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남산강학원)

제나라의 신하 장포는 맹자를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최근에 왕을 뵈었는데, 왕이 뜬금없이 자신에게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왕 앞에서 장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물러났다고 한다. 장포는 이런 이야기를 한 뒤 맹자에게 물었다. “왕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 물음에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오”

다른 날, 맹자는 제나라 왕을 직접 만나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왕은 맹자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한다. “과인은 요순과 같은 선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속의 유행하는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이 말을 듣고도 맹자는 실망한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세속의 음악이든, 선왕의 음악이든 무슨 상관이냐며 말을 한다.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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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로 보면 세속의 음악(유행가)은 아이돌, 트로트, 힙합, 발라드 등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음악을 즐긴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의 ‘취미’ 혹은 ‘위로’ 정도로 취급된다. 나 역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공부하는 데 집중이 안 될 때 음악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음악과 정치가 연결된다고 상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맹자는 그 두 가지를 연결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마침 왕도 궁금했는지 곧바로 맹자에게 묻는다. “그것에 관해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혼자만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즐겁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혼자 즐기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 했다. 다시 맹자가 몇몇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겁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몇몇의 사람들과 즐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 했다. (맹자/ 박경환 옮김 / 홍익 출판사/ p59)

맹자는 왕에게 ‘어떤’ 음악을 즐기는지 묻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음악을 ‘어떻게’ 즐길 때 더 즐거운지 왕에게 질문하고 있다.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보다 몇몇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게 더 좋고, 몇몇 사람과 즐기는 것보다 많은 사람과 즐기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혼자 스마트폰에 있는 음악을 듣는 것보다 함께 음악을 들을 때 더 즐겁다. 내가 공부하는 연구실에서는 매년 작은 축제들이(학술제, 북파티…. 등) 열리는데, 종종 흥 있는 친구들이 기타 연주를 해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마추어의 공연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그 분위기를 타고 흥겨운 기운을 주고받을 때 그 공연은 어떤 ‘프로’의 음악보다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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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음악으로부터 ‘함께할 때 즐거워지는’ 속성을 찾았다. 그리고 왕 역시 음악을 ‘어떻게’ 즐겨야 즐거운지를 알고 있었다. 맹자에게는 바로 이곳이 음악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이다. 맹자는 왕께서 음악을 대할 때의 그 마음을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맹자에게 정치는 국가의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도, 국방력을 빵빵하게 키우는 것도 아니었다. 맹자에게 정치는 백성과 어떻게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는가에 있었고, 그랬기에 음악과 정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았다.

사실 ‘함께할 때 즐거워지는’ 원리는 음악과 정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운동할 때도 ‘혼자’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 한두 번은 혼자 하는 게 편하고 덜 귀찮을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금방 지겨워지고 쉽게 지친다. ‘함께할 때 즐거워지는’ 원리는 사실상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즐길 수 있을까? 내가 즐기고 있는 것을 똑같이 상대도 즐기도록 해주면 될까? 내가 발라드 음악을 좋아한다 해서 상대에게 발라드를 즐기라고 하면 강요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각자 즐거운 음악을 듣는 것 또한 ‘함께’ 하는 게 아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의 즐거움과 백성의 즐거움은 다를 수 있다. 왕의 즐거움을 백성에게 강요하는 것도, 백성들 각각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것도 함께 즐기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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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즐길 수 있을까?

맹자는 “백성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면 백성들도 임금의 즐거움을 자신들의 즐거움으로 여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무엇’을 함께 즐길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그보다 맹자는 함께 즐거움을 만들어가려는 ‘태도’가 중요함을 말해준다. 그 태도란 상대(백성)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백성) 또한 나의 즐거움을 자신들의 즐거움으로 여기고, 서로 진정으로 ‘함께’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연구실에서 유튜브 채널 강감찬TV를 관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강감찬TV 팀장이 되어 7명의 친구들과 함께 영상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있다. 강감찬TV 활동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이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매번 고민하고 있다.

올해 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함께 작업 리듬을 맞춰보기도 하고, 함께 산책하러 가기도 하고, 새로운 영상을 기획해서 함께 앉아서 만들어보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내가 ‘무언가’를 ‘함께’ 하려 하면 다들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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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즐기지 못한 것은 아마 내 머릿속에서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행했기 때문일 테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강요 또는 억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에 이것저것 시도는 많이 해봤는데 정작 나는 함께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뉴얼이나 정답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함께 즐거움을 만들 수 있을지는 친구들에게 관심을 두고 매순간 고민해야 하는 문제, 즉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맹자는 이렇게 답해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을 즐겁게 만드는 원리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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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팽
이달팽
2 months ago

함께 즐기는 방법이 ‘무엇’에 있지 않고, 그 ‘마음(태도)’에 있다는 것이 재밌네요!!
청년 맹자 연재 응원합니다~~

제롬
제롬
2 months ago

오오..청년 맹자의 첫글, 드뎌 올랐군요!! 추카추카!!!
‘함께하’는 즐거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고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앞으로도 청년이 만난 맹자, 계속 생생하게 담아주세요~^^
연재 응원합니다\(^^)/

이승현
이승현
2 months ago

상대의 즐거움을 나의 즐거움으로, 알쏭달쏭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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