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남산강학원)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맹자』 / 박경환 옮김 / 홍익 출판사/ p31)

전국시대는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 일상적으로 발발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였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양혜왕과 맹자가 만났다. 양혜왕의 국가, 양나라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패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급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양혜왕은 맹자를 초대했고, 맹자를 만나 곧바로 이렇게 묻는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 앞에서 맹자의 태도는 의연하기 그지없다. 왕의 기분을 맞춰준다거나, 의견에 동조한다거나, 위엄에 주눅 들지 않는다. 맹자는 왕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전개해 나간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맹자는 왕에게 국가를 다스리는 ‘기준’이 너무 이익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양혜왕처럼 이익을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중요한 일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삶의 여러 국면에서 나에게 ‘이익’되는 것들을 선택하며, 그렇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내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맹자는 양혜왕(우리)에게 그 기준을 바꾸라고 한다. 이익이 아닌 인의로! 그렇다면 궁금하다. 맹자는 왜 이익(利)이 아닌 인의(仁義)를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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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맹자는 양혜왕에게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준다. 왕이 이익을 추구하면 그 아래에 대부는 왕의 모습을 본받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또 그 아래에 신하와 백성은 대부의 모습을 본받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다. 그렇게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에는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우리 삶에서도 이렇게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순간을 자주 맞닥뜨린다. 누군가는 ‘자기 시간’만을 제일 중요시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 편안함’만을 제일 중요시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 공부’만을 제일 중요시할 때가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기 것’만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 함께 리듬을 맞춰 활동할 수 없게 된다. 내 것만 소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스텝이 꼬이고, 동선이 어긋난다. 그럴 때 주로 혼란과 갈등이 생긴다. 모두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면 이렇게 ‘함께 하는 삶’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익은 왜 이토록 함께하는 삶을 위태롭게 할까? 그것은 이익의 속성에 있다. ‘이익’은 우리 삶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내가 잘 나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좀 못났으면 좋겠고.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힘들어도 괜찮고. 내가 부자로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망해도 된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우뚝 서고 싶은 마음이 그만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경시하며, 적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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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우리 삶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한 마음은 결국 ‘나’ 자신도 위태롭게 한다.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 몸은 무겁고 우울해진다. 설령, 내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익은 나와 너, 나와 세상을 단절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아무리 많은 이득을 얻어도 삶이 공허하고 외로운 이유다.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삶이 불만족스러워졌는데,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지 못해서 삶이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맹자가 이익에 빠지면 “더 많은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익은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빼앗을 때 오는 쾌감만 있을 뿐이다. 맹자는 이익이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나라에도 이롭지 않다는 걸 왕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의(仁義)를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맹자는 “사람됨이 어진데도(仁) 자기의 어버이를 버리거나, 의로운데도(義) 자기의 임금을 경시하는 자는”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이익이 ‘나’를 우선시했다면, 인의는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를 앞세우기보다 나와 어버이의 관계, 나와 임금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버이와 임금을 함부로 버리거나 경시할 수 없게 된다. ‘관계’가 중심일 때 누군가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오직 인의로써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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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인의로써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인의(仁義)를 행한다. 내게 바쁜 일이 있더라도 함께 하는 친구의 아픔을 보면 외면하지 않고, 내가 피곤하더라도 함께 활동하는 친구를 생각해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도 하고, 멍하게 있다가도 함께 공부하는 친구를 위해 그 친구의 글을 꼼꼼히 읽으려 하는 게 그렇다. 그리고 놀고 싶어 하다가도 세계에 코로나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인의는 사람과, 세상과 연결되려는 움직임이다. 이렇게 우리는 무언가와 연결될 때 충만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인의(仁義)는 우리가 혼자서는 절대 쓸 수 없었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혼자서는 1p도 쓰지 못할 글을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덕분에’ 더 힘을 줘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혼자서는 늦잠 자고 있을 시간에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고, 혼자서는 무대에 설 엄두도 못 냈을 것을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덕분에’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마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봤을 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은 당장에는 무언가를 얻는 것 같아도 크게 보면 자기를 왜소하게 만드는 길이다. 결국에는 자기 삶에 불이익을 발생시킨다. 반대로 인의의 길은 자신에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다. 인의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큰 이익을 준다. 맹자가 왕에게 이익(利)이 아닌 인의(仁義)를 말한 것도 왕이 큰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점을 밝혀주었다. 맹자는 왕이 이익을 추구한다고 부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왕에게 진정한 이익, 더 큰 이익(인의)을 탐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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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의 길은 자신에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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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
소민
1 month ago

문빈의 글을 읽다 보니 맹자의 (어렵게만 느껴지던) ‘인의’의 개념이 훨씬 쉽게 다가오네요~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 만을 추구하는 세계는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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