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감이당)

꾸란과 여성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의 뉴스가 전 세계의 뉴스를 휩쓸고 있다. 탈레반이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다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 시작점만 살펴본다면, 중동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부족국가의 형태로 살아왔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거대한 제국은 그 안에 쪼개진 왕국들을 갖고 있었고, 그 왕국은 부족단위로 종교와 언어, 관습이 달랐다. 그들에겐 ‘국가’라는 개념이 없다. 유럽이 1800년대 초까지도 국가의 개념 없이 합스부르크 왕가와 연결된 왕국들이었던 것처럼 중동 역시 이슬람제국 안에서 부족단위로 자체적인 도시국가, 즉 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종교적 정치적 갈등은 서구열강이 침략했다가 그 넓은 땅덩이에 그들 부족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인위적인 국경선을 그어놓고 그곳을 떠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족으로 보면 아프가니스탄 국경선 안에 들어온 파스툰 족의 무리이며, 그들은 바로 남쪽에 있는 나라인 파키스탄에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민족이라고 하니, 엉뚱한 국경선이 부족을 갈라놓고 섞어놓은 탓에 생긴 정치적 부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단어가 자꾸만 신문지상에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폭력적인데 그것이 코란에 나온대로 행하는 거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라는 것은 다시 코란으로 돌아가 코란에 나온 자구(字句)대로 행하자는 운동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구약성경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불교의 경우에도 부처님 당시의 승단과 똑같은 법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코란은 세계 최초로 여성의 상속권을 명문화 한 경전이라고 한다.(코란 4:11) 단지 그것이 남성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라는 이유로, 현대까지도 여성의 모든 권리와 능력치를 남성의 절반으로 보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근본주의자들의 좁디좁은 해석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문명권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만이 인간대접 받는 사회의 부속품처럼 취급받아 왔기에, 코란에 드러난 여성의 순종의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코란이 다른 사회보다 먼저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왜 코란을 둘러싸고 그토록 극단적인 해석과 무리한 적용을 하는 세력이 중동사회에서 힘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문제와 항상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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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둘 수 없는 욕망

천일야화에는 여성을 때리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아니,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샤리아 왕과 그 동생이 그 첫 번째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죽인다는 ‘응징’의 방법을 걷어내고 보면, 천일야화의 여성들은 너무나 자유분방한 존재들이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수많은 억압은 내 머릿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왕이 왕궁을 떠나자마자 왕비가 노예들을 불러들여 질펀한 성파티를 즐긴다는 걸 상상해보라. 우린 남자들이나 그런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가? 설사 왕비가 성욕이 남다르다고 해도 몰래 누군가와 ‘정’을 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단지 성적 쾌락을 위해 수십 명의 여자노예들과 남자노예들을 길들여서 질펀하게 노는 경우는 우리의 도덕관념을 뛰어 넘는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우리 옛 이야기들 속 여성들의 성적인 욕망은 너무나 소심하고 억눌려서 표현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여자에 대한 잔인한 응징 이전에,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더 단단한 도덕관념으로 여성의 욕구 자체를 부인하고 꽁꽁 누르고 있던 건 아닐까? 때리는 놈이 있을 필요도 없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가둬둔 것은 아닐까?

샤리아와 샤즈난 두 왕이 부인들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길을 나섰다가 만난 여인을 보자. 정령은 납치한 여인을 몇 겹의 궤짝 속에 꽁꽁 싸서 항상 매고 다닌다. 그러나 자기가 낮잠을 잘 시간이 되면 그녀를 꺼내주고 그 무릎을 낮잠용 베개로 삼는다. 하지만 대담한 그녀는 이 짧은 시간을 이용해 정령이 그토록 억압하고 차단하고 있는 일을 해치운다. 무릎 위의 정령의 머리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그 머리맡에서 지나가는 남자들을 불러 관계를 맺는 것이다. 샤리아와 샤즈난도 그녀의 눈에 띄어 그녀의 요구에 응하고 말았다. 정령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 요구를 거절하면 정령을 깨우겠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여인은 이렇게 관계한 남자들의 반지를 빼앗아 실에 줄줄이 꿰어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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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때리고 죽여도 여인의 욕망을 다스리고 가둘 수 없다면, 과연 누구의 승리인가?

여인을 납치하고 자기의 소유로 가둬두려는 욕망. 그 폭력적이면서도 쫌스러운 욕망은 이 정령뿐 아니라, 천일야화의 많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참 안쓰러운 욕망이다. 하지만 나는 천일야화의 음란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남자들이 의문의 1패, 2패, 3패… 끝나지 않는 연패를 하고 있다고 느끼다. 왜냐하면 그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의 욕망은 사그러들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들만 종종거리고, 노심초사하고, 분노할 뿐이다. 아무리 때리고 죽여도 여인의 욕망을 다스리고 가둘 수 없다면, 과연 누구의 승리인가?

