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살림당)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활동을 하는가

자칭 ‘공부하는 백수’인 우리는 남산 아래에서 ‘삶의 리더 되기’, ‘고립된 삶이 아닌 연결된 삶’, ‘당당하게 두 발로 자립하기’ 같은 것들을 실험하며 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러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것은 그러한 방향성 위에서 펼쳐진다. 삶의 리더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들과 세상과 더 연결되기 위해 글을 쓰고, 한 존재로서 당당하게 자립하기 위해 활동을 꾸리는 것이다. 그런데, ? 우리는 이것을 하고자 하는가?

처음에 우리는 각종 루트로 이곳의 비전에 이끌려 들어왔다. 난생 처음 듣는 위와 같은 비전들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방향키를 과감히 꺾게 했다. 그 정도로 강렬하게 삶을 건드리는 울림이 비전과 우리 사이에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된 친구들의 눈을 보면 얼마나 반짝반짝 거리는지 모른다. 책 얘기를 하면서 명품 신발이나 아이패드 같은 걸 샀을 때보다 훨씬 더 신나게 얘기를 하다니,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가끔씩 우리가 정말로 ‘혁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우리를 이곳에 오게 한 건 바로 그 ‘비전’이다. 내가 살던 곳의 답답함과 막막함, 괴로움을 시원하게 뻥! 뚫어줄 비전. 하지만 그것은 아직 ‘나’의 비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곱씹고 품어 스스로 소화해서 어떤 방향을 세우게 된 게 아니라, ‘이렇게 시원한 삶이 있다’고 전해 들어서 알게 된 방향이라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제 우리의 몫이 남는다. 이러한 비전을 몸소 보여주신 선생님들께는 정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하지만 그 비전은 나의 삶 위에서 스스로의 언어로 재해석되지 않을 때, 그저 ‘좋은 말’, ‘연구실 언어’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입과 글(쓰기)로는 ‘삶의 리더가 되고 싶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정작 실제의 삶에선 그러한 길을 조금도 열지 않은 채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백수’인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삶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가?’ 그 질문을 들고 일상을 보면, 평평했던 삶이 갑자기 쿵푸(수행)의 행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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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삶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가?’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나에게 정말로 중요했던 것’

