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빈(살림당)

지난달, 강감찬TV 친구들이 영상작업을 마지막 주에 몰아서 하기에 나는 답답해했다. 그렇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나는 친구들의 ‘게으름’을 꼽았다. 그런데 살림당 회의에서 선생님께서는 그 원인은 내 머릿속에서만 나온 게 아니냐는 피드백을 주셨다. 그때 ‘아차!’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건’을 대할 때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곧바로 나는 친구들에게 왜 작업을 몰아서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A는 매일매일 편집을 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품이 많이 들어갔고, B는 기획 단계에서 촘촘하지 못해 영상을 편집하면서 다시 기획해야 하는 일이 생겨 작업이 몰렸다고 했고, C는 발제가 겹쳐서 작업을 미루게 됐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이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란 걸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저마다의 맥락이 있고,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나 다양한 원인이 있다니!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이번 ‘사건’에서 나는 왜 친구들의 이야기(맥락)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나는 평소에 어떤 태도로 ‘사건’을 대하기에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을 붙잡고 일상을 통과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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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나는 왜 친구들의 이야기(맥락)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친구의 이야기가 내 삶으로 들어오다!

나는 연구실에서 윤하와 함께 청용(청년을 위한 공부 자립 프로젝트 – 용맹정진 코스)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연구실에 새롭게 접속한 청년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고, 생활을 공유하며, 지지고 볶으면서 자립적인 삶을 도모하고 있다. 청용 프로그램에서는 매 학기 공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에세이를 쓰는데, 이번 학기도 에세이 날이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윤하 매니저는 나에게 먼저 제안 하나를 했다.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쓰기 전에 키워드(주제)와 씨앗 문장, 서문을 검토해주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맨 처음 내 반응은 이랬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기에, 친구가 하고 싶다고 하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청용 친구들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우리가 댓글로 피드백을 해주기로 했다.

한 편의 완성된 글(보통 3p 분량)이 아닌 반 페이지 분량의 글이라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1번, 2번 읽어서는 이 친구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맥락 속에서 얘기하고 있는지 잘 잡히지 않았다. 적어도 3번, 4번, 5번 힘써서 읽어야 친구들의 고민과 질문이 어렴풋이 잡혔다. 일찍 끝날 줄 알고 저녁 10시에 시작한 일이, 어느새 새벽 2시를 넘어섰다.

신기하게도 이번 경험은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몰랐던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친구들의 고민과 질문이 내게 더욱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A는 모순을 참지 못하는구나. B는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크구나, C는 뭐든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있구나!’ 서로 다른 고민 속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신기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내 삶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그때 문뜩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삶으로 들어오려면 그만큼 ‘힘’을 써야 하구나! 친구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그 맥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친구에게 힘을 써야 했다. 강감찬TV 활동에서 내가 혼자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도 상대에게 힘을 쓰지 않는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가 왜 그랬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다, 나 혼자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가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사건’ 속에서 상대에게 ‘힘’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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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그 맥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친구에게 힘을 써야 했다.

충(忠)을 행하라!

올해 초 글고평(글쓰기 고전평론반 프로그램)에서 읽은 『논어』의 멋진 단어 하나가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충(忠)이다. 충은 벗과 사귀는 도리로서 공자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다. 충이란 무엇인가? “남을 위해 도모하면서 자기 마음을 송두리째 바치는” 태도다. 충을 설명하는 예시는 정말 웃기다. 만약 내가 저쪽 길로 가면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누가 그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 그때 상대의 일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끝까지 막아서는 것을 ‘충(忠)’이라 한다. 반대로, 가도 되고 안 가도 되고 이렇게 대충 말하는 것을 ‘불충(不忠)’이라 한다.

처음 충(忠)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우리 마음을 이렇게 크게 쓸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 삶으로 가져오려 할 때 충을 실천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남을 위해 도모하면서 자기 마음을 송두리째 바치는” 태도가 충인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너무 희생하는 태도 같아 보였다. 내 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는 것도 바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마음을 끝까지 쓰라는 거지? 공자님께서는 이 태도를 왜 좋다고 하시는 걸까? 하는 고민이 계속 따라다녔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충(忠)을 행하는 태도에서만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일과 너의 일을 나누고, ‘세상에서 내 일이 제일 중요해!’ 혹은 ‘네 일은 알아서 해~’ 같은 불충(不忠)한 태도로는 다른 사람을 궁금해할 수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의 맥락만 갇혀 세상을 ‘좁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나라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맥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을 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충(忠)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상대의 일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힘을 끝까지 쓰는 것이다. 강감찬TV 사건으로 생각해보면, 친구가 일을 ‘몰아서’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됐을 때. 외부자의 시선으로 ‘쟤는 또 저렇게 하네, 쟤는 저런 게 문제야’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의 문제가 마치 나의 문제인 것처럼 마음을 끝까지 써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찾아보는 태도다. 그렇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내 삶에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내 삶이 더 다양한 맥락들로 채워질수록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더 풍성한 삶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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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맥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을 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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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H Chang
Yong H Chang
23 days ago

다른이의 일에 마음을다하여 힘쓴다.내 마음에 새로운 길로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