상상 속의 폭군

한 이발사가 있었는데, 그가 자기의 여섯 형제들에 관해 뒷담화식 이야기를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화자인 이발사는 굉장히 찌질하고 짜증나는 캐릭터인데, 이 사람이 얘기해주는 여섯 명의 형들도 정말 봐주기 안쓰러울 정도로 찌질한 인생이다. 그 중 다섯 째 형의 이야기는 상상 속에서 여자를 구박하는 이야기다. 알나샤르라는 이름의 다섯째 형은 게으르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아들들에게 백 드라크마씩의 유산을 남기자 그는 이걸 장사밑천으로 유리그릇을 사서는 시장에 들고 갔다. 그걸 가게 앞에 늘어놓고서, 그는 가만히 문설주에 기대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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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릿속의 망상을 축약해보면 이와 같다 : 이걸 다 팔면 이백 드라크마가 생길 것이고, 이백드라크마로 또 장사를 하면 사백 드라크마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불려 가다가 십만 드라크마가 되면 대재상의 딸에게 청혼을 해야지. 만약 거절한다면 그의 집에 쳐들어가 그가 보는 앞에서 딸을 끌어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버리겠어! 혼례에 대한 돈은 통크게 지불하겠지만, 신부가 감사를 표하면서 선물을 하면 받지 않을거야. 아내와 규방에 들게 되면 장엄한 표정으로 상석에 앉아서 말도 안하고 쳐다도 안볼거야. 시녀들이 신부를 봐달라고 애원해도 들은척도 안 할거야. 그녀들이 괴로워서 애걸복걸하게 하다가 나중에 장모가 알게 되면 장모도 찾아와 사정을 하겠지. 오, 선생님(그녀는 감히 ‘여보게’라고 부르지 못하겠지) 제발 우리 딸애에게 눈길 좀 던져 주시고 가까이해 주세요! 이러면서 자기 딸을 등 떠밀어 내게 보내겠지. 나는 그녀가 흐느끼며 내 입에 가까이 대는 술잔을 치워버리고, 그녀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발로 세차게 밀어버릴거야!

이런, 이런… 그는 너무나 달콤한 상상에 빠진 나머지 실제로 발길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그의 앞에 세워둔 유리그릇이 담긴 망태기가 모두 쏟아져 깨져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놀랍지 않은가? 이 구체적인 상상력이? 우린 가끔 돈이 많아지면 뭘 할거냐는 질문을 받긴 하지만, 나오는 답변이 다 비슷비슷해서 놀랍지도 재밌지도 않다. 크루즈, 세계여행, 자선사업, 등등. 여기엔 디테일이 없기 때문에 정말 이 사람이 그걸 행하고서 어떤 만족감을 느낄지 상상이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다섯째 형 알나샤르의 바램은 정말 솔직하고 디테일하기 짝이 없다. 돈이 많아지면 갑질을 하고 싶어 죽겠는 것이다. 여기선 그 갑질의 대상이 아내다. 여자를 돈으로 빼앗아 와서는 소박 맞혀 보고 싶다니! 폭력을 동반한 갑질이 하고 싶다는 그의 솔직한 욕망이다. 나는 이 마음이 놀라웠지만, 만일 내가 억만장자가 된다는 상상을 한다면 과연 무엇이 하고 싶을까? 놀랍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시하고 싶고, 힘을 행사하고 싶고, 나를 떠받들어 주기를 원할 것 같다.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폭력적인 인간관계에서 쾌감을 느낄 것이다. 찌질한 알나샤르의 욕망을 비웃었지만, 사실 디테일을 살펴보면 그 대상만 바뀔 뿐, 누구나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참 특이한 지점은 다섯 째 형에겐 이 갑질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분위기가 반영되었다고 생각되기 보다는, 남자의 디테일한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여성을 대하는 아랍 남자들의 찌질함의 극치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여자들이 뭘 어쨌다고 이렇게나 찍어 누르고 싶어 안달이란 말인가!? 천일야화는 여성들의 책이다. 성적욕망과 쾌락추구가 남성 못지 않으며, 남자들을 배신하는 악역이 있는 반면, 이야기를 통해 왕의 성정을 바꿔 백성들의 고통을 구제하겠다는 현명한 여성도 있다. 재치 넘치는 여인들, 고통받는 여인들, 사랑에 빠진 여인들, 마법을 하는 여인들까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멋진 여인들이다. 몇 겹이나 되는 정령의 궤짝도 여인의 욕망을 가둘 수 없건만, 부르카로 여성을 가둘 수 있을까? 베일 속 아랍여인들의 생생함이 천일야화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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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겹이나 되는 정령의 궤짝도 여인의 욕망을 가둘 수 없건만, 부르카로 여성을 가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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