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천일야화 하면 사람들에게 맨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단연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다. 책을 안 읽어도 누구나 안다.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화면과 흥겨운 음악은 사람들을 마냥 즐거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할 뿐만 아니라, 서점이나 스터디카페 등 여기저기서 쓰고 있는 ‘지니’와 ‘램프’의 심볼은 날 위해 뭐든 해줄 것 같은 긍정의 메시지를 준다.

그런데 알라딘의 이야기는 원래 아랍의 『천일야화』에 없는 내용을 앙투안 갈랑이 지인에게서 듣고 첨부한 것이다. 그래서 1001일이 꽉 차있는 리처드버턴 판에는 알라딘 이야기가 없다. 책을 읽으면 알라딘 에피소드가 다른 스토리들과 결이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기승전결의 완정된 구조와 권선징악의 대단원의 막이 너무나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톡’ 튀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것들은 마치 ‘이야기의 파편’처럼 하나로 떼어냈을 땐 보잘 것 없는 이야기들이다. 앞부분의 주인공과 뒷부분의 주인공이 달라지는 맥락 이탈적 내용도 많아서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알라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도 마찬가지다. 세련된 이야기 구조에서 훗날 만들어진 티가 난달까? 어쨌거나 이야기란 보태지고 변형되기 마련이고, 할 때마다 달라지는 매력이 있지 않던가. 오늘은 알라딘과 요술램프로 모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밑바닥 인생에 찾아온 모험

나는 스스로를 소심해서 모험을 찾아 떠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 속의 이야기로 모험에 대한 욕구를 대리만족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험과 관련된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모험을 ‘떠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모험의 주인공인 왕자들은 불의의 사고로 홀로 사막을 헤맨다. 또 장사꾼의 경우는 도적을 만나거나 난파되어 예상치 못하게 내몰리게 되는 어떤 상황이 바로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천일야화나 옛 이야기 등에 나오는 모험이란,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자~ 떠나자! 미지의 세계로~’라고 구호를 외치는 보이스카우트 같은 모험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기반이 ‘0’으로 세팅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러니 모험이란 닥쳐오는 것이지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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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의 모험과 달리 아예 기존의 삶이 ‘0’인 주인공이 있으니, 그가 바로 알라딘이다. 그는 한마디로 바닥인생으로 천일야화의 보기 드문 하층민 주인공이다. 다른 모험의 주인공들이 왕과 재상의 아들이거나 부유한 상인으로 출발해 거지가 되는 것과는 완전히 뒤집힌 설정인 것이다.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이야기」의 배경은 중국이다. 그러나 장소의 이름이 중국일 뿐, 배경과 문화는 모두 이슬람권 아랍문화다.(주인공 이름이 ‘알라딘’인걸 보라) 그에 대한 묘사는 첫 마디가 가난이다. “(아버지)양복장이 무스타파는 몹시 가난했고, 재단일을 통해 버는 것은 그와 아내 그리고 하느님이 부부에게 주신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5, 1401) 그런데 가난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어떤 왕자와 공주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가난하게 키워져도 결국 용기와 기상이 넘치는 고귀한 성품이 드러나게 된다. 반면 알라딘의 경우는 뼛속까지 빈한함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아주 못된 버릇들을 갖고 있는 불량하고 한심한 아이였던 것이다.

다른 것을 가르칠 형편이 못 되었던 아버지는 아이를 가게에다 붙잡아 놓고 바늘 쓰는 법을 보이면서 가르치려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산만하기 그지없는 아들의 마음을 붙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스타파가 잠시라도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그대로 도망쳐 나가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곤 했습니다. 여러 차례 벌을 주기도 했지만 알라딘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5, 1402)

이런 알라딘 때문에 상심한 아버지는 병들어 죽고 말았다. 알라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욱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이가 되었고, 어머니가 잔소리하면 위협을 할 정도로 제멋대로 행동했다. 왜 이런 아이가 마법사에게 선택되었을까? 자신을 위한 희생양을 찾고 있던 마법사의 눈에 이 아이가 적격자로 보였던 이유는, 얘 하나 없어져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보잘 것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조용한 변신

알라딘은 삼촌이라고 속이고 접근하는 마법사가 베푸는 호의에 속아 넘어가 동굴에 갇히고 만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사흘을 갇혀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려고 두 손을 모았을 때, 마법사가 빌려준 반지에서 정령이 나타났고 그를 집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배고픈 모자에게 램프의 정령이 나타나 금은쟁반에 담긴 음식을 갖다 주어, 가난했던 모자는 램프의 정령의 덕으로 생활의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 이후의 알라딘은 180도 변한 모습이 되었다. 램프가 생겼으니 달라지는게 당연한 건가? 영화의 ‘지니’와 달리 이야기 속 램프의 정령은 무한대로 소원을 들어준다! 그러니 이제 떵떵거리고 어느 왕국의 왕자처럼 행세하며 공주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일까?

