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雷水解(뇌수해) ䷧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吉, 有攸往, 夙吉.

해괘는 서남쪽이 이로우니 나아갈 필요가 없다. 와서 회복하는 것이 길하니 나아갈 바를 둔다면 서둘러 하는 것이 길하다.

初六, 无咎.

초육효, 허물이 없다.

九二, 田獲三狐, 得黃矢, 貞吉.

구이효, 사냥하여 세 마리 여우를 잡아 누런 화살을 얻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켜서 길하다.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吝.

육삼효, 짐을 져야 할 소인이 수레를 타고 있는 것이라 도적을 불러들이니 올바르더라도 부끄럽게 될 것이다.

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구사효, 너의 엄지발가락을 풀어 버리면 벗이 이르러 이에 진실로 미더우리라.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육오효, 군자만이 오직 풀 수 있어 길하니 소인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상육효, 공이 높은 담장 위에서 매를 쏘아 맞히어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역 글쓰기를 하며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괘가 뇌수해괘였다. 해(解)라는 글자를 보면 자연스레 ‘해방’이나 ‘해답’처럼 풀려나거나 푼다는 의미가 떠오른다. 이 괘를 미뤄둔 것은 괘에 대한 그다지 특별한 인상도 없었고 해방과 연결될 ‘내 인생’의 사례가 얼른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겪은 사건 때문인지 마지막 남은 해괘를 펼쳐들자 예전에는 안 보였던 의미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며 괘사·효사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주역점을 칠 때면 자기의 상황을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딱 맞는 효가 귀신처럼 절묘하게 나오곤 하는데, 나의 마지막 미션인 뇌수해 괘는 마치 주역점처럼 지금 상황의 길라잡이처럼 느껴졌다.

해(解)괘는 절름발이 건(蹇)괘의 뒤에 온다. 절뚝이며 걷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어려운 상황이 극에 달하면 풀릴 일만 남기에, 아니 풀어야 하기에 해괘로 이어진다. 해괘의 괘사에는 서남쪽이 이로우니 나아갈 필요가 없고, 와서 회복하는 것이 길하니 진행해 나아갈 일이 있다면 일찍 하는 것이 길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吉, 有攸往 夙吉) 암호같던 괘사의 내용 중에서 문득 “일찍 하는 것이 길하다”는 내용이 화살처럼 가슴에 박히며 해괘가 ‘화해’의 의미로 다가왔다. 싸운 뒤의 어색함, 관계의 경색은 일찍 풀어서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공동체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갈등을 겪는 건 흔한 일이다. 오히려 서로 마찰이 일어날까봐 자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현대인의 고립과 정신병의 원인으로 꼽히기에, 싸움박질을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바람 잘 날 없는 감이당을 좋아한다. 단, 이것이 남의 얘기인 경우에 한해서… 다른 도반들이 갈등을 겪거나 탈탈 털리는 지적을 당할 때는 ‘다 공부려니’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제 3자로서 허심탄회하게 떠들게 되지만, 내가 그런 갈등의 당사자가 되면 정말 힘들다. 이곳은 사람 피할 곳 없는 공동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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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가장 가까웠던 도반과 틀어지고서 한동안 어색한 관계를 지속했다. 잘못한 것이 내 쪽이었기 때문에 빨리 사과를 했어야 하지만, 상대가 너무 화가 나 있어서 타이밍만 타진하다가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도 너무나 깍듯한 존댓말과 차가운 눈초리에 나는 이미 그 도반의 영역에서 축출당하고 형편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사과고 뭐고 그냥 관계가 이렇게 끝나나 싶었다. 하지만, 감정은 누그러지게 마련, 그렇게 시간이 한 달, 두 달 흘러가면서 서로 웃으며 얘기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사과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어색한 긴장은 계속되었다.

