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감이당)

나에게 미신이란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말하는 신천지, 구원파 등등 또는 토템을 숭배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여겼다. 나는 종교에 빠져서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신을 잘못 믿으면 이상한 쪽으로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종교, 제도화된 종교여야 안전하고 미신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과연 제도화된 종교의 신을 믿는다고 미신이 아닐까? 미신과 신앙의 차이는 뭘까? 미신이란 무엇이고 그런 미신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내 아이가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자녀를 둔 엄마들이 가장 간절할 때가 아이가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아마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일 거다. 그래서인지 종교마다 수능기도가 있다. 나는 큰아이 수능을 앞두고 성당뿐만 아니라 가끔 절에 가서도 기도를 했다. 어느 절에는 신도들에게만 알려진 수능기도로 영험한 장소도 있었다. 수능기도 모임에서 고2 학부모인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아이가 고3 때 기도를 시작하면 늦고 적어도 고2 때는 시작해야 해서 왔다고 했다. 수능 당일 기도 중에 엄마가 점심 먹고 졸면 아이도 그 시간에 졸려서 시험을 망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선배들의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수능기도를 시작했다.

수능을 앞둔 엄마들이 모여서 자기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도록 길게는 100일 짧게는 40일간 기도를 한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 보니 아이가 공부를 해야 시험을 잘 보는 거지 엄마가 기도한다고 잘 볼까? 우리 아이와 주변의 몇몇 아이만 시험을 잘 보면 나머지 아이들은 못 봐도 되는 건가? 하며 기도를 하면서도 헷갈렸다. 나는 나중에는 아이가 시험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꿨다. 엄마들끼리도 수능 기도는 엄마들이 기도하느라 지쳐 아이에게 잔소리할 힘이 없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기도해서 아이가 좋은 대학 갔다는 사례를 들으면 부러웠다. 아이가 시험을 못 보면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일 것 같아 찜찜했다. 그래서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열심히 빌었다. 나는 기도도 거의 매일 했고, 수능 당일에 기도하면서 졸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본인이 긴장한 탓에 수능을 망쳐버렸다. 아이는 수능 결과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신이 내 아이의 수능에 관여하지 않음을, 나의 기도는 고작 내 욕심을 비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이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를 공부하며 내 신앙이 일정부분 미신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도록 기도하는 것과 토템을 숭배하며 자기 욕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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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도는 고작 내 욕심을 비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이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미신, 인간 중심주의의 산물

사람들은 모두 사물의 원인을 모르는 채로 태어난다.., 인간은 모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욕망을 의식하고 있다…이것으로부터 첫째로, 인간은 자신의 의욕과 욕망을 의식하고는 있으나, 자신들로 하여금 원하고 욕구하도록 결정한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에…자신들을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둘째로, 인간은 항상 목적을 위해서 즉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1부 부록, 93p)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생명의 원인을 모르고 태어난다. 자신이 어떤 과정 속에서 부모를 만나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또한,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고, 자기가 좋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가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안다. 이러한 이유로 ‘왜’ 원하는지는 몰라도 무엇을 하든 그것이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하기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욕구가 어떤 원인 즉 어떤 메커니즘 아래서 생겨났는지는 모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왜 원하는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방해하는 것만 없으면 자신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명문대를 왜 보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학생이니까 당연히 공부해서 명문대 가야지, 가서 좋은 곳에 취직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다. 아이와 내가 왜 명문대를 원하게 되었는지, 그것을 원하도록 하는 원인은 알 수 없으니 그저 명문대가 좋다, 아이에게 이익이 된다는 의식만 있었다. 자본주의라는 메카니즘 아래서 그것을 원하는 것인데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에 그냥 내가 자유롭게 원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명문대를 원하니 남들도 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문대 문은 좁으니 기도를 해서라도 내 아이가 시험을 잘 봐야 했다. 인간은 원인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자기 이익을 위주로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사고를 한다.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한다.

