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남산강학원)

2016년 나는 공부를 삶의 비전으로 삼는 연구실(남산강학원)에 왔다! 내가 속한 연구실은 고전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곳이다. 그리고 연구실에서는 여러 활동들(주방 운영, 유튜브 영상 제작, 공간 관리)을 ‘공부 거리’로 삼는다. 활동을 우리 삶의 현장으로 삼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관계를 배우고, 또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벌써 5년째 이렇게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 입에서는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다른 친구들보다 배우는 속도도 느리고 못 하는 게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 공부한 거 같은데…. 아직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활동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뭔가 서툴고 어렵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의 ‘좋은 점’을 보면 ‘저 친구는 저런 재능을 타고났구나.’라며 부러워하거나 ‘나는 왜 저런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이것이 바로 나의 업인가!’라며 한탄할 때가 있다. 보통은 ‘각자 타고난 건 다르다’라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떤 때는 ‘타고난 대로 살아야지 뭐….’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맹자는 “위대한 순임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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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의 ‘좋은 점’을 보면 ‘저 친구는 저런 재능을 타고났구나.’라며 부러워하거나 ‘나는 왜 저런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이것이 바로 나의 업인가!’라며 한탄할 때가 있다.

맹자는 순임금이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을 때부터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는 분이라고 말한다. 순임금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면 기꺼이 배웠다는 것이다. 이런 순임금의 태도가 멋져 보였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어떻게 저렇게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순임금은 어떻게 매순간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위대한 순임금은 (…) 선한 일을 남들과 함께 하여, 자신의 사사로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여 선행을 실천했다.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을 때부터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선행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 다른 사람이 선행을 실천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맹자공손추 상 편 3-8/ 박경환 옮김 / 홍익 출판사/ p115)

우선, 순임금이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는 이유는 “선행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운다고 했을 때, 나는 나의 역량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니!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워서 선행을 실천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순임금은 “선한 일을 남들과 함께”하였다고 한다. 선행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선행을 경험하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마음을 다해 누군가의 고민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를 볼 때, 마음을 다해 공간을 청소하는 친구를 볼 때, 마음을 다해 맡은 일에 집중하는 친구를 볼 때 그 친구에게서 선행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선행이 멋지고 좋다고 느껴지면서 나도 덩달아 실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선행’은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가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행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함께’여야 가능하다!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운다 했을 때, 그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배우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운다는 건 그 사람에게서 내가 발견한 선한 행동, 즉 내가 멋지고 좋다고 느낀 그 행동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선행’을 배우고 ‘선행’을 실천할 수 있을까?

순임금은 “자신의 사사로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면 선행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멋지고 좋은 모습(선)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사사로운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마음은 나 ‘혼자’ 돋보이고 싶고, 잘 나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그 마음은 누군가의 선한 행위를 보고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게 한다. 질투와 부러움의 감정이 선의 실천을 막는 것이다. 이러한 사사로운 마음은 우리 삶에 강하게 있다. 순임금은 이 사사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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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실천하는 일은 다른 이의 선행으로 퍼져나간다. 선행은 사람을 타고, 타고, 타고 해서 바로 옆 사람에게로, 주변 사람들에게로, 더 나아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순임금에게는 그 무엇보다 ‘함께’ 선을 실천하는 일이 가치 있고, 멋진 일이기에 사사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선행을 실천하는 일은 왜 가치로운가. 선행을 한 번 실천하는 일은 그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선행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선행을 실천하는 일은 다른 이의 선행으로 퍼져나간다. 선행은 사람을 타고, 타고, 타고 해서 바로 옆 사람에게로, 주변 사람들에게로, 더 나아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세상에 선한 행동을 전파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더 큰 일은 없다”! 그렇기에 순임금은 매순간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우며 살아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가 나의 재능을 탓한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잘하고, 못하는 것에 끄달려 살아왔다. 그런데 순임금을 통해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걸 배웠다. 그보다 더 가치 있고 멋진 일이 있었다. 그것은 선한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을 통해 내 주변으로, 세계로 선행을 전파하는 것이다. ‘함께’ 선행을 실천하며 사는 삶, 멋지지 않은가? 그러한 삶을 살려면 내가 먼저 선한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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