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살림당)

연구실의 진풍경을 떠올려보면, 빼놓을 수 없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장자방+감이당’ 공간이 합체되어 진행되는 북적북적한 연말 학술제, 두세 시간이면 끝나버리는 100포기 김장(wow!),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의 책 출간을 축하드리는 시끌벅적한 북파티다! 재치 있는 낭송 공연&명품 랩 공연에, 가족 오락관을 방불케 하는 퀴즈쇼, 저자 강연과 사인회까지! 여기에 특식과 간식들까지 더해져, 축제가 따로 없었다.

코로나가 바꾼 연구실 일상 중 하나, 이런 ‘일상의 축제’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 축제는 단순히 놀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공부장(場)’이 되어주었었다. 평소에 같이 활동해본 적 없는 친구와 짝을 이루어 낭송을 짜보기도 하고, 북토크를 준비해보기도 하고, 친구들이 열어준 북토크 장에 열심히 참여하는 참여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도우미가 되기도 하는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이었다. 나를 포함한 살림당 친구들은 이런 북파티를 경험해봤지만, 코로나 이후 연구실에 접속한 ‘공자 영성구(이하 청탐)’와 ‘공자 맹정진(이하 청용)’ 친구들은 ‘북파티’라는 일상의 축제를, 하나의 공부장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더욱이 ‘청탐’과 ‘청용’친구들의 접점이 없었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독자적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공동체 식탁도 칸막이로 가로막혀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일도 줄고, 북파티 같은 활동도 없으니 서로 섞일 일이 없었다. 남산강학원이 명색이 ‘청년쿵푸백수들의 왁자한 공동체’인데, 청탐·청용 친구들이 이대로 내외하게 놔둘 순 없었다. 마침! 신간도 나왔겠다, 친구들에게도 이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판을 깔아보자!”

mason-kimbarovsky-X_d7m2r70bA-unsplash
남산강학원이 명색이 ‘청년쿵푸백수들의 왁자한 공동체’인데, 청탐·청용 친구들이 이대로 내외하게 놔둘 순 없었다.

‘온라인 북토크’를 열어줌(zoom)

  물론, 코로나 이전처럼 모두가 한곳에 모여, 북적북적하게 북파티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열린 온라인 세상이 있었다. 먼 곳의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든 접속을 가능하게 해준 ‘줌(zoom)’! 작년 연말에는 유튜브 라이브로 북토크를 진행해봤으니, 이번에는 ‘줌(zoom)’이라는 다른 형태로도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로만 소통이 가능한 ‘유튜브(youtube)’와는 달리,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온라인 상의 현장감은 더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온라인 북토크 경험도 있고, 올해 리더십 훈련도 받고 있는 ‘청탐’ 친구들 중 지원자를 받아 ‘리더그룹’을 꾸렸다. 신간인 『세미나책』을 읽고 감명받은 ‘승현’과 작년 온라인 북토크를 준비했던 경험이 좋았던 ‘주희’가 지원을 했다. 리더십 훈련을 받고 있는 친구들인 만큼, 이 친구들이 ‘리더’가 되어 활동을 구성하고, 장을 이끌어갈 수 있게 하고, 우리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려 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조력자’가 되는 건 처음이었다.(^^) 북토크를 직접 꾸려보기만 했지, 누군가의 활동에 ‘중심’이 되어주면서, 직접 활동을 하는 친구들 옆에서 ‘조력자’를 해본 적은 없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공부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친구들이 스스로 일의 차서를 잡을 수 있도록, 북토크 전체 계획을 짜서 만나기로 했다. ‘전체적인 계획’을 잡게 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좌충우돌 겪어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겪게 되든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공부는 과정을 겪어가는 것이니까!

charles-deluvio-bXqOMf5tvDk-unsplash
먼 곳의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든 접속을 가능하게 해준 ‘줌(zoom)’! 우리에게도 새로운 공부의 장이 열린 것이다.

‘프레임’이 있어야 ‘잘’ 겪을 수 있다!

