또는 그의 뒤를 이어 계속 생겨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아지브의 비극은 이미 앞선 남자들의 비극의 반복이다. 괴로움의 윤회다. 그들은 밤마다 해괴한 참회의식을 치르는데, 재와 숯을 온 몸에 묻히고는 울고 한탄한다. 아지브가 모험을 시작할 때 열 명의 청년은 그가 애꾸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알았다. 영원히 누리고 싶은 관능적 쾌락마저도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할 것이기에 누구나 미녀들을 배신하고 금기의 약속을 깰 것이다. 심지어 미녀들도 열쇠를 줄 때 울며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세 번째 탁발승의 사연은 사소한 호기심일지라도 인간이(남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지복인 부귀영화와 성적인 열락보다도 크며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힘

호기심은 정말 다른 어떤 욕구보다 클까?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농장주인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기에 웃냐고 물어보던 안주인은 남편이 발설하면 죽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길 원했다. 하지만, 남편이 죽도록 때리자 그녀의 호기심은 그제서야 멈췄다.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만이 호기심을 억누를 수 있는걸까? 그런데 돌이 되니까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야말로 어겼다가는 죽는 경우이건만 왜 그렇게들 하릴없이 돌이 되고 마는 걸까? 정말 호기심은 인간의 근원적 아킬레스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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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이 되니까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야말로 어겼다가는 죽는 경우이건만 왜 그렇게들 하릴없이 돌이 되고 마는 걸까?

갈랑판 『천일야화』의 마지막 이야기는 「막내동생을 질투한 두 자매 이야기」다. 여기서도 주인공들에게 그 유명한 ‘절대 돌아보지 마’라는 금기가 내려진다. 두 언니의 모함 때문에 왕비였던 막내 동생은 세 명의 아기를 낳고도 아기를 버려야 했다. 버림받은 세 아기들이 커서 자신의 신분을 되찾게 되는 내용인데, 두 명의 오빠는 미션에 실패해서 모두 검은 바위로 변했고, 막내 여동생만이 뒤돌아보지 않아서 마법의 새를 얻고, 모든 마법이 풀려서 오빠들까지 구하게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은 그들이 돌아본 것이 호기심에 굴복당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분노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산을 오르는 동안 뒤에서는 욕설과 조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찮은 목소리들 속에서도 바아만 왕자는 스스로를 격려해 가면서 꿋꿋하고 단호하게 계속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전후좌우에서 와글와글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갈수록 요란해져서, 마침내 왕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덜덜 떨려 왔죠. 더 이상 걸을 힘을 잃은 그는 탁발승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몸을 돌린 것이죠. 순간 그의 몸은 검은 바위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천일야화, 6, 1899)

이와 같이 두려움 때문에 경고를 잊은 첫째와는 달리 둘째의 경우는 뒤에서 들려오는 욕설에 화가 치밀어 탁발승의 충고를 잊고 검을 빼들고 몸을 돌렸다가 바위가 되었다. 그런데 막내 여동생이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 그녀는 탁발승으로부터 똑같은 경고를 듣고는 기지를 발휘하기로 한다. 귀를 솜으로 틀어막으면 목소리들이 훨씬 덜 무섭게 들릴 것이고, 그럼 상상력도 영향을 덜 받게 될 거예요. 결과적으로 내 정신은 자유로워져서 이성을 잃는 일이 없게 되겠죠.”(6, 1906) 용맹한 오빠들도 모두 실패한 미션이었기에, 두려움과 조롱에 농락당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아예 그 통로를 차단해버렸다. 자기를 과신하지 않는 겸손함과 신중함 때문에 무사히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믿는 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다.

호기심은 두려움·분노와 달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통로를 틀어막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안·이·비·설·신·의라는 번뇌 망상의 뿌리에 생각(意)이 있는 걸 보면, 마음 안에서도 생각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통로가 있다. 마음을 잘 관찰하면 그 망념의 뿌리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탁발승이 된 아지브 왕자는 이제부터 그 수행을 해나가지 않을까?

그러나 물론 이 글의 주제는 호기심을 어떻게 억제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호기심이라는 떨치기 힘든 본능과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천일야화를 보면서, 이렇게나 호기심에 관해 많이 이야기 해 놓은 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헤라자드야말로 왕의 호기심을 이용하여 하룻밤씩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으며, 이야기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호기심이라는 윤활유 때문에 끊임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어진다. 『천일야화』 자체가 호기심 때문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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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가 호기심 때문에 쫓겨나 인류를 번성시키고 살았다면, 호기심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은 인간의 취약점이 아니라,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이다.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서로 연결시킨다. 일단 누군가가 타인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해야, 이야기를 밑천삼아 천 냥 빚도 갚고 목숨도 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강력한 호기심의 함정이 있기에 모험이 스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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