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진(감이당)

山天 大畜(산천대축) ䷙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대축괘는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로우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하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初九, 有厲, 利已.

초구효, 위태로움이 있으니 멈추는 것이 이롭다.

九二, 輿說輹.

구이효, 수레에서 바퀴통이 빠졌다.

九三,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구삼효, 좋은 말이 달려가는 것이니 어렵게 여기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날마다 수레 타는 것과 호위하는 것을 연습하면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六四, 童牛之牿, 元吉.

육사효, 어린 송아지에게 뿔막이 나무를 대 놓은 것이니, 크게 좋고 길하다.

六五, 豶豕之牙, 吉.

육오효, 거세한 멧돼지가 어금니를 쓰지 못함이니, 길하다.

上九, 何天之衢, 亨.

상구효, 하늘의 큰 길이니 형통하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얘기는 얼마 남지 않은 직장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최근에 직장을 다니던 지인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그만두고 있는 상황이고, 직장에서 나이로 치면 서열이 두 번째라고 하면서 “언제 잘려도 이상할 게 없다”라는 그의 얘기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등에 관한 얘기를 더 나누다 헤어졌다. 얼떨결에 시작했던 직장 생활이 어느덧 퇴직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에 상념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적당한 때에 스스로 그만두어야 하나? 그만두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주역 64괘 각각의 괘・효사는 ‘때에 맞춰서 처신을 잘하라’라는 가르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시중(時中)의 도(道)’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時]라는 것과 유독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괘가 있는데, 바로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64괘를 순서와 관계없이 각각의 괘가 가지는 뜻을 함축해서 표현하고 있는 잡괘전(雜卦傳)에서 “대축은 때이다[大畜 時也]”라고 풀고 있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왜 ‘때’가 되는 것일까? 괘상을 보면, 아래에는 하늘[天]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묵직한 산(山)을 상징하고 그친다[止]는 뜻을 가진 간(艮)괘가 위에서 누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축적된 바가 지극히 큰 모습”(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540쪽)이라고 한다. 산이 하늘을 멈추게 했고, 멈춰야 모이고 그래야 쌓을 수 있으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보통 ‘쌓는다’라고 하면 자본의 증식, 부의 축적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잡괘전에서 ‘대축을 때’라 한 것은 그러한 관념과는 결이 다른 것을 느끼게 한다. 이 부분을 왕부지는 “간괘가 때를 기다렸다가 나아가게 하니, 건괘는 시세에 순응하여 역량을 기르고 있다”(왕부지, 『주역내전6』, 학고방, 1962쪽)라고 풀고 있다. 다시 말하면, 크게 쌓는 것은 때를 얻기 위함인 것이고, 쌓은 것 없이 때를 기다리면 때를 얻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괘사를 통해 이 의미를 더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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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크게 쌓는 것은 때를 얻기 위함인 것이고, 쌓은 것 없이 때를 기다리면 때를 얻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괘사의 첫 부분을 보면, 대축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올바른 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利貞]’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크게 쌓는다는 것은 좋아 보이는 것이나 혹은 욕심나는 것을 탐욕스럽게 쌓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을 굳게 지키며 쌓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나머지 뒷부분의 괘사에서는 이렇게 대축을 이룬 이후의 행동지침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정이천의 해석(같은 책, 541쪽)을 보면, 홀로 집에서 밥을 먹으면 도가 막혀 정체되기 때문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아야 길하다[不家食吉]’라고 했고, 도와 덕을 축적한 바가 크다면 마땅히 그 시대에 그것을 시행하여 세상의 고난을 구제하는 것이 크게 축적한 사람의 쓰임이기 때문에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涉大川]’라고 했다. 대축을 이룬 자의 행동은 ‘불가식’과 ‘섭대천’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대축을 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대축이 때’라는 것은 그러한 쓰임을 위한 때를 말하는 것이고, 그때를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풀 수 있지 않을까. 대상전에서 군자는 대축괘를 보고 ‘성현들의 말과 행동을 많이 듣고서 그 덕을 축적한다[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라고 했다. 이것 역시 군자가 성현의 말과 행동을 많이 들어 덕을 축적해야 하는 이유가 자기 쓰임의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라고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나는 이러한 말들을 어떤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효사를 통해 얻어 보려고 한다. 하괘인 건괘를 구성하고 있는 세 양효는 나아가려고 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아가려 하는 시기에 각각 다른 자세를 보인다. 초구효와 구이효는 나아가려 하지만 위에 있는 육사효와 육오효가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나아가는 것을 그만두는 자들이다. 양효와 음효가 만나는 것이라 서로 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축괘에서는 이것은 뜻이 상반되는 것이라 해석을 해서 상괘의 음효들이 양효들을 저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와는 다르게 하괘의 맨 위에 있는 구삼효는 나아갈 수 있는 자이다. 왜냐하면 건괘를 완성하는 맨 윗자리이기도 하면서, 상구효와 같은 양효이기 때문에 뜻을 같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사에서 ‘좋은 말이 달려간다[良馬逐]’라고 했다. 이는 구삼효가 양효이고, 정(正)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말이기는 한데, 나아감에 있어 조급하고 경솔할 수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효사에서 두 가지의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어려움을 알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利艱貞]’이고, 두 번째는 ‘날마다 수레 타는 것과 호위하는 것을 연습하라[日閑輿衛]’이다. 그렇게 한다면,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利有攸往]’라고 하고 있다. 그럴 것이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조급함과 경솔함만큼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효사가 주는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그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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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나는 이러한 말들을 어떤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먼저,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어려움을 알고, 올바름을 굳게 지킨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중년의 나이가 되어 퇴직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돈 문제가 가장 큰 걱정으로 다가온다. 생활자금 규모가 반 토막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오던 소비중심의 생활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 아무런 몸과 마음의 준비 없이 그렇게 된다면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은 마치 삶의 막다른 곳으로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에 대한 걱정만큼 퇴직 이후의 삶과 더 나아가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이후의 새로운 삶에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돈 문제에 앞서서 그러한 성찰의 미비 혹은 부족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을 성찰한다는 측면에서 ‘날마다 연습해야 할 수레 타는 것과 호위하는 것’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수레 타는 것’은 편안하게 나아가는 일이고, ‘호위하는 것’은 외부의 공격이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까 편안하게 자신을 잘 지키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레 타는 것과 호위하는 것을 ‘일상에서’ 연습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공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최근에 내가 재미를 붙이고 있는 ‘동·서양의 고전 공부’ 말이다. 퇴직이라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면서 편안하게 자신을 잘 지키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고전 공부’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고전이라는 것에는 인류의 온갖 지혜들이 담겨있다. 그동안 그것을 곱씹는 공부를 해보면서 삶의 무지로부터 나를 구제해주는 느낌을 받아보기도 했다. 이처럼 고전 공부를 통해서 옛 성현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면서 그것을 일상에서 연습하여 체득하라는 것이 이 효사의 가르침이지 않을까.

이처럼 ‘삶의 성찰’과 ‘동·서양의 고전 공부’를 통해서 ‘덕(德)’을 크게 쌓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지혜를 얻고, 그리고 새로운 삶과 어울리는 철학과 사유를 배우고 익히면서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회한이나 두려움보다는 어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구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 생기겠구나!’라는 내 안의 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지금처럼 여러 스승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려고 한다. 그렇게 읽고 쓰면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삶이라는 큰 강을 건너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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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지혜를 얻고, 그리고 새로운 삶과 어울리는 철학과 사유를 배우고 익히면서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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