원래 이야기에서는 알라딘이 공주를 만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이 몇 년 동안 알라딘 모자는 생활비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램프의 정령을 소환해 먹거리를 해결했을 뿐, 여전히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어머니는 원래 하던 목화실 잣는 일을 계속해서 옷을 사 입을 정도였으니, 이웃들 누구도 알라딘 모자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고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라딘은 분명 변했다. 그 변화는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이지, 램프의 정령에게 기댄 물질적 풍요가 아니었다. 알라딘은 틈만 나면 시내의 큰 상점들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어깨너머로 상업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들었다. 매매 요령을 터득하고, 직물과 보석에 관한 안목도 넓혔다. 교양 있고 지체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는 곳이 있으면 엿듣곤 했는데 이후엔 가끔씩은 직접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고 상류 사회의 예절을 몸에 익힐 수 있었”(5, 1439)던 것이다. 밑바닥 인생에서 상류층으로 진입! 알라딘은 램프의 정령에 기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 듣고 배우며 존재의 도약을 이뤄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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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라딘은 분명 변했다. 그 변화는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이지, 램프의 정령에게 기댄 물질적 풍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머니조차 알지 못하고 믿어주지 않는다. 그가 공주에게 첫 눈에 반해서 고민 끝에 청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어머니는 비웃고 달래고 꾸짖고 설득하며 알라딘이 실성했다고 여겼다.

아니, 이놈아! 넌 지금 감히 술탄의 따님을 넘보고 있는 거냐? 지금 네 주제를 알고 있기나 하니? 네가 술탄의 도성에서 가장 하찮은 양복장이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었어?” (5, 1445)

자기가 어떤 배움을 이뤘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가장 몰라주는 사람이 가족이다. 아니,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히려는 어머니의 우려는 어쩌면 알라딘의 내면의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점점 커지는 욕망과 도전 앞에서 자기가 해낼 수 있을지 주저하고 이쯤에서 안주하려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공주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 확고했던지라, 이후 알라딘은 영화에서처럼 램프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 온갖 보석을 술탄에게 진상하고, 수십명의 노예들을 왕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히고, 길바닥에 금화를 뿌리며 당당하게 성으로 들어간다.

대칭성을 회복하는 존재의 도약

내가 알라딘의 도약이 램프에 기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이뤄낸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그가 램프의 힘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순간에 일국의 왕자처럼 변한 알라딘을 응원하고 갈채를 보냈다. 그 누구도 알라딘의 행운을 비아냥대거나 시기하지 않았”(5, 1491)다. 그리고 나중에 마법사가 다시 나타나 램프를 가져가서 마법의 궁전이 사라졌을 때도 알라딘은 일반 백성들의 지지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끌려가는 알라딘 뒤에는 어떤 이는 칼을, 어떤 이들은 다른 무기를, 아니면 돌멩이라도 집어 들고서 압송 행렬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왕은 백성들이 무서워서 그를 곧장 처형하지 못하고 궁전과 공주를 되찾아올 기회를 주었다.

궁전 성벽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와 있던 사람들은 술탄이 알라딘을 석방하는 광경을 보고는 즉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구했다는 기쁨으로 가득하여 그 소식을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었죠.(5, 1527)

나는 이 장면이야말로, 알라딘의 존재 도약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사라진대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을 것 같은 미미한 존재로 여겨져서 마법사에게 희생제물로까지 선택되었던 알라딘이, 모든 백성이 술탄에게까지 봉기를 일으켜 구해낼 정도로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것은 램프의 정령이 한 일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만든 변화였다.

그가 살던 시대처럼 지금 우리 역시 부와 계급이 비대칭으로 나뉜 시대를 살고 있다. 누가 법으로 금지하진 않았지만 역량부족으로 이 비대칭을 받아들인다. 알라딘의 엄마처럼 아예 욕망하지를 않는다. 하지만, 나는 평생 이 모양 이 꼴로 살라고 정해져있지 않다. 나는 공주를 욕망할 수 없을까? 나는 왕자가 될 수 없을까? 나는 고귀해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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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과 램프이야기가 이야기속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세계의 비대칭을 통쾌하게 가로지르며 도약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처럼 가난뱅이에서 억만장자가, 불량배에서 상류층이, 소심한 겁쟁이에서 용감한 왕자가 되는 마법을 원한다. 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내면의 잠재력이 마법처럼 세상 밖으로 실현되어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 희망이 우리가 알라딘과 램프의 정령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 이유일 것이다.

알라딘의 모험 역시 마법사에 의해 강제로 핍박을 받는 과정에서 시작했다. 동굴 안에 갇힌 사흘 동안, 그는 죽음의 공포에 놓여있었다. 울고 후회하며 이틀을 보낸 그는 사흘 째 되던 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힘과 능력은 높고도 위대하신 하느님(알라)에게만 있도다!”라고 소리치고, 그는 죽었다. 아니, 과거의 게으르고 약했던 알라딘이 죽었다. 그 순간 나타난 반지의 정령은, 완전히 과거의 모습을 벗고 다른 존재가 될(된이 아니라 될) 그를 집으로 옮겨놓았다. 이제부터 그는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공주를 만나기 전의 몇 년이 바로 그 시간이었고, 그는 공주를 보자 그녀에게 합당한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험은 내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도전을 받아들여 내가 존재의 변신을 이뤄낸다면 한 판 멋진 모험이 되는 것이고, 그냥 주저앉는다면 그저 매번 찾아오는 불운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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