해괘의 괘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일찌감치 사과하고, 빨리 관계를 회복해야지!’라는 말로 보인건 내가 미적거리다가 관계회복을 못 한 것이 찔려서일 것이다. 뇌수해괘는 아래에 곤경을 뜻하는 감괘(坎)가 있고 위에 움직임을 뜻하는 진괘(震)가 있다. 우레가 움직여서 곤경의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아무 행동도 없이 어떻게 그 부자유한 곤란함에서 벗어나겠는가. 용기를 냈다. 날을 잡아 조용한 카페에서 묵은 사과를 하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뇌수해의 상전에서 말하길, 군자는 이 때 과실을 저지른 자를 사면하고 죄가 있는 자를 관대하게 처리한다고 하니(君子以赦過宥罪), 이 절묘함에 웃음이 나올 뿐이다. 나도 군자 도반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바야흐로 ‘해’의 때가 열릴 것인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둘이 대화로 물꼬를 트자, 여태껏 옆에서 얘기를 못했던 도반들이 이제야 끼어들어 한 마디씩 했다. 이 문제로 둘의 관계만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어색함과 불편함을 함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럿이 얘기하니 더 많은 얘기들이 나왔다. 급기야 공부방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 사건의 경과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도반들에게까지 공론화시켜서 얘기해야하나 싶었지만, 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느꼈을 어색한 분위기에 대해서도 해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도반들은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면서 그동안 느꼈던 불편함이나, 우리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비판했을 뿐 아니라, 이 일과는 상관없이 평소 하고 싶었던 다른 문제들도 얘기했다. 화해는 두 사람간의 일이었지만, 공론의 장은 둘의 문제들을 두드려대면서 다른 차원의 해결이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공동체와도 관계 맺고 있고, 이런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근본적인 태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게 그토록 많은 악덕이 있었다니! 그런 나를 받아주고 함께 공부해온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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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근본적인 태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게 그토록 많은 악덕이 있었다니!

해괘의 두 번째 효(九二)에는 사냥을 나가 세 마리의 여우를 잡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강양한 구이가 보기에 유약한 군주가 여러 소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군주의 밝은 지혜와 위엄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여우가 바로 간사하고 사악한 소인이다. 군주를 보좌해야 하는 九二는 그 간사하고 사악한 여우들을 제거해야 한다. 주군을 지켜 밝은 지혜의 주군과 응하여야만 자신의 덕이 쓰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의 습관과 악덕도 세 마리의 여우처럼 내게 달라붙어 있다. 누구나 마음에 군자의 덕성을 지니고 있지만, 누구나 덕이 오롯이 발현되는 건 아니다. 감정과 욕심과 못된 습관들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이가 여우를 제거하면 누런 화살을 얻는다고 한다. 누런 화살이란 ‘중직(中直)’의 도를 말하는데 中은 마음속의 진실무망함을, 直은 올바르고 곧은 태도를 말한다. 마음이 진실무망하다면, 어떤 군더더기를 더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도반들이 얘기해 준 나의 습관들은 말을 쎄게 하거나 놀리거나 돌려서 하는 것 등이었는데, 당시에는 말하는 방법을 고치겠다고 다짐했고 가급적 말을 안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진실무망하다면, 그것이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표현되어도 상대에게는 그 진실함이 전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표현방법과 함께 내 마음이 진실무망했던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여우들이 보인다.

사람이 부딪히는 공동체에서 사람끼리 갈등을 겪는 것도 힘이 든 일이지만, 그것이 공부가 되려면 개인적인 일에 머물지 않고 공론의 장으로 불려나와야 한다. 그게 감이당의 장점이고 감이당에서만 할 수 있는 진짜 공부다. 解의 때에는 하늘과 땅이 풀려서 우레와 비가 일어나서 백 가지 과실과 초목의 싹이 모두 열려’(정의천 주, 주역, 글항아리, 797) 터진다고 한다. 공작관(공부방 이름)회의는 잠깐이었지만 그것은 내게 우당탕 쏟아지는 우레와 비의 세례와도 같았다.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에선 두 사람의 사이의 일도 두 사람만의 일로 놔두지 않는다. 우레와 비처럼 우리를 깨워서 넓은 사냥터로 몰아댄다. 우리는 거기서 사악하고 간사한 여우들과 대면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어디에 가서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오랜 습과 악덕을 없앨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해방이고 자유일 것이다. 그것이 공부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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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습과 악덕을 없앨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해방이고 자유일 것이다. 그것이 공부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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