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아랍지역과 민족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에 와서 참 낯설게 느끼는 것이 사람들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단일한 정체성은 쉽게 배타성이 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그걸 불편해하고 즉각 느낀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쭉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나라와 민족이라는 단어가 비슷한 의미로 쓰여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이런 특징은 다른 나라 사람이 섞여 들어왔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들을 ‘다르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이것과 정 반대의 나라가 미국이다.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온 인종이 뒤죽박죽 섞여서 살아간다. 그래서 사회문제로 인종차별이 항상 골치인데, 다른 것들이 뒤섞여 살아가다 보니 서로의 다름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사회문제가 된다. 이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다른 존재와 함께 사는 법을 사회적으로 터득해나가는 길이 된다.

아랍민족은 어떨까? 흔히 한 민족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커다란 땅덩이에 많은 민족들이 지나가고 점령하고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산다. 그래서 종교와 언어로 정체성을 구분하지, 무슨 민족이니 하는 개념은 여기선 모두 의미가 없다. 이슬람을 믿고 아랍어를 쓰면 아랍민족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금 튀게, 또는 독보적으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외치고 나선 나라가 있으니, 바로 ‘이란’이다. Iran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20세기 초, 근대화를 서두르다보니 당시 가장 잘나가던 독일과 민족적 정체성의 동질감을 형성하려고 같은 아리아인이라는 걸 부각시킨 것이다. 또, 다른 아랍민족들 사이에서 페르시아만의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35년, 페르시아라는 국호가 이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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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원의 유목민족이던 아리아인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온 것을 따져간다면 기원전 4000년 까지 올라가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와 여기저기 모여 살던 아리아인은 기원전 8세기경에 큰 왕국을 이루며 옆의 강대국과 전쟁을 할 정도로 커졌다. 아리아인들도 여러 부족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메데족과 페르시아족이 있었고, 메데족은 페르시아보다 먼저 왕국을 이뤘던 아리아민족이다. 그들이 현재 탄압받는 쿠르드족의 조상이라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북쪽 소아시아에서 내려온 캅카스 어족과 남쪽에서 올라온 셈족이 일궈낸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나라들을 모두 점령하고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이룩했다. 모두 기원전의 일이다. 이후에 남쪽 사막의 아라비아족이 중동지역을 제패하여 오랜 시간 이슬람제국을 이어갔다. 몇 천 년 동안 이 큰 땅덩이에 함께 섞여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민족의 개념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굉장히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왜냐면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조상과 핏줄을 이어온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일이 없고, 그것 때문에 싸울 일이 없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왔고 다른 조상을 기리는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구성한다면 그것이 그들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차이는 함께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뒤섞여서 희석되기 마련이지만,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는 차이를 키워서 대립한다.

중동은 거의 다 이슬람을 믿지만, 언제나 차이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이슬람 안에서도 분파를 만들어 대립한다. 그 많은 분쟁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으니, 종교 분파는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는 축이라 할 만 하다. 그리고 아랍어 공용의 시대를 천 년이 넘게 지나오면서도 고대 페르시아어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페르시아는 홀로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기치로 민족적 정체성을 내세운 것이다.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공동체

이들이 섞여 사는 모습은 어떨까? 『천일야화』에는 자세하거나 복잡한 갈등은 나오질 않는다. 오히려 이슬람만이 예찬되고 있어서 너무 단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이 이슬람만 믿었던 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8세기에 이슬람이 쳐들어오기 전의 이야기들도 다수 남아 있다. 서로 다른 종족(민족)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 증오와 혐오가 드러나는 이야기들을 보면 이슬람이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와 팽팽한 기싸움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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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이야기>에서 정령의 안내로 어부는 신기한 물고기를 하루에 네 마리씩 잡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연못에는 흰색,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의 물고기가 있었다. 그는 각각 다른 색깔의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서 왕께 바쳤고, 물고기들에게 뭔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한 왕이 그 연못을 찾아 나섰다. 왕의 활약으로 그 연못과 근처의 성에 걸려있던 마법이 풀렸는데, 그 연못의 색색깔의 물고기들은 각각 흰색은 이슬람교도, 빨간색은 불의 숭배자들인 페르시아인, 파란색은 기독교도, 그리고 노란색은 유대교도”(천일야화1, 142)인 백성들이었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던 네 개의 산은 네 종족이 함께 살고 있던 왕국을 상징한다.

조로아스터교만 그들의 비밀의식 때문에 이슬람교도로부터 배척받았을 뿐, 나머지 종교는 서로 평범한 이웃으로 살았다. <꼽추이야기>에는 그들이 이웃으로서 아주 가깝게 사는 모습이 나온다. 한 이슬람교도 재봉사의 집에서 어떤 꼽추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죽었다. 재봉사는 무서워서 유대인 의사의 집에 이 시체를 환자로 꾸며 갖다 놓았다. 유대인 의사는 자기가 죽인 줄 알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이슬람교도 식료품상인의 집 굴뚝으로 꼽추의 시체를 밀어넣었다. 식료품상인은 길에다 꼽추의 시체를 버렸는데 기독교도 일용품 상인이 우연히 길을 가다가 이 시체를 발로 차고 때려서 꼼짝없이 꼽추의 살해범으로 붙잡힌다. 맨 마지막 기독교도 상인이 범인으로 몰려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이슬람교도 상인이 달려오며 멈추시오! 살인을 범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올시다 라며 소리쳤다. 그는 한 명의 이슬람교도를 죽인 것만으로도 저의 죄는 큽니다. 거기에 죄 없는 기독교도까지 죽여서 평생 제 양심을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2535)라며 자백을 했다. 뒤 이어 의사와 재봉사도 그렇게 릴레이 자백을 하여 네 명의 살인범이 왕 앞에 불려가게 된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인물들이 믿는 종교가 소개될 필요가 없는데도 직업과 함께 종교가 계속 따라붙는다. 자기가 살인범이 되었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힌 평범한 백성들이 이웃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가 결국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하는 데에 그들의 종교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치 그들의 종교가 스토리의 핵심이라도 될 것처럼 종교를 꼬리표처럼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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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를 죄 없는 기독교도, 죄 없는 이슬람교도, 죄 없는 유대교도라고 부르며 차라리 자기가 교수형 당하는 길을 택한다. 만일 그들의 종교가 서로를 배척했다면 다른 종교인은 자기가 믿는 신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벗어난 죄인이 된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이슬람교도의 죽음에 사후에 심판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알라를 믿는 사람도 자기가 죽인 기독교도 때문에 사후 심판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그들은 알고 있다. 자기들의 신이 모두의 죽음에 대해 죄를 물을 것임을. 아니, 종교는 형식일 뿐, 그들의 양심은 모든 사람의 생명에 연민과 책임을 느낀다.

중동지역은 종교분쟁이 끊이질 않아서, 나는 마치 종교 때문에 그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테러를 자행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놈의 종교가 뭐라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은 넓은 중동지역에서 수많은 종교가 그저 이웃으로 섞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슬람이나 유대교나 기독교는 모두 유일신 사상이지만, 창조주 하느님과 예언자 아브라함, 모세로 연결되는 하나의 종교다. 하물며, 이슬람 역시 쪼개져도 같은 코란을 읽는다. 이들의 분쟁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고, 이슬람에 씌여진 폭력의 이미지도 종교와는 별개의 문제다.

어부 이야기에 나온 신비로운 연못은 색색깔의 물고기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아마도 다양한 민족과 종교, 언어가 모여드는 중동지역에서, 그들의 차이가 공동체를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차이가 분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왕국이 아라비아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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