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남산강학원)

제나라 선왕은 전국을 통일시켜 천하의 왕이 되고 싶어 했다. 맹자는 제선왕이 천하를 통일할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자질’이란 것은 강력한 리더십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탁월한 용기와 지혜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맹자는 제선왕의 ‘자질’을 ‘소 이야기’에서 찾았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제선왕은 대청 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소가 희생제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은 소가 벌벌 떨면서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하에게 소를 놓아주라는 명령을 한다.

맹자는 제선왕이 소를 풀어주었을 때의 그 ‘마음’에 주목했다. ‘차마 소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제선왕을 천하의 왕으로 만들어 줄 키(key)라는 것이다. 맹자는 제선왕에게 천하의 왕이 되는 조건으로 막대한 재산, 강력한 군사력, 드넓은 땅 따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죽음 앞에 선 동물을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어떤 것이기에 제선왕을 천하의 왕으로 만들어준다는 걸까?

맹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제선왕이 소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불쌍하게 끌려가는 소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측은지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으로부터 나온 왕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자신에게 금전적인 이익이 돌아오기 때문도 아니었다. 소의 불행을 외면하는 일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는 것이기에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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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 삶에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는 연구실에서 나와 5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공부해오던 선생님에게 슬픈 일이 생겼다. 10년 넘게 자식처럼 사랑하며 돌보던 고양이를 떠나보내는 일을 겪은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도반들은 선생님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꼭 껴안아 주기도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다. 이 마음은 우리가 학습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것도 아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마음의 본성으로 본래 존재해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이 마음(측은지심)은 도대체 어떻게 통일된 천하의 왕을 만들어준다는 걸까?

은혜를 미루어 나아가면 사해를 보존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나아가지 않으면 처자조차도 보존할 수 없습니다. 옛 성현들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던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행위를 잘 미루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에게까지 미칠 정도로 충분하면서도 그 공적이 백성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 박경환 옮김 / 홍익 출판사/ p50)

맹자는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아가면 사해, 즉 천하를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직접적인 관계에서 발견한 측은지심을 더 넓은 관계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에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죄없이 끌려가는 소의 모습을 측은하게 여긴 내 마음을 단서삼아 또 다른 누군가는 그와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가다 보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천하의 백성을 보존할 수 있다. 천하의 백성을 보존하는 자가 결국에는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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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반대로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맹자는 “처자조차도 보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와 가까운 관계, 직접적인 관계조차도 지킬 수 없어진다는 말이다. 어느 때에 측은지심을 느껴도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 욕심에 가려 측은지심이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을 보고도 무심해지는 것은 욕심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나의 명예, 나의 성공, 나의 승리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쯤은 나와 상관없다고 여긴다. 그렇게 우리 삶이 욕심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가깝고, 직접적인 관계에서조차 무감해진다. 이 길은 함께 하는 삶을 분열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측은지심을 미루어 나아가는 태도는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인정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청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청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청년…. 등. 나는 이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예전에 나도 똑같은 괴로움을 겪었던 게 떠오르면서 동시에 안타깝다는 마음, 측은지심이 올라온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의 괴로움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정말 괴로울 텐데 어떡하나….’ 하는 답답한 마음과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도 올라온다.

맹자는 그 마음을 붙잡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을 보며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잘 간직하여 연구실 안에 있는 다른 청년에게, 혹은 연구실에 아직 접속하지 않은 다른 청년들에게도 적용해보라는 것이다. 청용 세미나를 들어갈 때, 강감찬TV 활동을 할 때 청년들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청용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나 활동을 임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 때 그것 자체로 우리 마음은 기쁨과 충만함으로 가득해진다. 측은지심은 우리 마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삶에서 측은지심을 계속 밀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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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 때 그것 자체로 우리 마음은 기쁨과 충만함을 느낀다. 측은지심은 우리 마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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