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감이당)

우리는 평소에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며 자연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흐름이 순탄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스럽다고 한다. 흐름에서 어긋나고 뭔가 튈 때는 부자연스럽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막상 자연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감이당에 와서 공부하며 놀란 것 중 하나는 자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간이 가진 생명의 원리와 우주 자연의 이치가 하나였다. 생명과 자연의 이치가 하나라니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왠지 이거다 싶었다.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만난 듯 전율이 느껴졌고 반가웠다. 사실 우리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천둥이나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만 천지자연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 정신, 삶도 자연에서 벗어나 있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고 있다.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과, 사막에 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같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자연과의 공명에서 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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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그저 자연물인가?

그동안 내게 자연은 이용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릴 때,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파도가 잔잔해질 때 감사해야 할 대상이었다.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정월 대보름 밝은 달을 보며 한 해 소원을 비는 대상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쓰나미나 지진을 보며 또는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웅장한 자연경관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자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자연이란 산, 나무, 바다…이런 것들이라고 했다. 다른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 빌딩 숲에 쌓여 있어서 자연과 만날 시간이 없다고, 시골에 살았으면 자연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아들에게 자연은 단지 자연물이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건 없냐고 했더니 배운 적 없다며 시험에 안 나온다고 짜증을 냈다. 아들의 말처럼 시골이라고 다를까? 시골에 살더라도 자연을 단지 농사짓는데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상으로 만나는 것이다. 도시에 살아도 계절은 바뀌고 낮과 밤은 바뀐다. 흔히들 이런 순환이 자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연물만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자연과 내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지 자연과 내가 공존하고, 자연의 리듬대로 사는 거라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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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연 밖에 자연을 만들어내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연은 영원불변한 하느님이 창조했고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모순이 있다. 물론 이런 모순은 스피노자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먼저, 하느님을 하늘 밖에 두면 이 세계 천지만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느님이 하늘 밖 외부에 있는데 어떻게 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가? 또한, 천지자연은 한순간도 생성과 변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생성 변화하지 않으면 자연은 끝이다. 영원불변하는 하느님이 이런 변화하는 자연을 만들고 다스린다? 자신이 불변하면 자신이 만들어 낸 것도 불변해야지 어떻게 자신은 불변인데 변화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신은 불변인데 일부러 창조물은 변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숭배하라고? 이것도 이상하다. 기독교에선 이런 것들이 신의 전능함이라고 한다. 신은 전능하기에 이 세계 밖에서도 창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고, 자신은 불변하지만 인간을 위해 특별히 변하는 존재를 만든 거라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신부님에게도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일방적으로 듣고 받아들였을 텐데 이제 궁금한 걸 묻게 되었다. 나는 신이 질서 있게 만들어 낸 세상은 왜 이리 무질서하게 되었나? 고 물었다. 신부님은 신은 질서 있게 창조했는데 인간들이 교만해져서 세상이 무질서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이런 인간들로 인해 가슴 아파한다며 속죄해야 한다고 하셨다. 신도 인간의 교만함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것인가? 그럼 신이 아니지 않나? 이런 궁금증이 있었지만, 더 질문을 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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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하늘 밖 외부에 있는데 어떻게 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가?

무지가 낳은 인간의 특권

자신들의 설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증명방식을, 즉 불가능한 것으로의 환원이 아닌, 무지로의 환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1, 부록, 96p) 만일 무지가 없어지면, 자신들의 권위를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어리석은 경탄도 또한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1, 부록, 97p)

 

스피노자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에 대한 모순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밝히려고 하지 않고, 신의 뜻이라며 무지로 돌린 것에 대해서 비판한다. 성직자들은 무지상태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유지해나갔다. 인간이 무지해야만 계속해서 신에 대해 경탄할 것이고 교회의 권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이런 모순을 알고 밝히고자 한다면 성직자들의 권위가 유지될까? 이런 무지상태를 강화하기 위해 사제가 등장한다. 신에 대한 앎이 사제에게만 있기에 사제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은 신의 뜻을 알 수 없고 사제만이 신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지금도 사제나 목사를 신처럼 받드는 신자들이 있다. 사제에게 잘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제와 친한 정도가 신앙심의 기준인 것처럼 행동하는 신자들도 있다. 성직자도 가까이에서 보면 일반 사람보다 더 편협하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사제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신자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시편8.5-7)

 

이런 무지는 창조주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대신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고 믿게 한다.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이 인간을 신보다 조금 못하게 만들어서 다른 창조물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제 인간은 신의 명령에 따라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존재다, 인간이 피조물이 아닌 자연에서 벗어나 특권화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천지만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에게 속하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라고 한 것은, 인간이 주인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인이기에 잘 관리하고 섬기라는 의미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하고 섬기는 것도 방식만 다를 뿐이지 대상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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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독교에서는 생태 신학을 말한다. 생태 신학이란 자연을 신의 몸으로 보고 신성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신이 오래전에 창조를 끝내고 멀리서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가 계속 일어나는 현장이 자연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연이 신의 창조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라면 자연에 대한 시선은 바뀔 것이다. 그러려면 신에 대한 해석이 바뀌어야 한다.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창조를 이어가는 신으로. 그렇게 된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살리는 차원을 넘어서 자연과 공존하려고 하지 않을까? 신을 믿는 사람들은 다들 신을 느끼고 경험하고자 하니 자연을 신의 창조의 현장이라고 본다면 적어도 무분별하게 파헤치진 않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분리

그들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많은 수단들 예컨대 보기 위한 눈, 씹기 위한 이, 영양을 위한 식물과 동물, 비추기 위한 태양, 물고기를 기르기 위한 바다 등을 발견하므로,,,그 결과 그들은 모든 자연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되었다.(1, 부록)

 

인간은 불변하는 신이 이 세계 밖에서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것처럼, 자신도 신의 명령에 따라 자연밖에서 자연을 다스린다고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런 상상은 초월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현실화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은 인간이 다스리고 이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눈, 이, 식물, 동물, 태양, 물고기…을 만들지는 않았으니 창조주가 만들었을 것이고 창조주가 만들었을 때는 인간을 사랑해서 만들었다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었고, 신 아래에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연을 서열화한다. 꽃처럼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선, 바퀴벌레처럼 징그러운 것은 악으로 나눈다. 신과 인간을 분리하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선과 악을 나누는 이분법이 탄생한다. 초월신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과 우리가 자연을 보는 시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신이 이 세계의 주인이면서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주인이면서 전체 자연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시선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게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를 분리시켜 ‘나’가 관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나와 타자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내가 자연과 공명하지 못하게 된 것도, ‘나’를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것도 이런 초월신에 대한 사고방식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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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선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게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를 분리시켜 ‘나’가 관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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