  주희와 승현이가 짜온 ‘전체 북토크 일정’을 보는 날이었다. 일정에는 회의는 언제 할지, 대본은 언제 짤지 등 ‘자신’들의 일정밖에 없었다. 저자 선생님과 일정은 언제 어떻게 공유할지, 신청 댓글을 달고 계시는 학인분들께는 언제 줌링크를 보내드릴지, 온라인 환경 조성은 어떻게 할지 등 다른 사람과 연결된 부분은 고민되지 않고 있었다.

  당일 진행되는 ‘북토크 프로그램 순서’에도 진행자인 친구들과 저자 선생님뿐이었다. 친구들이 세미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과 저자 선생님의 강의 시간, 이렇게 두 파트 뿐! 북토크 당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빠져있었다. 참여하는 사람은 멀뚱멀뚱 화면만을 바라봐야 한다니!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줌(zoom)을 활용하면 좋을 텐데……! 공간을 가득 채울 ‘사람’들에게 마음을 써야 할 텐데……!

  실제로 친구들의 조력자로 활동해보니, ‘북토크 활동’을 해보지 않은 친구들이 북토크에 연결된 인연들을 살피고, 그에 따라 차서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상해보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 ‘상상’이 이 친구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이었던 것이다.

  ‘알아서, 뭐든 겪겠지~’라는 마음으로 너무 열어두고 시작했던 것, 그것이 문제였다. 북토크에서 어떤 걸 훈련해보면 좋을지, 어떤 것들을 어떤 중심 위에서 고민해야 하는지, 큰 방향성에 대한 제안 없이 시작하니, 건건히 개입하는 방식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친구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건의 의미를 설정하고 겪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사건을 맞닥뜨려버리는 것’은 완전 다르다. 물론 모든 걸 이렇게 겪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의미화’가 되었을 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든지 대처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뭘 겪는지도 모르고 두들겨 맞듯 겪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이거 하나는 배워가야지!’, ‘이런 걸 훈련해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겪는 것은, 완전 다른 ‘체험’을 만들어낸다.

  북토크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책과 독자의 첫 만남의 장을 여는 일이다. 게다가 이 책은 우리와 어떤 인연을 가진 선생님의 소중한 결과물이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의 우여곡절이 담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북토크’는 행사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장’이 된다. 또 이런 책을 처음 만난 독자로서, 다른 독자들에게 우리가 느낀 즐거움을 선물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리더는 이런 북토크 장의 바탕을 만드는 사람이고, 이 시공간과 연결된 인연들을 읽어내고, 그 인연들에 감사한 마음을 ‘활동’이라는 장치를 통해 선물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활동 초반에 나누었다면, 이 토대 위에서 고민도 해보고, 자신들 나름의 ‘북토크’를 정의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michal-franczak-PkDRmWEVpL4-unsplash (1)
리더는 이런 북토크 장의 바탕을 만드는 사람이고, 이 시공간과 연결된 인연들을 읽어내고, 그 인연들에 감사한 마음을 ‘활동’이라는 장치를 통해 선물하는 사람이다.

첫 마음 쓰기

  지난달부터 서사발표를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내가 ‘처음’에 약하다는 거다. 첫 마음을 셋팅하는 일, 활동을 시작할 때 마음을 쓰는 일, 새로 연구실에 온 친구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 등등. 정확히 말하면, 첫 마음을 정성스럽게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겪어가면서 배운다’라고 생각했고(실제로 그것이 가능했고), 다른 친구들도 그러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음에는 엄청난 폭력성과 오만이 깃들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겪으면 돼!’라는 상대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없는 폭력적인 마음, 그리고 내가 무수한 인연들의 도움 없이 그냥 ‘겪어가면서 배웠다’라는 오만한 마음이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활동해나갈 때, 선생님들께 받은 선물들이 참 많다.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부터 더듬거리고 있는 지금까지, 줄곧 받고 있다. 이런 인연 조건 덕분에 활동하고, 또 그 활동에서 배워나갈 수 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잊는 것)은 활동의 인연들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떻게 훈련받고, 공부해왔는지, 그 ‘마음’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친구들의 ‘조력자’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 친구들이 잘 겪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일. 그 배치를 만드는 것에 정성을 쏟는 것. 이것이 ‘조력자’로서 친구들에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친구들이 잘 겪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일. 이것이 ‘조력자’로서 친구들에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4.7 3 votes
Article Rating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