그들 각자는 신이 자기를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총애하고, 자기의 맹목적 욕망과 한없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체 자연을 지휘하도록, 여러 가지의 신을 숭배하는 방식을 자신의 성정에 근거하여 생각해냈다. 그에 따라 이 편견은 미신으로 변질되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1부, 부록 94p)

그런 인간 중심적 사고 속에서 모든 자연물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익을 위해 행위 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위 할 거라고 상상했다. 인간이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대가를 바라는 것처럼 신도 인간을 위해 만물을 창조했으니 인간으로부터 숭배받기를 원한다고 상상했다. 인간은 자연을 지휘하는 신이 자기를 더 사랑하고 욕심을 채워주길, 더 많은 이익을 주길 바랐다. 그래서 신을 자기에게 인도하려고 다양한 방식의 숭배를 만들어냈다. 원인에 대한 무지, 인간 중심적인 사고, 자연을 창조하고 지휘하는 신이 결합해 자신을 위해 신이 전체 자연을 지휘해주길 바라는 편견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편견은 미신으로 변질되었다. 미신은 이런 편견에서 시작되었다.

미신은 맹목적인 미혹이다. 신을 숭배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줄 거라 믿는 게 미신이다. 어떤 것이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믿는다면 미신이다. 내가 수능 100일 기도를 해서 신이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길 바라는 것도 미신이다. 강력한 신이 내가 힘든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줄 거라는 마음이 미신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일명 기도발이 쎄다는 성직자를 찾고, 절을 가도 기도가 잘 통한다는 곳을 찾아다닌다. 내가 겪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어떤 편견들이 있는지를 알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행이든 행복이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신의 뜻이라고 믿으며 미신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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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에 대한 무지, 인간 중심적인 사고, 자연을 창조하고 지휘하는 신이 결합해 자신을 위해 신이 전체 자연을 지휘해주길 바라는 편견이 만들어졌다.

두려움, 미신의 제물

사람들이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거나, 혹은 운 좋게도 항상 행운만을 누리게 된다면, 그들은 결코 미신의 제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신학 정치론』 14p 비홍출판사)

스피노자의 말처럼 사람들이 자기 주위의 모든 상황을 다 알거나, 불행은 피하고 항상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된다면,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다 알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울퉁불퉁해서 행운만 지속될 수도 없다. 그런데도 행운은 누리고 싶고 불행은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도 나에게는 안 일어나길 바라는 욕심. 불행이나 행운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는 삶의 조건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탐욕으로 갈 수밖에 없다. 탐욕은 자기를 지켜주고 행운을 누리게 해줄 존재를 찾게 한다.

이런 마음에는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두려움은 미신을 발생시키고 미신을 강화한다. 두려움에 빠지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강력하기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무언가를 믿고자 한다. 기도나 굿을 해서 불행을 없앨 수 있다면 의지하고 싶어진다. 기도를 통해 우연히 불행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거나, 주변에서 영험한 경험을 한 것을 보면 더 혹한다. 그것으로 한 두 번은 두려움이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삶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은 계속된다. 그때마다 무언가에 의지하면 스스로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더욱 멀어진다. 더 강력한 의지처를 찾게 된다. 두려움의 원인을 보지 않는다면 미신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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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은 계속된다. 그때마다 무언가에 의지하면 스스로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더욱 멀어진다.

나는 아이가 수능에 실패해서 명문대에 못 가는 것을 불행이라 여겼다. 재수를 한다고 해서 대학을 잘 간다는 보장도 없기에 더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그런 불행은 피하고 신의 능력을 이용해서라도 아이가 시험을 잘 보길 바랐다. 공부를 안 했는데도 운이 좋아 실력보다 높은 대학에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했다. 만일 내 기도대로 아이가 수능을 잘 봐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일들에서도 불행을 피하려고 더 신에게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아이가 수능을 잘 봤다면 기도 때문이 아니라 시험문제가 공부한 데서 나왔거나, 그날 컨디션이 좋았거나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이가 대학에 떨어진 게 불행인가? 아이는 오히려 재수를 통해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었고, 철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행운 아닌가?

삶의 조건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신이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내려놓기도 힘들다. 왜? 불행은 피하고 싶으니까. 불행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이라는 말 자체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인데 왜 헛된 것을 바라는 것일까? ‘신학적 환상’이다. 신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가 신을 상상해내고 그런 신을 현실화시키고 그런 신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다 상상이다. 이런 상상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맹목을 바탕으로 한다. 맹목은 미신을 낳을 뿐이다. 미신은 삶의 조건을 이해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그냥 믿게 만든다.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질문할 힘을 잃게 만든다. 두려움을 제물로 해서 더 미신에 빠지게 될 뿐이다.

내가 미신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신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 속에서 맹목이 아닌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배치를 바꿔나가는 것. 그것이 내 신앙이 영성이 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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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 속에서 맹목이 아닌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배치를 바꿔나가는 것. 그것이 내 신앙이 영성이 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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