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연(살림당)

2021년 무더웠던 여름, 큰 선물을 받았다! 이름하여, <깨봉 청년 함백 여름휴가!> 깨봉식당에서 곰샘과 안부를 주고받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너무 바빠요……쉴 수 없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신 곰샘께서 휴가 특명을 내리신 것이다. 이렇게 깨봉 청년들은 단체 휴가를 받게 되었다. 회사도 아니고 공부하는 백수에게 휴가라니! 게다가 휴가비 지원이라니!

이 당시 살림당 친구들은 엄청나게 허덕이고 있었다. (두 달이나 지나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름이면 빼먹을 수 없는 공동체 연애 사건들과 8월이면 바뀔 활동에 대한 논의 및 인수인계 계획, 북토크, 그리고 우리의 공부(주역 16괘 시험, 학기 말 에세이, 각종 글쓰기) 등등. 무더위에 어울리는 핫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었다. 그래서 사실 휴가 소식을 듣고, 걱정도 되었었다. ‘이 스케쥴에… 우리 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곰샘은 우리에게 휴가가 필요하다고 보셨다. 놀고 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지금 리듬을 끊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신 거였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덧붙여주셨다. 똑같이 글을 쓰고 일을 하더라도, 지금의 시공간을 떠나서 하는 것은 또 완전 다른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에겐 ‘환기’가 필요한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안에 공기를 불어 넣듯, 우리의 일상에도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함백가자, 얘들아~!

그렇게 우리는 함백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코로나 시국에 안전하게 삼삼오오 나눠서 갔다 오는 시스템. 그런데 문제는, 함백을 가본 친구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은 함백을 가본 적 있는 살림당 친구들이 다른 청년 친구들과 팀을 꾸려 가는 것. 혹은 함백에 오는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몇 번 갔던 기억 속의 함백은 버스보다 우리의 두 발이 편한 곳이었다. 버스도 몇 시간에 한 대가 있어서, 기다리는 것보다 걷는 편이 나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걸어 다녔다. 한 번은 너무 멀리까지 걸어가서 콜택시를 불렀었는데, 영월에 나가셔서 올 수 없다고, 콜택시를 거부(?) 당한 일도 있었다. 또 다른 기억. 여름캠프를 갔었을 때는 복희씨께서 동강부터 계곡, 타임캡슐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었다. 별구경도 가고, 물놀이도 하고, 산장에서 낮잠자고 수박 먹는 시간까지. 정말 초호화 여행이 따로 없었다. 우리의 머릿속의 함백은 ‘무작정 도보여행’ 혹은 ‘초호화 럭셔리 여행’이 두 가지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함백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함백의 명소를 소개해주고,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무작정 걷더라도^^) 받았던 만큼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또 마음 한편에서는 일적으로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도 올라온 게 사실이다. 살림당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친구들에게 뭘 준비하게 시키는 것보다 편할 것 같았다. 갈 수 있는 곳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 계획표를 짜서 비슷하게 움직이고, 먹는 것만 조별로 가벼운 밑반찬들 만들어서 출발하게 하고, 메인 음식은 그곳에서 사 먹는 식으로~! 한참 뒤에야 깨달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우리의 휴가가 불투명해졌다.

juliane-liebermann-O-RKu3Aqnsw-unsplash
함백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함백의 명소를 소개해주고,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여행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 누리기

결국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신 소수 인원으로, 함백 현지인과 접촉하지 않으며! 하여, 외식은 불가능했다. 어랏? 이렇게 되고 보니, 살림당이 주최해서는 전혀 불가능한 규모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깨봉 친구들의 모든 식사와 일정을 책임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팀별 자치제’를 도입했다.

지난번 뽑은 팀에서 ‘팀장’을 뽑고, 함백을 오가는 기차 시간표, 명소 리스트, 주변 식당 메뉴판(포장) 등,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을 주었다. 오가는 시간부터 갈 곳, 먹을 것까지 팀별로 자신들의 여행을 만들어 가도록 했다. 회의가 끝난 뒤, 각 팀 친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활기차게 여행을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여행엔 기타라며, 기타를 챙겨 가자는 친구. 영화를 보기 위해 노트북에 빔프로젝터를 들고 가는 친구. 별보기를 위해 돗자리를 챙기자는 친구까지. 반찬 아이디어도 얼마나 각양각색이었던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절대 나올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이 분출했다. 아마 우리였다면 귀찮고, 무거워서 절대 포기했을 텐데……. 아! 어떤 팀에서는 준비하면서, 함백에 한 대밖에 없다고 들었던 택시‘들’의 번호를 알아내기도 했고, 버스회사에 전화해서 버스시간을 정확히 알고 버스를 타는 일도 있었다. 오! 놀라워라!!

실제로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쉬자파’, ‘많이 먹는 체력 아끼기파’, ‘막가파’. 자신들의 존재성을 뿜뿜하며, 여행 일정부터 예산‧회계까지 ‘자신들’의 여행을 만들었다.

우리는 대접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착각한다. 잘 짜인 여행, 휘황찬란하게 만들어진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말이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수고로워도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때, 적극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구성해나갈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알맹이 가득 찬 즐거움이다. 싸우든지 무얼 하든지 말이다. ‘만들’ 때, 다른 것들도 생겨난다. 이번 여행이 그랬듯이.

선물을 잘 받는 방법: ‘활동’으로 만들기

깨달았다. 살림당 친구들끼리 이 모든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스스로 겪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도대체 왜 우리가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것은 분명히 친구들 자신의 휴가였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이라는 일 덕분에 우리의 이상한 생각의 질주를 멈췄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는 왜 우리가 모든 걸 껴안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우리는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우리가 여행을 가게 되었던 그 시작점. 함백 휴가가 논의되었던 그 맥락을 놓치고 있었다. 너무 바쁘다는 우리의 불평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이 사건을 출발로 ‘깨봉 청년 휴가’까지 이어졌던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놓치고, 무겁게 가져가고 있던 것. 그리고는 이 맥락을 떠나서, 무작정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니 무거워질 수밖에. ‘최대한 많이’, ‘더’, ‘잘’, 이런 추상적인 말들은 맥락을 놓칠 때, 생겨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이 흘러온 맥락 위에서만이 우리는 진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 우리의 여행에 좋은지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받았던 이 휴가라는 ‘선물’. 이 선물을 잘 받는 방법은 뭘까, 라는 측면에서도 ‘잘’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시공간 위에서의 ‘잘’을 말이다. 이 선물을 잘 받는 방법은 다름 아닌 ‘활동을 만드는 것’이었다. 밥상을 차려주는 게 아니라 친구들 스스로 ‘여행’을 만들고, 겪게 하는 것이, 선물을 받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artem-kniaz-DqgMHzeio7g-unsplash
이 선물을 잘 받는 방법은 다름 아닌 ‘활동을 만드는 것’이었다.
5 1 vote
Article Rating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