최근 ‘청공자 영성탐구 프로그램’(이하 청탐) 친구들과 같이 활동을 꾸릴 기회가 있었다. 연구실과 궤를 같이 하며 연구실 학인들의 글을 멋진 책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북드라망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왔는데, 그 책의 북파티를 우리가 함께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자서점 지기로 활동하고 있는 나와 자연언니에게 북파티 기획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이런 축제를 꾸려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청탐&청용(청공자 용맹정진) 친구들에게도 이 같이 좋은 공부의 장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북파티는 친구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꾸려진 북파티팀의 멤버는 총 넷. 청탐 친구 두 명이 좀 더 주도적으로 북파티를 이끌어가는 리더 역할을 하기로 했고, 북파티 경험이 전혀 없는 청용 친구 두 명은 마음을 실어 활동을 함께 만들어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여러 다양한 축제들을 겪은 나와 자연언니는 친구들이 활동을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옆에서 전체적인 진행 사항들을 봐주기로 했는데, 최근 ‘리더 되기’를 훈련 지점으로 삼고 있는 나의 공부를 위해 자연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북토크 활동을 전체적으로 봐주는 역할을 나 혼자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훨씬 더 능동적인 자세와 시선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내가 몹시 불편해하는, 그래서 하지 않으려 드는, 그렇기 때문에 내게 없는 능력이었다. 친구의 공부까지 세심히 신경써주는 언니의 마음을 감사히 받아, 나는 이번 기회에 나 역시도 친구들과 함께 좋은 공부를 만들어보리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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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더 되기’를 훈련 지점으로 삼고 있는 나의 공부를 위해 자연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북토크 활동을 전체적으로 봐주는 역할을 나 혼자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범한 북토크 준비팀! 하지만 어느 일에서나 그렇듯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북토크팀 멤버들의 진행 일정은 초반부터 자꾸 딜레이가 되고 있었다. 북토크 홍보 게시글과 배너는 어떻게 어떻게 숨 가쁘게 올라갔는데, 가장 중요한 전체 포맷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북토크는 다가오는데 전체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으니, 옆에서 보고 있는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내가 직접 참여하는 건 또 아니라서 뭔가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 답답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주희와 승현이가 보일 때마다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에는 ‘아직 의논 중’이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너무 보채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이제 이 친구들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 친구들도 북토크의 ‘리더’이니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포맷을 확정지어야만 한다고 함께 정한 데드라인 날짜가 되었는데도 친구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승현이에게 오늘 중으로 주희와 내일 만날 시간을 잡아서 나에게 알려달라고 말하고는 집으로 갔고 승현이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연락을 달라고 전한다고 전했는데 그것이 승현이에게는 제대로 가닿지 않은 탓이었다. 그 ‘불통 사건’을 계기로 쌓여 있던 나의 답답함이 짜증으로 분출되면서, 그 감정을 받은 승현이와 살짝의 말다툼을 겪기도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물을 수 있을까? 분명 처음에 나는 친구들과 좋은 공부를 만들어보리라는, 이번 기회를 통해 전체적인 판을 읽으며 한 발 앞서 준비하는 ‘리더’로서 힘을 많이 써보리라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준비팀 친구들이 기획을 해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자, 나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답답하다는 감정만 앞선 탓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쳤다. 만일 포맷을 하루빨리 확정짓는 게 정말로 중요했다면, 승현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약속을 잡았어야 했다. 그런데 내게는 ‘답답하다’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기다리는,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마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활동을 하며 겪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만나게 된다. 나는 ‘리더’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감정’을 더 중요시했다.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리더가 되고 싶다던 마음은 왜 답답한 마음에 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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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더’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감정’을 더 중요시했다.

나는 왜 삶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가?

이 질문은 처음에 던졌던 질문과 이어져있다. ‘나는 왜 삶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가?’ 그 ‘왜’에 대한 대답이 비어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저 하나의 ‘경구’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분명 멋있고 좋은 말이지만, 위와 같은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를 ‘다르게 살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저 질문은 지금 내가 느끼고 있고 겪고 있는 삶 위에서 아주 생생히 던져져야 한다.

리더란 단순히 일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삶’을 이끈다. 가고자 하는 길의 명확한 방향을 세우고 그쪽으로 삶을 나아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겐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내가 연구실에서 본 리더들은 다들 그 자유를 몹시 즐겁게 누리고 있었다. 프로그램 하나를 짤 때도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고심하며,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볼지 매 순간을 실험하며 고민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매 순간 ‘어떻게 살 지’를 묻는다. 윤리적인 중심을 가지고 삶의 길을 만들어가며 살아나가는 것이다.

‘리더가 된다’는 건 이런 삶을 사는 것 그 자체를 뜻한다. 단순히 누구 앞에 나서고, 일을 더 챙기고 하는 게 아니다. 길을 만들어가는 자로서 북토크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발심 위에서 세상과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리더가 되고자 한다. 삶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삶은 만들어가는 것임을 믿고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리더 되기’를 잊는 때일수록 나는 이 질문을 더욱 깊이 품고 있고 싶다. ‘나는 왜 리더가 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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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리더가 되고자 한다. 삶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삶은 만들어가는 것임을 믿고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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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슨
페터슨
30 days ago

‘리더란 단순히 일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삶’을 이끈다.’ 이 말이 많이 와닿습니다.

유튜브 앱에서 온갖 영상 썸네일 사이에서 이 글의 인용문들을 발견했어요. ‘리더’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낡고 닳은 말을 이렇게 재해석할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어요.

저 역시 리더 역할을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고민해보지 않았거든요. 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얻기 위해서인가, 보다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인가. 그런데 선생님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러한 것들은 결국 ‘삶을 이끈다’는 목표에 의해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이 삶을 이끄는 일은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자유롭고 즐거운 일이되기도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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