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감이당)

地天泰(지천태) ䷊

泰 小往大來 吉亨.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 吉.

초구효, 띠풀을 뿌리째 뽑음이라. 그 동류와 무리지어 나아가면 길하다.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구이효, 거친 것을 포용하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는 과감함을 쓰며 멀리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고 사사로운 자신의 무리를 버리면 중도를 행하는 것에 맞게 된다.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 无咎 勿恤 其孚 于食 有福.

구삼효, 평평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어렵게 여기고 올바름을 지키면 허물이 없고 근심하지 않아도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벼슬함에 복이 있으리라.

六四 翩翩 不富以其隣 不戒以孚.

육사효, 새가 가볍게 날 듯이 아래로 내려가 부유하지 않은데도 그 이웃과 함께하니 경계하지 않고 진실하게 믿는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 元吉.

육오효,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냄이니 복을 얻고 크게 좋고 길하리라.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상구효, 성이 무너져 해자로 돌아간다. 군사를 쓰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에서 명을 내리니, 올바르더라도 부끄럽다.

요즘 부쩍 늘어난 환경과 생태 문제 관련 뉴스를 접하면 어찌해야 하나 하는 한숨과 막막함이 올라오곤 한다. 인간의 편리와 욕망을 위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자연은 이제 환경과 기후재앙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멀리 바라볼 것도 없다. 당장 나 자신을 보면 다리가 좀 불편하다는 핑계로 차를 타고, 무더위에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회용 컵을 쓰고, 에어컨 리모컨을 켜는데 원전과 폐기물의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뿐인가, 밖에서 사 온 식재료와 생필품들은 온통 크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지구 온난화와 사막화, 대기 오염과 미세먼지의 주범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풍요와 편리 속에 깊이 똬리를 튼 탐욕과 무관심.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우리의 이런 욕심과 무지가 자연과의 심각한 불통과 단절을 낳은 결과일 것이다. 주역은 이렇게 막히고 소통되지 못한 채 어려움을 마주하는 상황을 비(否)괘에서 보여준다.

이와 정반대인 상황도 있다. 하늘과 땅이 교류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며 이 조화 속에 만물이 생성되는 안정된 상황, 바로 태(泰)괘다. 태괘는 얼핏 보면 좀 의아하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이 아래에 있고 땅을 나타내는 곤(坤)이 위에 있으니 위아래가 뒤바뀐 모양새다. 그러나 이게 핵심이다. 만약 비괘처럼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다면 천지의 기운이 제자리에 짱 박혀 소통될 일이 없지만, 태괘는 음기가 올라가고 양기가 내려오며 서로 통한다. 즉, 서로가 교류하며 만물의 생장을 일구고 아래와 위가 교감함으로써 뜻을 함께한다. 이런 소통과 교감으로부터 안정을 이룬 것이 태(泰)이다.

우리가 처한 이 비(否)같기만 한 상황이 태(泰)의 상태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긴 할까? 나는 오래전에 만난, 내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킨 한 중국 여성을 떠올린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에 남편과 둘이 맨손으로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의 기적을 일구었다는 여성.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20여 년간 어림잡아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두툼한 큰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그러나 그녀의 단단한 얼굴엔 안정과 편안함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자신의 힘으로 일군 소통되고 안정된 태의 상황을 살고 있는 자의 여유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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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한 이 비(否)같기만 한 상황이 태(泰)의 상태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긴 할까?

태괘에는 세 개의 양효가 아래에, 세 개의 음효가 위에 놓여 있다. 이 중에서도 육사는 마치 새가 날아 내려가듯, 위의 세 음효를 선도해 아래에 있는 양효와 교감하는 모습이다. 상전은 이렇게 육사가 내려와 양을 찾는 것을 두고 육사가 음효이기에 허해서 양처럼 꽉 차지 않았다는 표현을 쓰는데 (翩翩不富 皆失實也) 이것은 자신을 비워 자만하지 않고 겸허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쑨잉퀘이 양이밍,「주역」, 현암사, 196쪽)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콘트롤해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상대와의 소통과 감응을 통해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이웃과 함께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마음의 경계를 두지 않는 (不富以其隣 不戒以孚) 모습이다.

