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살림당)

1. 舊청년과 新청년, 함께 시작하다

작년(庚子年)즈음부터 공부 동기가 아닌 친구들과 활동이 겹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공부하러 온 친구들과 같은 공부프로그램을 들으며 활동을 꾸려왔었는데, 이제는 막 공동체 생활을 하러 온 新청년들과 생활&활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꽤나 새로운 일이었다. 비슷한 공부를 하고 비슷하게 공동체 생활을 겪어온 친구들과 익숙한 방식으로 일을 도모할 때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활동을 같이 꾸려가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일이었던 것이다.

작년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친구들을 끌어왔다면, 올해는 그 친구들이 이곳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그들도 한 명 한 명의 매니저이자 리더로서 우리와 결합하는 훈련을 할 때였다. 그런 시기에 新청년 중 한 명인 미솔이와 나는 주방 매니저라는 꽤나 큰 공부 자리를 함께 맡게 되었다. 舊청년과 新청년, 새로운 조합의 탄생! 과연 어떤 주방이 만들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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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방회계로 피어나는 불신

주방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내가 이 활동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해 여러 고민이 들었다. 동기와 뭘 할 때는 그냥 편하게 상의할 거 상의하면서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나가면 됐었는데, 미솔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어쨌건 연구실 밥을 몇 백 끼는 더 먹은 사람이었다. 공부도, 활동도 경험이 훨씬 많은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위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그리고 ‘리더’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았을 때, 그건 더 이상 ‘같이’ 잘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라 내가 계속해서 부딪치고 있는 나의 공부지점이었다.

하지만 먼저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또 실패했다. 내 공부지점 앞에서 또 주저앉고 만 것이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같이’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냐며 스스로의 게으름과 의존성을 합리화했다. 내가 쓰는 ‘같이’라는 말에는 ‘기대도 된다’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있었다. 동기들과 활동을 꾸릴 때에도 나는 쉽게 기대는 걸 아주 좋아했다. 예를 들어 같이 일을 하는데 어떤 친구가 뭔가를 잘하면 그 친구에게 그걸 배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은 최대한 그 친구에게 맡겼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에게 ‘곰손’, ‘재성 고립’, ‘일머리 없음’ 같은 말들을 부여하며 나를 안락한 곳에 위치시킨 결과, 나는 실제로 일을 꼼꼼히 해내기 어려운 곰손이 되었으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 잘 못하는 일맹(?)이 되었다.(불교의 업(業) 개념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딱 들어맞는 진리다!)

주방회계는 큰돈이 오갈뿐만 아니라, 돈의 흐름을 통해 주방 생태계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는 면에서 주방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요한 일이자 공부거리 중 하나다. 그 주방회계를 같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힘을 많이 쓰지 않았다. ‘코로나 주방’이라 그런지 코로나 전의 회계에 비해 금액적 스케일도 작았고, 먹는 인원도 한정적인 데다 거의 청년들뿐이기 때문에 읽어낼 흐름이 많았던 예전 회계에 비해 읽어낼 수 있는 게 참으로 적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회계를 아주 간단한 것으로 생각했고,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활동회계도, 주방회계도 처음인 미솔이는 자연스럽게 이런 나와 발맞추어 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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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주맘과 함께 하는 회계 회의에 단순한 회계 서사를 가져갔는데, 거기에서 크게 깨졌다. 날카로운 눈으로 꼼꼼하게 짚어보는 주맘의 시선에 우리의 ‘무성의함’이 걸린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와 미솔이는 몇 달 간의 회계 서사를 보는 동안 주맘의 레이더에 이것저것이 많이도 걸렸다. 회계로 주방의 미시적인 흐름을 읽는 훈련이 계속해서 잘 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 과정에서 미솔이와 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렇다. 둘이 회계를 준비할 때 처음에는 주로 내가 내는 의견을 위주로 가져갔었는데, 그 의견들이 회계 회의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앞뒤가 안 맞다든지, 실상과 다르다든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미솔이도 회계 준비 때 열심히 읽어 와서 활발히 의견을 내곤 했는데, 그걸 가지고 같이 얘기를 해서 가져가도 우리의 회계 서사는 종종 ‘빠꾸’를 받았다. 우리는 회계 준비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인 걸까…?!’ 그렇게 우리의 한숨들 사이로 조용히 ‘불신’이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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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친구에게 어떤 벗이 될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미솔이가 산책을 하자며 말을 걸어왔다. 산책 토크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회계를 같이 준비할 때의 답답함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는 호소를 미솔이 나름대로 어렵게 어렵게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은 생각과 복잡한 감정들이 지나갔다. 분명 동기인 친구와도 이런 일은 많이 겪었는데, 그것과는 좀 차원이 달랐다. 심히 부끄럽기도 하고, 무능력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나를 탓하기만 하는 것 같은 친구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등등.

하지만 복잡한 감정들이 지나가고나니 문제가 좀 명료해졌다. 이 친구에게 이런 감정이 일어나게 한 데에는 내게 큰 책임이 있었다. 내가 이 활동에 힘을 많이 쓰고 적극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게 확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 이제는 정말로 ‘묻어갈 수가 없다’는 게 온몸으로 체감되었다. 내가 어떻게든 배워서 능력을 계발하고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나와 같이 하는 친구들과 서로 믿음이 생기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부건 활동이건 같이 재밌게 만들어갈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계속 배우기를 미뤄왔기 때문에 이제야 부끄럽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탁오 선생님은 『분서』에서 말한다. “친구이면서 스승일 수 있어야 하고, 스승이면서 친구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사우(師友)’다. 이것은 배우는 존재인 우리에게 꼭 필요한 친구론이다. 친구를 스승으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역시 친구에게 스승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친구에게 ‘친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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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어떤 벗이 될 것인가. 벗다운 벗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무늬만 벗인 벗이 될 것인가? 함께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멋진 질문이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나를 받아주는 편한 친구들에게 의탁하며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친구에게 어떤 벗이 될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의 동기들과의 사이에서도 유효하다. 공부를 골골대고 있는 나를 복잡한 심정으로 기다려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벗이 되어주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대차게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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