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이야기를 한참 떠들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있다. 주제에서 벗어나서 맥락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옮겨갔을 때 그런 표현을 쓴다. 삼천포란 어디인가? 경상남도 끝자락의 바닷가 마을이다. 옛날에 한 상인이 번화하고 장사가 잘 되는 진주를 찾아가다가 잘못 들어서서 삼천포에 가서 장사하는 바람에 허탕을 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삼천포로 들어서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어 도로 돌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삼천포는 목적지도 경유지도 아닌 곳, 빠져 나와야 하는 곳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천일야화는 우리에게 ‘이야기’란 그저 삼천포라고, 그게 이야기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천일야화는 수많은 삼천포의 미로로 이루어져 있어서 독자는 지금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놓치기 일쑤다. 시작할 땐 분명 세헤라자드가 화자였지만, 이야기 속 누군가가 목숨을 빌기 위해 얘기를 시작하고, 또 그 이야기 속 누군가가 얘기를 시작하고… 이렇게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이야기, 또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이어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 이제는 나 몰라라 한 채 그저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만 열중하게 된다. 영리한 세헤라자드가 그 이야기에서 돌아 나왔을 때에서야 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화자와 청자가 누구였던가를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의 반복이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바이블인 천일야화가 구사하는 액자구조의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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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를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책을 읽어갈 때, 책갈피 대용으로 만들어 갖고 다니던 종이가 있었다. A4용지를 길게 네 칸으로 접어서 깨알같은 글씨로 이 복잡한 구조를 표로 그린 것이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누가, 왜 하고 있는지의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말이다. 미로처럼 꼬이고 중첩된 <어부 이야기>를 살펴보자.

한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황동 항아리를 건져 올렸다. 그 항아리엔 정령이 하나 봉인되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갇혀있던 탓에 자기를 구해주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이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그 어부는 정령을 구해주고도 목숨을 잃을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어부는 기지를 발휘하여 그 정령을 다시 항아리에 봉인하고는 바다에 다시 던져버리려고 하는데… 여기까지는 대부분 어부와 정령의 입씨름으로 구성되었다.

어부는 살려달라는 정령의 부탁을 거절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내놓는다. 네놈은 분명히 그리스인 왕이 의원 두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나를 대접할 테니까! , 네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으니, 한번 들어 보거라!”(1, 94)라며 시작한 <그리스인 왕과 의원 두반 이야기>의 화자는 어부다. 이 이야기는 불치병에 걸린 왕의 병을 의원 두반이 고쳐주고서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나, 질투심에 사로잡힌 다른 신하가 두반을 왕에게 계속 참소하였다. 왕은 이 신하의 속셈을 간파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제 왕이 화자인 이야기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과 앵무새 이야기>다.

어떤 남편이 잠시 부인을 떠나있게 되었는데 부인을 의심하여 앵무새 한 마리를 사서 부인을 지켜보게 했다. 앵무새는 자기의 의무를 다했고, 부인은 돌아온 남편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게되었다. 남편이 다시 출타를 떠나게 되었을 때, 부인은 시녀들과 함께 앵무새를 속여서 아주 엉뚱한 보고를 하게 만든다. 앵무새는 남편이 돌아오자 오지도 않은 비가 왔다고 하고 치지도 않은 천둥이 쳤다고 했다. 화가 난 남편은 충직한 앵무새를 죽였다. 왕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의원 두반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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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재상이 왕에게 <벌 받은 재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않아서 왕자를 실종케 한 재상이 왕을 속였지만 결국 죄상이 밝혀져서 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재상은 왕이 두반에게 속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처벌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는가? 이제 이 이야기 미로에서 나갈 차례다. <벌 받은 재상 이야기>를 들은 왕은 의심이 들어 의원 두반을 처형하지만 자신도 두반의 복수로 죽게 된다. 이 <의원 두반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어부가 하고 싶은 말은 목숨을 빚진 어리석은 왕이 두반을 죽였기 때문에, 자기도 정령을 다시 꺼내주었다가는 배은망덕한 짓을 당할 것이 분명하니 구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어부가 정령을 믿고 다시 풀어주는 걸로 끝나… 지 않고, 어부가 정령으로부터 받은 마법 물고기로 인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또 펼쳐진다. 열심히 액자구조에서 빠져나왔더니 뒷이야기는 어부가 왕에게 물고기를 바친 후 왕이 겪는 모험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한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전원 교체되는 것이다! 이 왕이 겪은 이야기는 앞의 어부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흘러간다. 주제와 맥락의 실종이다.

어휴, 나는 이 스토리를 읽을 때, 맥락을 안 놓치고 따라가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포기하고 이 복잡한 액자구조를 그려놓은 책갈피 쪽지를 버려버렸다. 여기도 삼천포, 저기도 삼천포다. 그냥 길을 잃으리라! 다 내려놓으리라! <어부 이야기>는 맥락을 잡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이야기의 미로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제나 맥락을 포기하고서 천일야화를 읽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야기의 본령에 충실하게 된다. 이야기는 가볍고 자유롭다. 긴장을 풀어주고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를 가볍게 만들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이 자리를 떠나 다른 세계로 쏙 빠지게 한다. 그렇다. 지금의 나를 떠나야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본령이다. 자기를 잊고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청자는 어느새 마음을 바꿔먹고 설득 당하고 만다. 귀와 함께 마음도 열리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래서 사기꾼의 말을 오래 듣고 있으면 안 된다. 보이스 피싱의 가장 큰 예방은 두말 않고 전화를 그냥 끊어 버리는 거라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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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지금의 나를 떠나야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본령이다.

철학이 탄생하기 이전, 모든 담론은 이야기로 전해졌다. 역사와 신화의 구분도 없고, 종교와 철학도 분화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설득력과 논리구조를 가지고 어우러져 있었다. 이 시대를 뮈토스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역사서이지만, 신들의 용맹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신화이고, 페르시아의 서사시 『샤나메』는 왕들의 계보를 다루고 있지만, 용맹한 전사들의 전쟁과 충정에 관한 영웅 신화다. 뮈토스의 시대는 철학의 등장과 함께 로고스적 사유에 밀려난 것 같다. 철학의 탄생 이후, 이성과 논리가 없으면 누구도 담론세계에 진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냉철한 철학적 사변보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이 열린다. 이야기는 언어가 생겨난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해왔다.

『천일야화』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8세기의 <하자르 아흐사네>에 대해 당시의 도서 목록표에는 ‘자잘한 이야기 부스러기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그다지 큰 재미는 없지만, 이 복잡한 액자구조 자체가 『천일야화』 최대의 기교이자,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인 것이다. 정신을 쏙 빼놓는 이런 화려한 기교에 샤리아 왕은 넋을 잃은 채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들고 자신의 복수심을 잊는다.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는 샤리아가 아니라, 어부의 이야기를 듣는 정령으로, 왕의 이야기를 듣는 재상으로, 수없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이야기 미로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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