이 중국 여성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엔 태괘의 육사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 날 딸을 사막 한복판으로 데려가 이제 여기에서 결혼해 살라며 그녀를 두고 떠난다. 남편 될 사람 외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끝 간데없이 외로운 모래사막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그러나 그녀는 그 가혹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버려진 땅을 바꾸어가며 사막의 모래와 거센 바람을 이웃으로 삼는다. (翩翩 不富以其隣)

그녀가 결혼해 살게 된 곳은 중국의 4대 사막 중 하나인 내몽골의 마오우쑤 사막이었다. 오래전엔 비옥하고 푸르른 초원이었다고 하나 무차별한 벌목과 과도한 양 떼의 사육, 그리고 기온 상승으로 초원은 황무지로 변하고 나중엔 완전히 사막화되고 말았다. 자연의 재앙으로 버려지고 고립된 땅.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남편과 같이 어린 묘목을 구해다 심기 시작한다. 나무가 자라면 채소도 자랄 수 있을 테고 채소가 자라면 인간도 살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며. 그렇지만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모래 속에 어린 묘목을 심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따금씩 무섭게 덮쳐오는 모래 폭풍은 그나마 살려놓은 묘목들도 잔인하게 꺾어버리고 말았으니. 하여 그녀는 처음엔 오기가 가득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에 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로 모래사막과 바람의 생리를 살피며 파악하게 되고 자식처럼 소중한 나무들을 사막에서 귀한 생명으로 자라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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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콘트롤해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상대와의 소통과 감응을 통해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다.

주어진 자연과 ‘맞서 싸우고’ 그렇게 ‘정복한’ 자연을 마음대로 ‘취하고 누린다’는 건 근대화된 인간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사유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생태 문제와 고립된 땅에서 절망 속에 그녀가 처음 마주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 생태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단지 필요한 것은 일방적으로 소유하고 우리에게 당장 불편한 것은 제거하려 했을 뿐. 거기서 착복한 것을 풍요의 이름으로 마음껏 누리고 그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막에 생명의 씨앗을 건네며 그녀 나름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자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서로를 따르며 진실한 뜻을 합치는 육사와 그의 이웃들처럼 사막과 모래바람은 그녀의 편에 선다.

그녀는 하늘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고 모래의 상태를 세심하게 판별해서 생존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곳에 나무를 심었다.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자연의 뜻을 살피자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에 오만을 부리며 무모하게 심었던 묘목들은 전멸했으나 이후에 그녀가 겸허하게 마음을 비우고 세심하게 조건을 살펴 심은 묘목들은 80% 이상이 살아남았다. (이미애, 「사막에 숲이 있다」, 서해문집, 85쪽) 마치 그녀와 모래와 바람 사이에 경계가 없어지고 바라는 뜻이 같아진 것 (不戒以孚 中心願也)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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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 생태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단지 필요한 것은 일방적으로 소유하고 우리에게 당장 불편한 것은 제거하려 했을 뿐.

그녀는 나무만 길러낸 것이 아니라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손수 집을 짓고, 나중엔 멀리 있는 시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산다. 뿐만 아니라 외지와 연결하는 길을 내고 우물을 끌어 올려 수로를 만들었다. 절망과 한탄뿐이었던 고립무원의 사막이 이제는 사람들이 오가고 외부와 소통하는 생태 숲의 메카로 거듭난 것이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모래바람을 맞서 싸우는 상대로 보던 마음속의 오만을 버렸다고 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예의를 갖추되 절대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찾아내고 공존하는 길을 찾아내자 (같은 책 186쪽) 그녀에겐 태괘가 일궈낸 여유와 안정이 생겼다. 참담한 재앙과도 같이 버려진 땅이 20여 년을 거쳐 푸르른 숲으로 탈바꿈된 기적에는 주어진 상황에 자신을 낮추며 소통과 교류를 일으킨 지혜가 있었다.

태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내가 풍요와 편리의 이름으로 누리는 것들은 자연과의 소통 속에 뜻을 함께한 것들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취한 고립되고 단절된 결과물들이다.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누리겠다는 나 자신의 오만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결국 고립된 사막일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불부(不富)한 사막 한복판에서 겸허하게 소통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생태의 순환을 이루어낸 그녀를 떠올리며, 환경과 생태 앞에 마주한 고립과 불통에서 어떻게 연결하고 소통을 일으킬지 이제야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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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예의를 갖추되 절대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찾아내고 공존하는 길을 찾아내자 그녀에겐 태괘가 일궈낸 여유와 안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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